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김정일 주체사상은 숫자 ‘9’였다

장진성∙탈북 작가
2013.04.02
flower_event9-305.jpg 북한이 지난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2월16일)을 '광명성절'로 제정한 후 올해 두 번째 맞는 광명성절을 성대히 기념했다. 평양에서 열린 김정일화 축전에 '은하3호'와 '은하9호'의 모형이 전시돼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주체 조선의 지도자들인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이 3대 수령의 명맥을 이어온 숫자 ‘9’의 비밀에 대해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북한은 주체사상의 나라입니다. 유물론에 기초한 주체여서 사상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그 사상의 영도적 역할은 수령이 한다는 그 관념 외 또 다른 추상을 기필코 반대합니다. 북한이 기독교나 불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 타 종교를 반 체제적 요소로 보는 이유도 김일성 종교 만을 고집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민들은 이렇듯 종교나 사상의 자유가 박탈 당한 반면 김일성, 김정일은 자신들의 일상은 물론 정책과 관련해서도 항상 점쟁이들에게 의존했습니다.

수령을 영도하는 그 신령한 점쟁이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북한 간부들 속에서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최근 북한 권력 내부 사정에 밝은 북한 뉴스 인터넷 매체인 뉴 포커스 통신원이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김씨 3대 세습정권의 새로운 비밀을 알려왔습니다.

김정일이 3남 중 막내인 20대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심한 것이 그의 길운, 즉 생일인 1월 8일과 관련 있다는 것입니다. 통신원은 1월 8일을 합친 숫자가 '9'라며 김 씨 일가는 3대를 거쳐 숫자 '9'에 자신들의 운명은 물론, 국가정책 결정도 의존해 왔다는 것입니다.

우선 9는 숫자 0부터 10 사이에 가장 많은 숫자의 표기입니다. 그래서 한자의 의미로 봤을 때도 갖출 구(具)는 아홉 개의 획으로 돼 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숫자 3을 행운의 숫자로 여겼습니다. 이 3을 세 번 더하면 '9'가 되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김일성이 숫자 '9'의 '구'발음을 특별히 좋아한 이유는 한자 금테 두를 구(釦)에 자기의 성 씨인 김(金)이 들어가 있어서라는 것입니다.

해방 후 조선8도를 대표했던 8대 무당들 중 "맹호출림"이 평안도 무당 기운이 가장 셌는데 그는 김일성의 길운은 숫자 9와 융통한다고 늘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선지 김일성은 공화국 창건 일을 9월 9일, 원래 5도였던 북한 행정구역도 9도로 만들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자기의 경호부대인 호위사령부 부대명칭도 "963군부대"라고 했는데 앞자리의 '9'와 뒤의 숫자(6+3)도 '9'가 되어 겹 '9'를 이룹니다. 실제 "963군부대"는 김일성, 김정일 경호부대들인 1호 호위 총국과, 2호 호위 총국, 이렇게 2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김씨 일가에게만 진상되는 식품들에도 숫자 '9'를 적용했습니다. 북한 전역에는 중앙당 재정 경리부가 지정한 '9호농장', '9호 작업반'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각종 특산물들은 김 씨 일가에게만 공급되는 '9호제품'들입니다.

김정일 또한 아버지로부터 김 씨 일가의 "대 통운"인 숫자 '9'의 미련을 계승하려고 했습니다. 우선 김정일은 자기의 생일인 2월 16일 (2+1+6=9)부터가 숫자 9와 연관 있다고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김정일은 자신의 차량 앞 번호를 "2.16"으로 했고, 이후 경호 위장술 차원에서 그 번호를 북한 최고위직들의 다른 차량에도 달도록 했습니다. 군 최고사령관 추대도 12월 24일,(1+2+2+4=9)로, 심지어 김정일은 자기의 절대권력을 공식화하는 당 총 비서 추대도 김일성 사후 1994년 7월 8일 이후 3년 3개월을 더해 1997년 10월 8일(1+8=9)로 맞추었다는 것입니다.

통신원의 제보를 근거로 북한 역사의 사건들을 추적해보니 거기에도 숫자 '9'의 비밀이 얽혀있었습니다.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세습의 첫 공개 직함인 조선인민군 대장 칭호를 2010년 9월 27일에 주었는데 이는 앞의 9와 뒤의 (2+7)를 합쳐 겹 '9'가 됩니다. 2012년 4월 11일 (1+2+4+1+1=9) 에는 조선노동당 제1비서로, 다음날인 2012년 4월 12일(2000년을 뜻하는 2+4+1+2=9)에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2012년 7월 18일에는 (2000년을 뜻하는 2+7=9 1+8=9) 겹 '9'를 맞춰 공화국 원수로 추대했습니다.

북한이 국제사회를 상대로 장거리 로켓이나 핵 실험으로 공갈을 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예상 날짜를 김일성, 김정일 생일, 혹은 북한의 기념일을 전후로 계산해서 점쳤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정권은 국가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정책들도 숫자 9에 맞추었습니다. 장거리로켓 2호 발사 실험도 2009년 4월5일(4+5=9)로 겹 (9)를 맞추었고 , 장거리로켓 3호 발사 실험은 2012년 12월 12일 (1+2+1+2+1+2=9)로 똑같은 숫자를 합쳐 9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올해 3차 핵 실험도 2013년 2월 12일 (1+3+2+1+2=9)에 감행했습니다.

얼마 전 북한이 미국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동영상을 유트브에 올려 논란이 됐었는데 그 동영상에 등장하는 장거리 로켓도 "은하9호"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김씨 일가의 3대 세습은 숫자 9의 세습이었습니다.

주민들에게는 미신 행위를 엄격히 통제하고 개인 우상화도 정치적 중 범죄로 다스리는 북한 정권입니다. 더구나 유물론주의 주체철학을 국가이념으로 규정하고 오직 수령만 믿고 살도록 온갖 세뇌와 통제를 하던 북한 정권입니다. 그런데 정작 김씨 일가는 북한의 유명 점쟁이들을 옆에 두고 자기들의 안위와 번영만 축원하는 숫자 '9'에 의존하고 살았습니다. 나라와 인민의 운명은 아랑곳없이 자기들의 길 운만 기원했던 김 씨 일가의 주체 이념은 숫자 '9'였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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