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탈북민들] ⑥ ‘작은 평양’ 속 2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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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옥진 ] ( 탈북민들이 ) 한국 사회에서 쉽게 적응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 굉장히 배척을 많이 받고 ,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요 . 그래서 결국은 제 3 국을 선택해 오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

‘작은 평양 (Little Pyongyang)’.

남한을 제외하고 탈북민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알려진 영국 뉴몰든의 별칭입니다.

이곳에서는 남북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생활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한 탈북민이 운영하는 유명 식당에 들어가 보니 영어나 남한말보다 북한 사투리가 더 많이 들려옵니다. 뉴몰든이 ‘작은 평양’이라 불리는 이유가 피부로 와닿습니다.

북한 사투리 속에 서울말로 주문을 받는 종업원의 말투가 오히려 신기하게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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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집이 줄지어 있는 뉴몰든의 한 주택가. 주변에는 한인 교회, 태권도 학원, 한국 카페 등이 즐비하다. / RFA Photo

4월 말 내내 먹구름이 꼈다 모처럼 화창한 아침을 맞은 어느 날.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은은한 커피 향이 풍기는 ‘통일주방’에 한인 정치인 박옥진 씨가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지난해 5월, 뉴몰든 서남부 킹스턴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 박 씨는 탈북민 사회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 박옥진 ] 저희 시어머니는 6.25 한국전쟁 때 월남하셨거든요 . 그 과정에서 가족을 전부 잃어버리셨어요 . 한국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매번 나가서 가족을 찾으셨지만 , 결국 못 찾으셨거든요 . 매우 안타까웠는데 여기에 와 보니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 많아서 더 따뜻하게 느껴지고 " 그분이 혹시 우리 어머님의 언니는 아니었을까 ", " 혹시 옆집의 이웃은 아니었을까 " 란 생각이 들어 더 애정이 갔습니다 .

그런 박 의원이 바라보는 ‘작은 평양'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졌습니다.

[ 박옥진 ] 북한 분들이 아직도 옛날 1970~80 년대를 살아가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 옆집에 음식을 해서 갖다준다든지 , 생일을 더 챙겨준다든지 , 더 모인다든지요 . 옛날에 집마다 김치를 돌렸듯이 아직도 그런 문화를 간직하고 계신 것 같아요 . 남한 분들은 좀 더 서구화돼 있고 , 개인주의화 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북한분들은 아직도 옛날의 그 다정하고 ,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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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몰든 거리를 걷고있는 박옥진 씨. 정신과 간호사로, 지역구 의원으로 활동 중인 박옥진 씨는 탈북민이 갖고 있는 트라우마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 RFA Photo

박 의원은 영국 사회가 다른 민족과 인종을 받아들이는 문화를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영국인들에게 뉴몰든 한인 타운은 남북한의 문화와 음식을 알리는 중심지로 꼽히고 있습니다.

[ 박옥진 ] ( 영국인들이 ) " 이곳이 통일 자치구가 아닌가 " 라는 인상을 갖지 않을까 싶어요 . 이곳도 이름이 ' 통일주방 ' 인데 북한 협회 회장님과 남한 출신 분이 공동사업으로 같이 운영해요 . 그래서 이 지역이 다민족을 더 받아들이고 화합을 이루어 내는 뜻깊은 지역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 우리는 ' 코브리쉬 '"

뉴몰든에는 한인 2세와 탈북민 2세들도 많습니다. 모습은 한인이지만, 영국 문화의 뿌리가 더 깊은 세대이기도 합니다.

[ 박옥진 ] 저희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여기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남한 분과 북한 분을 만났을 때 구별하지 못해요 . 그 아이들이 보기에는 모두 한국 사람 , 그러니까 ' 코리안 ' 이지 북한과 남한에 대한 구분이 전혀 없는 것 같아요 . 그냥 하나의 민족으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 그것이 여기에 사는 장점이에요 .

박 의원은 자신의 자녀들이 왜 남북한이 분단돼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당연히 통일돼야 할 하나의 나라’라는 인식이 크다는 겁니다.

4월 30일, 뉴몰든에서 두 딸을 둔 엄마, 탈북민 김미연 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남북한 2세 자녀들에게 한글과 한국 문화를 가르쳤습니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분홍색 머리띠를 한 김 씨의 두 딸은 영국에서 태어났는데, 겉모습만으로는 이들이 탈북민의 자녀라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김 씨는 영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고 말합니다.

[ 김미연 ] 예전에는 제가 북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당당하지 못했던 면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 제가 북한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 그게 너무 불편했어요 . 그래서 그냥 ' 나는 한국 사람이야 ', 이렇게 얘기했던 거 같아요 .

김 씨와 달리 9살 된 첫째 딸은 자신의 환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탈북민 2세들을 칭하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 김미연 ] 첫째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데 , "' 코리안 브리티시 ' 라고 하면 설명해야 할 것이 많아질 수도 있어 " 라고 했더니 딸이 " 난 여기서 태어났고 , 엄마 아빠는 북한 사람이고 , 그럼 된 거 아니야 ?"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 또 나만 복잡했구나 싶었죠 . 요즘은 또 줄여서 ' 코브리쉬 ' 라고 하더라고요 . 그렇게 신조어를 만들고 그걸 알리고 싶어 열심히 홍보하는데 , 재밌대요 .

남북한이 다르게 말하고 표기하는 한글도 김 씨의 작은 고민입니다.

[ 김미연 ] 최근 저희 고향 분에게서 서류를 하나 받았는데 이분이 ' 날짜 ' ' 날자 ' 라고 적어서 보내셨더라고요 . 처음에는 오타인 줄 알았거든요 . 틀린 건 줄 알고 동그라미를 치려다가 " 나는 북한에서 ' 날자 ' 라고 썼었지 " 란 생각에 과연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 과연 나는 자녀한테 무엇을 가르칠 것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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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뉴몰든의 한글학교에서 이사직을 맡았던 김미연 씨는 새로 설립할 한글학교에서 남북한 아이들을 가르칠 교육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 RFA Photo

고민 끝에 김 씨는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딸에게 남북한의 언어를 모두 가르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김 씨는 자녀들이 북한 사투리를 써도 더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 김미연 ] 언어학을 전공한 선생님이 계셨는데 , " 자녀들의 사투리를 고쳐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냐 " 고 질문하셨어요 .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안 고쳐도 될 것 같더라고요 . 그런데 그분이 저에게 " 왜 본인은 이렇게 고치려고 노력하냐 " 고 묻더라고요 . 그래서 이건 시대의 차이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 내 시대에는 아직 대외 관계에서 내 사투리로 인해 소통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고치려 했던 거지만 , 우리 자녀 세대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

영국인들의 시선에도 탈북민은 아시아의 한반도에서 온 ‘코리안’일 뿐입니다.

그래서 김 씨는 영국에서 태어난 두 딸과 탈북민 2세 자녀들에게 하나 된 남북한을 상징하는 한반도기를 알려주려 합니다.

[ 김미연 ] 사실 북한 사람들은 당당하게 인공기를 들고 행사에 참여하기가 조금 어려워요 . 그 국기가 그렇게 자랑스럽지 않잖아요 . 한국 분들은 태극기를 당당하게 들고 나갈 수 있지만 , 저희 아이들이 인공기를 어떤 행사에 참여하기는 조금 어려운 것 같아요 . 그렇다면 우리는 한반도기를 아이들한테 더 많이 가르치자 , 영국에서는 그래도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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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상징인 빨간색 이층 버스가 뉴몰든 주택가를 달리고 있다. 성인 1회 이용 요금은 2파운드 (미화 1.27달러). / RFA Photo

" 북한 법을 만들고 싶어요 "

다음 날 오후, 약간 쌀쌀해진 날씨에 얇은 외투를 걸친 오스틴 장 씨를 만났습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최근 영국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곧 호주에서 시작할 새 직장생활에 마음이 부풀어 있습니다.

장 씨도 2017년 영국에 유학 온 탈북민입니다.

그는 북한 사회에서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의 부모님을 따라 2007년,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탈북을 경험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먹을 것을 가져다준 선교사에 대해 환상을 가졌던 그는, 탈북 후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며 종교를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청년이 되면서 북한에서는 알 수 없던 법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됐고, 결국 법학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 오스틴 장 ] 한국의 전체적인 법체계에 대해 배우다 보니까 영미법계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어요 . 법학과를 졸업한 뒤 계속 꿈이 바뀐 거죠 . 선교사를 하고 싶어 미국 텍사스에서 공부하던 중에 찾아보니까 영국이라는 나라가 꽤 괜찮고 , 시스템도 잘 돼 있고요 .

유학길에 오르기 전, 그가 처음 한국에 정착했을 때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놀림을 받았던 때를 회상하니 자신이 영국에서는 남한 사람이어야 하는지, 북한 사람이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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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인사를 나눌 때만 해도 숫기가 없다고 자신을 소개한 오스틴 장 씨. 금세 대화에 빠져든 그는 어느새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 RFA Photo

[ 오스틴 장 ] 어렸을 때는 섞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 같이 어울려 놀고 그랬지만 , 결국은 뭔가 차별을 받는다는 느낌을 항상 가지고 있었거든요 .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것들은 차별이 아니라 생각의 차이었지만요 . 저는 그냥 북한인이면서 한국인이다 . 정리하자면 ' 한반도인 ' 이죠 . 또 여기 ( 영국 ) 와서 느낀 건 어느 지역 출신인지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

장 씨는 영국에서 북한 출신이란 자신의 배경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친구들을 통해 상처의 아픔은 무뎌졌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견뎌왔던 힘든 과거가 “별것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얻게 됐습니다.

대화를 나눈 지 약 30분이 됐을 무렵, 그는 북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조심스레 꺼내 보였습니다.

[ 오스틴 장 ] 그동안 북한은 김일성 , 김정일 , 김정은까지 그 사람들을 지키고 보전하기 위한 자기들만의 법을 만든 거지 , 사실 그것을 법이라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 나중에 북한이 열리게 되면 ( 북한 ) 법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사실 불편하니까 , 억울하니까 ... 당하지 않기 위해 그런 절차를 밟는 건데 , 삶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법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

10대에 북한을 떠나 20대를 영국에서 보낸 장 씨.

북한 출신이란 정체성의 혼란을 이겨내고, 영국에서 꿈을 키워가는 그의 모습이 뉴몰든에 내리쬔 햇살과 함께 유난히 빛났습니다.

유럽 영국의 도시 뉴몰든에는 수백 명의 탈북민이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한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탈북민이 한 지역에 모여 사는 곳입니다. 참혹한 현실을 박차고 나와, 꿈과 자유를 찾아 북한을 떠난 이들은 낯선 땅에서 각자의 정착 일기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눈물과 웃음, 좌절과 성취로 채워가는 뉴몰든 탈북민들의 일기장을 들여다봤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노정민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