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우리 생활] 북한 자강도가 변하기 힘든 이유

워싱턴-정영 jungy@rfa.org
2024.06.28
[경제와 우리 생활] 북한 자강도가 변하기 힘든 이유 북한 자강도 강계시 중심부에 강계승마구락부(승마장)가 준공됐다고 조선중앙TV가 18일 보도했다. 중앙TV는 장자강반에 있는 인공호수의 둘레를 따라 승마자가 물 위를 달리는 느낌이 들게 주로를 특색있게 형성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의 현실과 앞으로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RFA 주간 프로그램 ‘경제와 우리생활’ 진행을 맡은 정영 입니다. 오늘은 북한에서 군수공장이 집중되어 있는 자강도 주민들의 의식실태에 대해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과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기자: 연구위원님 안녕하셨습니까?

 

정 연구위원: 네 안녕하세요.

 

기자: 북한에서 시장화가 발달하면서 신의주 혜산 등 국경지방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지역도 있다고요?

 

정은이 연구위원: 네 북한은 국가 규모도 작고 또 워낙 주민들에 대한 당국의 통제가 심하다 보니까, 주민들이 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그렇지만 북한도 작지만, 각 지역마다 자연환경도 다르고 생계를 이어가는 방식도 다르다 보니 지역고유의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북한도 많이 변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돌아보면 주민들의 생각이 먹고사는 의식주를 비롯해서 경제적인 관념이나 심지어 국가나 개인, 가족에 대한 주민 인식들도 많이 변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변하기 어려운 지역이 있는데요. 바로 군수산업이 집중된 ‘자강도’라고 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지역이 왜 변하기 어려운 지역적, 정치적 특징이 있는지 한번 짚어볼까 합니다.

 

기자: 지금 신의주나 혜산 사람들은 아마 과거 10~20년 보다 자신들이 얼마나 변했는가 하는 것을 자신들이 알 겁니다. 그런데, 자강도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북한에 있을 때 자강도에 가보았는데 산도 많고 군수공장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정 연구위원: 사실 자강도 지역은 무엇보다도 군수산업부문이 집중된 만큼 정보통제도 상당히 심하고, 그러다 보니까, 변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지금까지 북한에 대한 연구를 해오면서 가장 진입장벽이 높은 지역과 부문이 바로 군수산업이 집중된 곳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2019년 하노이 회담의 결렬에 이어 3~4년 간의 코로나-19 그리고 최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과 맞물려서 북한이 최근 들어 더욱더 군수공업 부문에 대한 지도자의 현지지도나 투자가 더욱더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리고 또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방북도 있었고,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정보는 잘 알려지지 않고, 구체적으로 어떤 무기 거래가 이루이지고 있는지, 또 무엇이 어떻게 이루질 것인지에 대해 외부에 알려진 정확한 정보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강도 지역 주민들이 변하기 어려운 지역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이 지역이 군수 산업적인 특징도 있지만, 이런 산업이나 정책이 기반이 되어 형성이 된 지역의 특징을 북한이탈주민들을 통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겠지요.

 

기자: 그런데 왜 자강도 주민들의 생각이 변하기 어렵다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정은이 연구위원: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지역은 군수공업부문이 집중된 만큼 기본적으로 감시가 심해서 타지방 사람들도 들어오기도 힘들고, 타지방으로 나가는 것도 아주 어렵지요. 그리고 지형적으로도 산간지대이지요. 그래서 군수부문의 주요 공장들을 이쪽으로 옮겼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그런데 이 지역이 특히 변화하기 어려운 지역이라는 것은  노동자들에 대한 식량배급이 그나마 정상적으로 이뤄진 공간이어서 그렇기 때문이라도 주민들의 생각이 변하기 어려운 지역이지 않나 하는 판단이 드는데요.  

 

기자: 이 지역은 주민간 신고체계가 잘 되어 있어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쉽게 발을 붙이기 어렵습니다.

 

정 연구위원: 옳습니다. 군수산업이 집중되었다는 것은 배급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특히 북한의 정치 체제는 ‘양정’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양정사업’ 은 식량 배급이라는 수단을 통해 정치를 한다, 주민 통제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북한도 국가의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배급을 누구나 줄 수는 없는 구조로 바뀌고 있고요. 실제로 지역이나 계층으로 봐도 배급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많이 줄어들었고, 평양 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군수공업부문이 집중되어 있으면 또 말이 달라지지요. 다른 곳은 몰라도 군수산업이 집중된 곳만큼은 배급이 최소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자: 자강도 지역은 군수공장 지역이어서 공장에서 배급을 좀 주긴 합니다만, 제가 있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때 많은 사람들이 아사한 곳이기도 합니다.

 

정 연구위원: 맞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 기근의 특징을 보면, 대도시 중심으로 아사자가 많이 발생 했지요. 왜냐면 대도시에 공장기업소가 집중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만큼 배급에 의존해 사는 노동자들이 밀집되어 살았다는 겁니다. 사실 자강도도 1990년대 고난의 행군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어요. 아무리 군수공장이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자강도는 특별히 식량이 생산되는 곳이 아니잖아요. 북한에서도 외부에서 조달을 하니까요. 따라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일시적으로는 자강도도 배급이 끊기는 상황들이 있었습니다.

 

기자: 자강도는 군수공장 지역이기 때문에 통행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이 들어가서 장사를 할 수 없었고요. 또한 주민들은 국가 배급에 의존해 살아가다가 갑자기 끊기니까, 그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대응책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북한도 고난의 행군 때 군수공업부분의 노동자들을 구제해야 하겠다고 특단의 조치를 취했던 때도 있습니다.

 

정 연구위원: 네. 대부분 군수공장 노동자들이 대부분이고, 바꿔 말하면 배급에 의존해 살아가는 노동자들이었던 것이지요. 실제로도 조사를 해 보면, 일시적으로 배급이 끊겨서 다른 지역보다 더 어려웠다고 해요. 대체로 군수공장의 경우 노동자들이 3교대로 하루 8시간 이상 나가서 일하는 배급 노동자들이었는데, 갑자기 배급이 끊기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기자: 그래서 당시 상황이 말이 아니었지요.

 

정은이 연구위원: 그때 김정일 위원장이 세운 대책이 그래도 군수공장이 밀집된 자강도만큼은 살려야 한다고 해서 전국에 통나무를 다 이곳에 집중시켜서 중국에 넘겨서 대신 식량으로 바꿀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고 합니다. 그때 밀가루가 중국에서 엄청 들여왔다고 해요. 그래서 3개월 정도 배급을 주지 못했고, 그때 밀가루를 다 풀어서 그 이후로 오히려 다른 지역에서 식량을 구하러 친척들이 왔다고 해요.

 

기자: 저도 기억하지만, 자강도에서 찍은 목재를 양강도 국경 세관을 통해 중국에 넘기고 밀가루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한창이고,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등 불안정이 지속되기 때문에 아마 자강도 지역 군수공장들은 무기 생산때문에 지금도 가동이 계속되지 않냐는 생각이 듭니다. 네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 나누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정 연구위원: 네 감사합니다.

 

기자: 경제와 우리 생활 지금까지 도움 말씀에는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한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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