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청소년의 남한살이]① 그들이 ‘여명학교’에 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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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현재 한국에서 일반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탈북 청소년은 대략 1,200여 명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가을 개편을 맞이해 이들의 한국 생활을 집중 조명해 봤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한국 내의 일반 학교에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탈북 청소년들이 어떤 대안을 찾아 나서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봅니다.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서울 중구 남산 2동에 있는 여명학교.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립니다.

교사: 얘들아 종쳤다.

복도를 지나 학생들이 바쁘게 교실로 돌아갑니다. 교실 안에는 8명의 중학생이 앉아 있습니다.

교사: 자, 준비 됐나?

학생: 네, 항상 준비된 상태입니다.

교사: 풀이는 했잖아요, 그지? 자, 그럼 시험 봅시다. 빨리 (책을 서랍에) 넣어라.

학생들은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 서랍 속에 책을 넣은 다음 지난 시간에 배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을 봅니다. 문제 풀이에 집중하던 학생들은 ‘이번 시험은 잘 봤다’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합니다.

학생: OK, 이거는 100점이다.

한국의 여느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들입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이곳은 북한에서 온 청소년만을 위한 학교입니다. 이곳 여명학교에는 중학교 과정과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한 것과 똑같은 학력을 인정해 주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과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이 50명가량 다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왜 한국의 일반 학교에서 남한 학생들과 어울려 공부하지 않고 대안교육 시설인 여명학교에 입학했을까.

여명학교는 사생활 보호와 북에 남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 학생과의 인터뷰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학교 연구주임인 채혜성 선생에게 왜 탈북 청소년들이 일반 학교에서 적응하는 게 힘든지 물어봤습니다.

채혜성: 일단은 언어 때문에 발생하는 ‘낯선 환경’이라는 문제가 있고요. 수업 내용도 이해할 수 없고, 또래집단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어서 외로워하다 결국 외톨이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거기서 오는 어려움이 있고요.

1950년 시작된 한국전쟁으로 갈라진 남북한은 같은 말을 쓰지만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탈북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동문서답을 하곤 한다고 일선 교사들은 설명합니다. 중국의 ‘당나라’ 이야기가 나오면 탈북 학생들은 발음이 비슷한 ‘한나라당’ 그러니까 한국의 집권 여당에 대해 말한다는 겁니다.

한국 교과서에는 한자말이 많이 사용됩니다. 이것도 탈북 청소년들이 수업 진도를 잘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탈북 청소년들은 남한 학생들이 사용하는 유행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보니 따돌림을 당하곤 합니다.

이런 언어적 차이도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상황은 자신이 탈북자라는 걸 감추고 싶은데도 이게 타의에 의해 밝혀지는 경우라고 채 선생은 말합니다.

채혜성: 새터민이라는 낙인, 북한에서 왔다는 인식 때문에 스스로 위축되는 것도 있는데요. 만약 배려가 없는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우리 반에 북한에서 온 얘가 있다’고 말해서, 아이가 원하지 않았는데 밝혀지는 경우에 위축돼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또 다른 문제는 탈북 청소년들이 일반 학교에서 대부분 자신보다 최소한 서너 살 어린 남한 학생들과 함께 공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채혜성: 일단 학력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고등중학교를 몇 년까지 다녀서 그 학력을 남한에서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교육의 격차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좀 낮게 배정하는 편이에요.

문제는 남북 간 학력 차이뿐만이 아닙니다. 중국이나 제 3국에 머문 기간이 길면 길수록 탈북 청소년이 한국의 일반 학교에 배정되는 학년은 낮아집니다. 학습 공백 기간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고등학생 나이가 됐지만 중학교에서, 때로는 초등학교에서 남한 아이들과 어울려야 하는 환경 속에서 탈북 청소년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낍니다. 탈북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서울 공릉동에서 이들의 정착을 지원하고 있는 김영인 상담 심리사입니다.


김영인: 청소년들은 제 생각에는 정체감을 형성하는 시기잖아요. 그래서 사실은 청소년들은 그냥 같은 문화에서만 자라도 그 시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이렇게 문화를 바꾸고, 환경을 바꾸고, 나라를 바꿔서 한국에 오니까, 정말 더 힘든 거지요.

정체성의 혼란은 남북한 체제의 차이를 배우고 적응하는 데서도 나타납니다.

김영인: 한 청소년은 자기가 기숙사 방에 남한 국기와 북한 국기를 같이 붙여놨데요.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오시더니, ‘야, 이거 뭐야’ 그러면서 막 야단을 치더래요. ‘너, 그럴 수 있냐. 우리가 널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네가 어떻게 북한 국기를 달아 놓을 수 있냐.’ 얘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얘가 어떤 심정으로 그걸 붙였는지는 알아볼 생각도 안 하고. 마치 반역자처럼. 그래서 굉장히 거기에 상처를 받고, ‘선생님이 너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을 했데요. ‘나는 북한이 싫어서 왔다는 것 보다는, 나는 아직도 북한을 내 조국이라고 생각한다, 남한도 내 조국이다, 나는 두개의 조국이 있다. 이게 뭐 어떻다는 거냐’ 이거죠. 그러니까 자신의 뿌리를 잃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그곳도 내 뿌리인데, 내가 태어나서 살았던 곳인데, 그걸 버릴 수 있느냐. 버릴 수 없잖아요. 뿌리는 뿌리잖아요. 이런 게 청소년들에게 상당히 어려운 일이죠.

언어와 문화, 그리고 나이 차이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탈북 청소년들은 남한의 일반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 탈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09년 현재 한국의 일반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남한 학생과 함께 재학 중인 탈북 청소년은 1,200여 명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이들의 학교 중도 탈락률은 중학교가 12.9%, 고등학교가 28.1%입니다. 남한 청소년의 중도 탈락률이 중학교 0.8%, 고등학교 1.8%인 것과 비교하면 크게 높은 편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학업을 포기한 채 돈을 벌겠다고 나선다고 일선 교사들은 설명합니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보따리 장사를 통해 용돈이라도 버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갖고 있던 밑천마저 다 털리고 맙니다. 결국 이들은 일탈 행위에 빠져듭니다. 김영인 선생입니다.

김영인: 아이들이 술을 많이 마시고요, 남자 아이들 같은 경우는. 그리고 오토바이를 많이 타더라고요. 면허증 없이도 타고, 면허증이 있어도 사고도 내고. 소년원에 가기도 하고.

이처럼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탈북 청소년들을 위해 여명학교는 2004년 9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서울과 경기도에는 여명학교 말고도 ‘셋넷학교’와 ‘하늘꿈학교’ 같은 민간이 운영하는 대안교육 시설이 세 곳이 더 있습니다.

이 학교들은 나이가 너무 많아서 남한 내 일반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탈북 청소년도 학생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여명학교에는 27살짜리 고등학생도 3명이나 있습니다.

여명학교의 수업 시간. 학생들은 쾌활해 보입니다. 서로 농담도 하고 선생님과도 격의 없이 말합니다. 이런 수업 분위기는 북한식 농담을 알아듣고 때로는 북한식 말투로 이야기할 줄 아는 남한 교사들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또한 이 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도 자연스런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합니다. 여명학교 채혜성 연구주임입니다.

채혜성: 수업시간에 만약 학생들이 중국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 순간 자기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막 하게 돼요. 그러면서 그 안에서 공감이 되고, 위안도 느껴지죠. 일단 이 학교는 자기들을 위해서 세워졌다는 목적이 분명하고, 그것 때문에 선생님들이 늘 항상 있다는 점, 그리고 공감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데에서 큰 위안을 갖게 되는 거죠.

문화적 차이와 탈북자에 대한 편견. 남한의 이런 사회적 환경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탈북 청소년들을 힘들게 합니다. 때로는 학업을 포기한 채 돈을 벌겠다며 사회로 뛰쳐나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아직은 사회에 나갈 준비가 덜 됐다’는 걸 느낀 청소년들은 여명학교 같은 대안 교육 시설로 다시 돌아와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친구들과 함께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다시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