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추석은 민족최대의 아픈 명절

장진성∙탈북 작가
201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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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_thanksgiving-305.jpg 추석을 맞아 북한 주민들이 조상묘를 찾아 성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민속명절인 추석에 대해 말씀 드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추석은 한국의 전통 명절 중 하나인데 설날, 한식, 중추, 동지를 4대 민속명절이라고 합니다. 추석을  중추절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가을을 초추•중추•종추 3달로 나누어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추석은 음력 8월 15일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때는 농경민족인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 봄에서 여름 동안 가꾼 곡식과 과일들이 익어 수확을 거둘 계절이 되었고 1년 중 가장 큰 만월 날을 맞이하였으니 즐겁고 마음이 풍족하였습니다. 여름처럼 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춥지도 않아서 살기에 가장 알맞은 계절이므로 속담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이라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추석을 명절로 삼은 것은 이미 삼국시대 초기였습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 왕 때 도읍 안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누어 왕녀가 각기 거느리고 7월 15일부터 8월 한가위 날까지 한 달 동안 두레 삼 삼기를 하였습니다. 마지막 날에 심사를 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한턱을 내고 <회소곡>을 부르며 놀았다고 합니다. 오랜 전통이 있는 추석명절에는 여러 가지 행사와 놀이가 세시풍속으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추석이 되면 조석으로 기후가 쌀쌀해지므로 사람들은 여름옷에서 가을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추석에 입는 새 옷을 ‘추석 빔’이라고 합니다. 옛날 머슴을 두고 농사짓는 가정에서는 머슴들까지도 추석 때에는 새로 옷을 한 벌씩 해주었다고 합니다. 추석날 아침 일찍 일어나 첫 번째 일은 차례를 지내는 일입니다. 주부들이 수일 전부터 미리 준비한 제물을 차려놓고 차례를 지냅니다.

이 때에 설날과는 달리 흰 떡국 대신 햅쌀로 밥을 짓고 햅쌀로 술을 빚고 햇곡식으로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는 것이 상례입니다. 가을 수확을 하면 햇곡식을 조상에게 먼저 천신한 다음에 사람이 먹는데 추석 차례가 천신을 겸하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차례가 끝나면 차례에 올렸던 음식으로 온 가족이 음복을 합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조상의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하는데, 추석에 앞서 낫을 갈아 가지고 산소에 가서 풀을 깎는 벌초를 합니다. 여름 동안 자란 풀이 무성하고 시들어 산불이라도 나면 무덤이 타게 되므로 미리 풀을 베어주는 것입니다.

어쩌다 추석이 되어도 벌초를 하지 않은 무덤은 자손이 없어 임자 없는 무덤이거나 자손은 있어도 불효하여 조상의 무덤을 돌보지 않는 경우여서 남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제가 이런 추석전통에 대해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남한 같은 경우 추석은 공휴일로 제정되어 민족대이동이라고 부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교통혼잡을 이루고 도시의 직장들은 쉬게 됩니다. 이처럼 고향에 돌아가는 것은 조상에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추석명절에 차례와 성묘를 못 하는 것을 수치로 알고, 자손이 된 도리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 우리 민족의 의식구조로서 추석을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한 민족인데도 북한의 민족최대의 명절은 남한과 다릅니다. 바로 김부자 생일, 즉 개인의 생일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북한의 추석풍경은 김일성 주의 전통에 밀려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오히려 가난과 슬픔, 눈물의 주민현실을 고발하는 아픔의 명절인 것입니다. 우선 산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 기아의 고발장입니다. 가을이 와도 식량이 부족한 주민들이어서 조상에게 정성 다해야 될 제사상의 음식마저 빈곤하기 그지없습니다. 일가 친척끼리 일년 중 몇 번 만나는 그 자리에서마저도 산 사람 먹거리를 더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문제는 그 뿐이 아닙니다. 대부분 나무 묘비를 사용하는 북한에서 조상의 무덤을 찾는 일도 쉽지만 않습니다. 땔감 대신 나무 묘비를 파헤쳐가는 사람들이 많아서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북한에는 묘비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일반 주민들은 대체로 나무 묘비를 사용하고, 돈 있는 사람이나 조상에 대한 효도가 지극한 사람들의 경우 대리석이나 화강석으로 묘비를 세웁니다. 그러나 그런 대리석이나 화강석과 같이 잘 다듬어진 묘비들의 경우 도둑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묘비를 주변 농가에 돈을 주고 맡겼다가 제삿날에만 사용하는 집들도 꽤 많은 형편입니다.

죽음의 권리와 안정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무덤은 오직 정권에 의해 인정된 애국열사 묘뿐입니다. 그 무덤들의 경우 죽은 자의 경력뿐만 아니라 긴 글귀도 허용됩니다. 북한은 묘비마저 대중이 보는 선전선동수단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생년월일과 사망일, 묘주의 이름만 새기도록 돼 있습니다. 죽은 자의 유언이나 영혼을 기리는 글귀마저 차단하는 인권, 아니 죽음의 불모지인 셈입니다. 결국 북한 주민들은 살아서도 입을 다물어야 하지만 죽어서까지 침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묘비의 차별화로 죽음의 충성미학을 선전하는 북한이어서 더더욱 개인은 죽음의 평등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행증이 있어야만 이동이 가능한 북한에는 묘비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습니다. 무덤들이 주변에 늘어나면 어느 것이 누구 집 무덤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몇 년 동안 남의 무덤 앞에서 제사를 지내는 웃지 못할 일도 가끔 벌어지게 됩니다. 그 경우보다 더 황당한 것은 산사태나 홍수로 무덤이 유실됐을 때입니다.

반면 북한에는 성지로 신성화되는 무덤이 있습니다. 바로 김일성, 김정일의 미라가 보관된 금수산기념 궁전입니다. 죽어서도 궁전의 주인이 된 그 김씨 미라에 해마다 들어가는 돈만 해도 천문학적인 금액입니다. 1년에 강냉이 200만톤이 없어 100만명이 죽어가던 1995년, 북한 정권은 강냉이 600만 톤을 사고도 남을 8억 9천만 달러를 들여 금수산기념궁전을 지었습니다. 금수산기념궁전은 김 부자 무덤이 아니라 300만 대량아사자들의 무덤인 셈입니다. 지금도 그 속에서 미라로 보존돼 있는 김일성, 김정일은 인민의 수령, 조국의 지도자가 아니라 죽어서도 탐욕사치와 억압으로 주민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악의 수령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장진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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