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함께 잘살아 보는 방법을 고민해보는 RFA 주간 프로그램 ‘경제와 우리생활’ 진행을 맡은 정영 입니다. 북한은 2006년 상업운행법을 최초로 채택하고 중앙은행의 기능을 높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사금융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데요. 오늘 경제와 우리 생활 시간에는 북한의 사금융을 중심으로 경제 전문가인 남한 통일연구원 정은이 박사님과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기자: 정은이 박사님 한 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정 박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은행이라고 하면 신용이 우선인데요. 그런데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조선중앙은행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 박사: 북한 주민들은 일단 공금융에 대한 신뢰도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용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은행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은행에 돈이 들어가면 즉 입금을 하면 인출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죠. 특히 2009년 11월 30일 북한 당국이 화폐교환을 실시하면서 주민들이 저축한 돈이 다 휴지가 되는 뼈아픈 경험을 하면서 은행을 더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은행이 주민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라고 할 수 있죠.
기자: 예 남한이나 미국에는 은행이 참 많은데요. 북한 주민들은 남한이나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은행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박사님은 돈을 어디에 맡기고 계십니까
정 박사: (웃음) 당연히 은행에 맡기죠. 일반적으로 은행의 기능을 보면 돈을 저축할 수 있고, 저축을 한 만큼 언제든지 본인이 인출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요. 그 외에도 대출을 할 수 있고 또 송금을 할 수 있는 그런 여러 가지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은행을 굉장히 신뢰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 이런 것들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저도 남한에서 살 때 돈을 맡길 일이 있으면 은행에 가서 직원에게 통장과 돈을 건네고 예금 시킬 수 있었고, 아니면 창구 직원에게 특별히 갈 필요가 없이 현금자동인출기라고 하는 기계에 돈을 넣거나 또 빼기도 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은행이 맡긴 돈을 안 준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정박사: 맞습니다. 또 돈을 맡기면 그만큼 이자도 발생을 하잖아요. 본인이 돈을 저금한 만큼 일정 비율의 이자도 얻을 수 있죠.
기자: 예 그래서 외부 사회에서는 은행이 신뢰가 참 높은데요. 뭐 한 은행이 좀 부실하게 하면 다른 은행으로 또 옮기기 때문에 은행 간에 또 경쟁도 심하고요. 그러면 북한 주민들은 돈을 어딘가 보관해야 하고 또 때로는 돈이 꼭 필요할 때는 빌리기도 해야 되는데요. 북한 사람들은 돈을 어떻게 보관하고 있습니까?
정박사: 일단 돈은 집 어딘가에 보관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 같습니다. 아궁이에 보관하는 경우도 있고요. 너무 많으면 땅에 묻고 콘크리트를 발라놓는다든지, 벽 속에 넣는다든지 이런 사례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강도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기도 하고요. 또 당국에서 가택 수색을 하면 벽까지도 허무는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다만 장사 대금 이체나 대출 같은 경우는 사금융을 이용한다고 보면 됩니다.
기자: 네 저도 이제 북한에서 살았지만 큰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불안해하거든요. 왜냐하면 나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예를 들어 가지고 있던 돈을 땅에다 묻었는데 그걸 아는 사람이 있다든가, 혹은 자기만 알게 감춰놨는데 (권력기관에)잡혀가거나 또 무슨 사고를 당하면 그것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그런 우려 때문에 돈을 가지고 있어도 상당히 고민하거든요. 그런데 남한 사람들은 돈을 어떻게 보관하고 있습니까?
정박사: 네, 남한 사람들 같은 경우는 일반적으로 집이나 이런 데 보관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고요. 대체로 은행에 보관하는 경우가 많고요. 또 은행에 보관을 하면 어떤 이점이 있냐면 그만큼 은행에 돈을 보관한 만큼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자: 그래서 은행에 보관하든가 아니면 또 어떤 사람들은 주식 투자나 부동산 투자 같은 것을 하는 등 효율적으로 보관하는 것 같습니다.
정박사: 네 맞습니다. 포트폴리오라는 것을 만들고 있습니다. 즉 자산을 은행에 예금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부동산 주택을 산다든지 혹은 주식에 투자할 수도 있고요. 펀드에 투자를 할 수 있고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의 돈을 분산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그런데 북한에서 장사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돈이 필요할 텐데요. 그러면 북한에도 돈을 빌려주거나 이체를 도와주는 그런 사금융이 있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파악이 되고 있습니까?
정박사: 네 북한에서는 이를 돈장사라고 부르는데요. 사실 돈장사가 원래부터 우리로 말하자면 이체나 대출이 주요 업무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로 말하자면 원래 이들은 환전상에 불과했습니다. 즉 내화를 외화로 바꿔주거나 외화를 외화로 바꿔주는 환전상에 불과했다는 것이죠. 그 기원을 살펴보면 북한에서 이미 1980년대에 주민 생활품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즉 국영 상점에 가도 상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외화 상점에 가면 상품이 있었다는 거죠. 특히 북한 사람들이 왜 외화 상점에 갈 필요성이 있냐면 우리도 마찬가지죠. 결혼식이나 제사 등 관혼 상제를 치르기 위해 꼭 필요한 물품들이 있고 또 이것이 바로 외화상점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외화 상점에서는 외화로만 구입이 가능하지만 일반인은 외화를 소지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때 북송사업을 통해서 1950년대 말부터 일본에서 북한으로 건너온 재일조선인 북송 동포들이 있었고 이들은 외화를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에 사는 친척들 가족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어떤 원조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들은 정치적으로는 감시의 대상이었지만 일본 친척으로부터 엔화와 물품을 원조받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현지 주민에 비해 훨씬 더 윤택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일 조선인 교포는 옥수수가 아닌 쌀을 먹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내화가 필요했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북송 교포와 일반 주민 간의 외화와 내화의 교환이 발생했는데 이때 중간에서 교환을 해주는 환전상이 탄생을 했고 그들이 바로 오늘날의 돈 장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원래 돈 장사들은 우리로 말하자면 어떤 이체를 해준다든지 대출을 해준다라기보다는 환전상에서부터 비롯되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예 남한에서는 개인들이 돈을 빌릴 때가 있지 않습니까? 은행에서 빌립니까 아니면 북한처럼 사금융이라고 하는 그런 곳에서 빌립니까?
정박사: 일반적으로 우리가 대출을 한다라고 할 때는 은행에서 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할 수가 있죠. 물론 그중 은행에서 대출을 해준다고 했을 때도 아무나 대출을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일정 정도 담보가 있어야만 대출을 받을 수 있고요. 또 이렇게 담보가 어려운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대출해주는 그런 곳이 있는데, 그런 곳(사금융)을 통해서 대출을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요즘 세계적으로 금리가 많이 올라가서 은행에서도 대출 금리가 많이 올라갔는데 미국에서는 지금 주택담보대출이 거의 7%까지 올라갔거든요. 개인들이 은행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을 이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북한에서는 개인들이 사금융을 통해서 돈을 보낸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이체 서비스는 언제부터 시작됐습니까?
정박사: 네 북한에서 이체 서비스는 이관 서비스라고 하는데요. 원래부터 사금융이 이 업무를 한 것은 아닙니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처음 사금융은 환전상에 불과했습니다. 즉 외화를 내화로 바꾼 다음 봉투에 돈을 넣어서 테이프로 꽁꽁 묶어 주소를 적어서 장거리를 이용하는 버스 차장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2009년 11월 30일 화폐 교환 이후6개월 정도 상당히 어수선한 기간이 있었고 그 기간이 지나다 보니까 한 2010년 4월 이후에 이런 업무를 수행하는 버스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얼핏 봐도 한 차에 한 100명 정도의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버스가 다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네 오늘 북한의 사금융의 유래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시간상 관계로 오늘은 여기서 줄이고 다음 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정박사: 네 고맙습니다.
참여자 정은이 연구위원, 기사작성 정영기자,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