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탈북민들] ④ 오늘도 달리는 지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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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사탕이 더 맛있었어요 ."

[ 이동권 ] 북한에 있을 때는 4 15 일 김일성 생일이나 2 16 일 김정일 생일 때 선물 봉지를 줬어요 . 그 안에 캐러멜 , 과자 , 카스테라 이런 게 들어가 있었어요 . 그날만이 당과류를 먹을 수 있는 날이니까 . 북한에서는 좀 특별한 맛이었죠 .

영국에서 대형 한인 마트로 잘 알려진 ‘H 마트’ (H-mart).

뉴몰든에 있는 H 마트에 들어서자, 벽에 걸려있는 태극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한국 음식부터 각종 생활용품, 한복과 탈이 그려진 편지지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물건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습니다.

매장 뒷편에 있는 사무실과 물류창고. 물류팀장 이동권 씨가 올해 10년째 근무 중인 곳입니다.

북한 함경북도 출신인 이 씨는 2008년에 영국에 정착한 탈북민입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그의 책상 위에는 각종 서류가 나란히 정리돼 있고, 벽에는 여러 벌의 형광 조끼가 옷걸이에 걸려있습니다. 여기저기 한국 과자와 사탕들도 널브러져 있습니다.

[ 기자 ] 북한에서 먹었던 사탕이나 과자의 맛이 여기 있는 제품들이랑 비슷한가요 ?

[ 이동권 ] 글쎄요 . ( 비슷한 게 ) 별로 없는 거 같아요 . 북한에서 가끔 접해본 맛에 비하면 여기서는 그렇게 맛있게 먹어보지 못했어요 .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잖아요 . 하지만 북한에서는 항상 기대하고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거든요 .

이 씨가 북한에 있을 때 신식 마트에서 파는 사탕과 과자는 늘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에서 가볼 수 없던 마트의 물류 팀장으로 일하게 된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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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직장에서 과자와 사탕 등을 매일 접하지만, 그 맛은 북한에서 먹었을 때보다 못하다고 말한다. / RFA Photo

" 영어를 못해 힘들었어요 ."

이 씨는 북한에서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15살의 나이에 무작정 중국에 있는 친척을 찾아 국경을 넘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란 낯선 땅에서 친척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고 결국,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강제 북송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끝내 온 가족과 다시 탈북했고, 몽골을 거쳐 영국에 오게 된 이 씨는 그 과정에서 탈북민에 대한 차별은 일상이었다고 회상합니다.

[ 이동권 ] 처음 영국에 와서 솔직히 영어를 모르니까 제일 먼저 찾은 일자리가 한인 마트였어요 . 처음에는 ( 마트에 ) 다양한 인종과 문화 차이도 있고 ,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았죠 . 영어를 못하니까 인종차별을 당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요 . 제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요 . 그래서 영국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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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가 동료의 부름에 물류창고로 돌아가고 있다. 그에게 마트는 성공적인 영국 정착과 꿈을 이루게 해준 소중한 직장이다. / RFA Photo

뉴몰든의 H 마트에는 이 씨를 포함해 17명의 탈북민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영국인은 물론 한국과 중국 출신 이민자들도 직장 동료입니다.

그에게 남북한 직장 동료들의 문화는 어떻게 다른지 물었습니다.

[ 이동권 ] 어차피 한민족이고 , 같은 말을 쓰고요 . ( 남북한의 ) 차이를 인지하는 게 안 좋지 않나요 . 지금은 다 살아가기 바쁘니까 누굴 신경 쓰지 않아요 . 나만 열심히 살면 된다는 생각인 거죠 .

그때 사무실로 한 남성이 들어옵니다.

이 씨의 직장 동료이자 20년 지기 친구 박 준 씨, 그도 탈북민입니다. 이 씨가 박 씨에게 마트에서 일할 것을 권하면서 함께 일하게 됐습니다.

[ 박준 ] 여기서 일한 지 3 년 정도 됐습니다 . 이 친구가 저를 오라고 해서 제가 여기서 일하게 됐습니다 . 재밌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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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이자 서로 의지하는 동료가 된 탈북민 이동권(왼쪽) 씨와 박준(오른쪽) 씨. / RFA Photo

친한 친구 앞인 탓인지, 오히려 더 쑥스러워하는 두 사람.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묻는 말에 두 사람은 힐끗힐끗 눈빛을 교환하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 이동권 ] 아무래도 친구가 같이 있으니까 힘들 때는 서로 의지도 되고 , 얘기도 통하니까 일할 때는 재미있죠 .

" 나의 아이들에게 행복한 세상 물려주고 싶어요 ."

5월 6일은 70년 만에 치러지는 영국의 왕 찰스 3세의 대관식이 있는 날입니다.

대관식을 앞두고 영국 곳곳에는 국기가 매달리고 축제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마트에서 일하는 이 씨에게는 더 바쁜 기간입니다.

[ 이동권 ] 여기 마트에는 축제 분위기가 없어요 . 아무래도 공휴일은 많이 바쁘거든요 . 평일에는 ( 물건 ) 컨테이너도 받아야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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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직원이 물류 창고에서 지게차로 물건을 실어나르고 있다. / RFA Photo

10년 전 지금의 직장에서 말단 직원으로 시작한 그는 물류 팀장이 된 지 5년 차가 됐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성실하게 일한 노력의 결실이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어린 자식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기도 했다고 이 씨는 말합니다.

[ 기자 ] 동권 씨 부모님도 정말 자랑스러워하시겠어요 .

[ 이동권 ] , 아무리 제가 노력해도 올라갈 수 없던 자리인데 여기에서는 노력하면 올라올 수 있으니까요 . 또 솔직히 그만큼 열심히 일했고요 . 자식이 없을 때는 그냥 나만을 위해 살았는데 , 자식이 생기고 이렇게 커가는 걸 보니까 제가 어릴 적 힘들게 살았을 때가 항상 떠오르더라고요 . 현재 북한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항상 굶주리고 추위에 떨지만 , 우리 자식들은 먹고 싶은 것 , 입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으니까요 .

그가 북한에서 그토록 고대했던 선물 봉지 속 사탕들. 지금 영국에 살고 있는 그의 아들들에게는 흔한 일상입니다.

[ 이동권 ] 그래서 내가 여기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죠 . 왜냐하면 자식한테는 제가 살았던 걸 대물림하면 안 되잖아요 . 우리 아이들은 여기에서 태어났으니까 북한 얘기를 해주면 이해를 못 하겠대요 . 그리고 믿지를 못해요 .

옛날 사진 한 장 없이 북한을 떠났다는 이 씨는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과거를 떠올립니다.

만나는 동안 웃음을 잃지 않았던 이 씨가 처음으로 고개를 떨구며 표정 없이 바닥을 응시합니다.

북한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열심에 대한 대가를 경험한 그가 이루고 싶은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요.

[ 이동권 ] 집 사야죠 . 내 집 마련해서 죽기 전에 자식들한테 집 한채씩은 줘야 되니까 , 그게 목표죠 .

이 씨에게 자식은 앞으로 영국에서 열심히 살아갈 이유이자 목표입니다.

북한을 떠나 영국에서 나름 성공적으로 정착했다고 자부하는 이 씨는 또 다른 꿈인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오늘도 마트에서 힘차게 지게차를 운전합니다.

[ 이동권 ] 북한에서는 이루고 싶어도 이룰 수 없는 꿈이죠 . 여기서는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본인만 열심히 한다면 꼭 성공할 수 있어요 . 목표가 없으면 꿈도 이루어질 수도 없는 거고요 . 꿈은 꾸는 자에게 이루어질 수 있는 거예요 . 꿈이 있고 목표가 있으면 꼭 이룰 수 있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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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5년 만에 물류 팀장이 된 이 씨는 “앞으로 자녀들의 행복한 미래가 마지막 꿈”이라고 말했다. / RFA Photo
유럽 영국의 도시 뉴몰든에는 수백 명의 탈북민이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한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탈북민이 한 지역에 모여 사는 곳입니다. 참혹한 현실을 박차고 나와, 꿈과 자유를 찾아 북한을 떠난 이들은 낯선 땅에서 각자의 정착 일기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눈물과 웃음, 좌절과 성취로 채워가는 뉴몰든 탈북민들의 일기장을 들여다봤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노정민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