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김정일이 함경북도 사건을 지시한 배경은?
2012.10.30

오늘은 함경북도 사건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함경북도는 북한의 북방지역에서 가장 현대화 된 지방으로 평가 받는 곳입니다. 나진-선봉과 이어지는 청진 항이 있고 중국과 지리적으로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로부터 함경도는 유배지여서 주민들의 끈기와 도전정신도 지역경제를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함경도는 지역주의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김일성이 1980년대 말 중앙당을 축소하라고 지시했었는데 이는 중앙당에 과도하게 포진된 함경도 출신 명단을 보고 지역주의가 종파주의로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당 간부들 상당수가 함경도 사람들로 구성된 것은 사돈의 8촌까지 출신성분을 따지는 북한의 당 인사원칙에 근본문제가 있었습니다. 북한은 정권 초기 김일성의 빨치산 동지들로 내각을 구성했는데 이는 해방 전 김일성의 항일 국내 연고자들 대부분이 남쪽지역보다 중국과 가까운 북쪽에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6.25전쟁도 북한의 간부구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북한의 당 간부인사 내규 조항에는 본인은 물론, 친인척들의 6.25전쟁 경력이 중요 검증요구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남쪽 지역 주민들 같은 경우 북한군이 압록강까지 후퇴할 때 유엔군의 점령기간이 길었고, 그래서 월남 자 가족도 북쪽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입니다. 김일성은 이런 사정은 안중에 없이 단순히 머리 숫자로만 계산하고 함경도 간부들을 중앙당에서 축소시키라고 지시했지만 실효성이 없었습니다.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도 함경도 중심의 정권 구성을 내심 불안해했다고 합니다. 그 증거로 2002년경 김정일은 중앙당 조직 부에 평안도 이하 남쪽지역 간부양성을 당 차원에서 추진하라는 지시를 내리게 됩니다. 하여 그 당시 평안도, 황해도 지역 간부들을 김일성 고급 당 학교에서 재교육하는 조치가 이루어졌고, 실지 중앙당과 중앙기관 간부로 대거 임명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지방 출신들보다도 강한 함경도 특유의 결속력에 부딪혀 김정일은 그때에도 끝내 중앙당 개혁을 실현할 수 없게 됩니다. 이미 반세기 이상 함경도 중심의 학연과 지연, 인연으로 구축된 간부 환경을 단 몇 년 안에 송두리째 바꿀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김정일이 대홍단정신, 강계정신을 부각시키며 양강도와 자강도를 내세운 것은 함경도 권력화를 차단하기 위한 일종의 지역적 배타주의였습니다. 2003년경 함경남도 도당 조직비서가 김정일의 그 의도를 발설했다가 수용소로 끌려간 사례도 있었습니다. 2011년 5월에 터진 “함경북도 사건”은 함경도 세력화를 늘 불안해했던 김정일의 의도적인 숙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양강도에 있는 특각에서 평양으로 돌아오던 길에 김정일은 사전 예고도 없이 함경북도 현지시찰을 단행하게 됩니다. 그때 김정일은 자신의 행각을 숨기기 위해 경호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았다고 합니다. 도로까지 밀려나온 장사행렬로 버스가 도중에 계속 멈추었고, 그 통에 김정일은 버스에 설치된 경호용 CCTV와 스피커를 통해 일부 장사꾼들이 외치는 “상표도 안 뗀 한국상품입니다.”라는 목소리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김정일의 현지시찰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청진시내는 어디를 보나 정리된 곳이 없었습니다, 보다 김정일을 화나게 했던 것은 도당 책임비서의 행방을 알아보라고 보냈던 경호군관의 대답이었습니다. 도당책임비서 이하 몇 명의 간부들이 배를 타고 섬으로 놀러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김정일은 평양으로 돌아와 “함경북도가 전체적으로 부패됐다. 오물 장이다.”라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룡해와 김기남을 공동단장으로 하는 검열단이 조직되어 함경북도에 대한 집중검열을 시작하게 됩니다. 우선 검열단은 업무 첫 날 함경북도 도당책임비서 홍석형 부터 체포했습니다. 최근 한국을 비롯한 일부 언론들에서는 홍석형이 경제담당 비서로 근무하던 2011년 6월에 김정은이 해임시켰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 된 보도입니다. 홍석형은 박남기 사건 연장선에서 함경북도 도당책임비서로 강등되어 그 시점에는 함경북도 도당책임비서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홍석형을 “오물장 된 함경북도를 청소하라.”는 김정일의 지시로 최룡해, 김기남이 현장에 파견되어 체포한 것입니다. 홍석형은 북한 주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림꺽정 소설의 작가이면서 초대 부수상,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지냈던 홍명희의 손자입니다. 검열단이 이런 홍석형부터 체포한 것은 김정일의 분노가 그만큼 컸고, 함경북도 검열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실지로 검열이 진행되는 과정에 함경북도 보위부장, 행정위원장, 등 도급 기관장들이 차례로 체포됐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함경북도 간부들과 내통한 자들도 색출해서 엄벌하라는 김정일의 지시로 함경도 출신 중앙당 간부들도 상당수도 해임되었습니다. 그들의 죄명은 단순했습니다. 검열단의 한 달 검열총화에서 열거된 도급 간부들 비리의 핵심은 별로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함경북도 체신관리국장이 휴대전화를 불법적으로 팔아먹고, 그 거액의 돈을 몰래 착복하는 과정에 도급 간부들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외부 언론들이 북한에서 불법 휴대전화와의 전쟁이 벌어졌다는 기사가 나왔었는데 바로 그 근거가 함경북도 사건이었습니다. 아마도 김정일은 자기의 사망시간표를 미리 알았던 것 같습니다. 김정은에게 세습 권력을 넘겨주기 전에 김일성 때부터 강조돼 온 함경도 세력화를 그렇게 해서라도 약화시켜 보려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장진성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