[8월 제련소, 왜 해체되었나?]②왜 다시 복구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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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8월 제련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살펴보는 「8월 제련소'의 흑막과 전망」,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8월 제련소는 왜 다시 복구되었나?'를 문성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2009년 5월, 후계자 김정은이 등장한 북한에서 파괴된 경제를 복원하기 위한 ‘150일 전투’가 시작됩니다. ‘고난의 행군’시기 침수되어 생산이 중단됐던 ‘혜산청년광산’도 2007년 중국 완샹(萬向)그룹과 ‘혜중광업합영회사’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복구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해 ‘혜산청년광산’을 살려내기는 했으나 당장 정광에서 구리를 추출해 낼 제련소가 없었습니다. ‘혜산청년광산’의 복구와 함께 ‘8월 제련소’가 관심을 받았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혜산청년광산’에서 생산된 구리정광은 제련하지 않은 상태로 전량 중국에 팔기로 투자자인 완샹그룹과 계약이 돼 있어 공개적으로 제련소복구를 서두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국방산업과 경제건설에 필요한 구리 수효(수요)의 90%를 담당 할 ‘혜산청년광산’을 중국기업의 손에만 맡길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때문에 북한은 2007년 말부터 ‘8월 제련소’ 복구를 위한 비밀 팀을 조직하고 완샹그룹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제련소 복구를 시작했습니다.

특히 2009년 5월, 양강도를 현지 시찰한 김정일은 자금부족으로 ‘8월 제련소’ 복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보고를 받고 600만 유로의 자금을 보내주었습니다. 이후 추가로 또 300만 유로를 보내 외국에서 필요한 자재를 모두 사들이도록 했습니다.

북한 ‘채취공업성’과 양강도 당국도 ‘8월 제련소’ 복구를 ‘150일 전투’의 기본 목표로 정하고 자재와 노력을 우선적으로 보내주었습니다.

당시 후계자 위치에 있던 김정은은 ‘8월 제련소’ 복구가 끝나간다는 보고를 받고 생산공정을 CNC화(자동화) 해 “세계적 추세에 맞는 현대적 기업”으로 제련소를 되살려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북한 당국은 2010년 9월 9일, 공화국 창건기념일(국경절)을 계기로 공장 준공식까지 가졌습니다. 또 ‘8월 제련소’의 완공에 맞추어 노동자들의 월급이 적다는 트집을 잡아 ‘혜산청년광산’에서 완샹그룹을 쫓아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북-중 양국 간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하면서 중국 완샹그룹을 쫓아내려던 북한당국의 시도는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수많은 외화를 들여 복구한 ‘8월 제련소’는 준공사실마저 꽁꽁 숨긴 채 아직까지 방치돼야 했고 수백 명도 넘는 공장노동자들은 일감이 없어 당국이 강요하는 건설현장을 집단으로 떠돌게 됐습니다.

이와 관련 북한 양강도의 현지 소식통들은 ‘8월 제련소’를 가동하려면 ‘혜산청년광산’에서 버티고 있는 중국기업을 쫓아내야 한다며 완샹그룹이 있는 한 ‘8월 제련소’의 가동은 불가능 하다고 강조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