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충성심만이 아니라 그날의 그리움까지 계승하라'

장진성∙탈북 작가
201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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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조부인 김형직 사망 85주년을 맞아 5일 평양 만경대 김형직의 묘에 북한 김정일이 보낸 화환이 놓여있다.
김정일의 조부인 김형직 사망 85주년을 맞아 5일 평양 만경대 김형직의 묘에 북한 김정일이 보낸 화환이 놓여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노래 : 어디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이 노래는 북조선에서 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라고 하는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입니다. 6.25전쟁시기 전선의 병사들이 후방에 있는 최고사령관을 그리며 노래를 불렀다는 내용인데요. 충성심만이 아니라 그날의 그리움까지 계승하라는 의미에서 오늘도 김정일정권은 이 노래를 주민들에게 부르도록 강요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조선의 최고지도자로서 누구보다 모범이기 때문에 누구나 본받고 배우고, 심지어는 정서적으로 그리워하기까지 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과연 김정일이 그런 사람일가요?

현재 남조선에는 북조선을 탈출한 사람들이 이 달로 2만천명이 넘어섰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탈북자라고 하는데요. 들려오는 소식들에 의하면 최근 국가보위부는 북조선에 남아있는 탈북자 가족들을 지방 내륙으로 추방하거나, 수용소로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엄격한 3대멸족 연좌제대로 따진다면 엄연히 김정일도 제외가 아닐텐데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김정일도 탈북자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김씨일가의 탈북역사는 할아버지 김형직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북한 교과서는 김씨일가의 세습정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김정일의 할아버지 김형직을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독립투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3.1운동은 당시 일본 내 한국 유학생들이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의 영향을 받아 1919년 2월 8일에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서를 시작됐고, 국내 종교단체들이 그 선언문에 서명하면서 부터 일어났습니다. 더욱이 일본 사람들에 의한 고종황제의 독설 소문까지 퍼지면서 수많은 서울 시민들이 거리로 뛰처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때 평양 근교에서 한의사였던 김형직은 치료명목으로 아편 장사에만 열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일본 경찰도 처음엔 환자치료를 위한 작은 양의 거래이겠지, 하고 방심했었느나, 점차 판이 커지자 김형직을 아편밀매 요시찰 인물로 분류하게 됩니다. 김형직이 몇 번에 걸쳐 감옥에 갔던 것도 북한 교과서는 독립운동 때문이라고 기술하지만 사실 아편수배범으로 체포됐던 것입니다. 끝끝내 김형직은 고향과 일가를 뒤로 한 채 중국으로 황급히 도망쳐야 했고, 그 과정에 병을 만나 이국 땅에서 객사하게 됩니다.

김일성도 광복의 꿈을 안고 14살 그 어린 나이에 천리길을 걸쳐 압록강을 넘은 것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조선에선 김일성의 그 천리길을 광복의 천리길로 신격화하고, 해마다 전국의 대학생들에게 그 노정을 체험하도록 강요하고 있지요. 아무리 일제가 밉고, 국민들 모두의 가슴에 독립열망이 불타던 항거의 시대라 할지라도 14살짜리 어린 애를 무책임하게 홀로 타향도 아닌 이국으로 보낼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김일성이 중국으로 가게 된 이유 또한 동네 애들과 싸움을 하는 과정에 상대편을 불구로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경찰로부터 호출을 받게 된 김형직 일가는 장남 김일성을 피신시키기 위해 주저없이 국경 너머로 멀리 떠나보냈던 것입니다. 이렇듯 아편장사를 하던 김형직에 이어 김일성도 형사사건 책임을 피하기 위해 오늘의 탈북자들처럼 두만강, 압록강을 넘게 됐습니다. 김정일 본인도 역시 할아버지, 아버지의 탈북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망명일가의 책임에서, 그리고 조선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탄압하는 그 3대멸족 연좌제 책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우선 김정일은 출생지역부터가 북조선도, 백두산도 아닙니다. 그의 출생지역은 시베리아의 툰드라권에 속하는 아무르강 유역의 한 촌락 와츠꼬에(일명 부아츠크)부근의 허름한 산골막사였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김일성의 항일역사는 1939년에서 1945년까지 전혀 서술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김일성이 그 시기에 만주에서 러시아로 들어가 구 소련 붉은군대에 편입되어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김정일을 낳자고 소련 붉은 군대에서 탈영하여 1942년에 자연환경도 열악한 백두산으로 올라갈 순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여러분들과 달리 출생지역부터가 남다른 김정일은 그 일가 또한 확실히 남다릅니다.

두번째 처인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은 1996년 미국으로 망명해서 김정일 왕조정권을 폭로하는 “등나무집”이란 책을 냈습니다, 함께 탈북했던 성혜랑의 아들 이한영은 김정일의 처조카로서 옆에서 지켜본 김씨독재를 폭로한 “김정일 로열패멀리”란 책을 내어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성혜림도 러시아에서 치료를 받다가 2002년 5월 사망했는데 성혜림은 유골로도 평양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이 때문에 김정일은 그의 장례에 화환조차 보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재 김정은의 어머니인 김정일의 세번째 처 고영희도 비슷합니다. 2001년 10월 고영희의 동생 고영숙도 스위스를 걸쳐 미국으로 망명을 했습니다. 장남인 김정남은 마카오 등지를 떠돌며 일본 기자, 남조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아예 북한이라고 지칭하면서까지 3대세습을 비난하기도 하였습니다.

김정일은 이렇듯 자기 일가 부터가 미국이나 남조선, 외국으로 망명한 탈북자 가족입니다. 조선의 혁명적 용어로 표현한다면 배신자가족이어서 국가보위부가 제일 먼저 숙청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저는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참으로 북조선 인민들을 잘 살게 해줄 그런 위대한 장군님은 어디에 계실까?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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