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층의 9호 호프농장 맥주

김주원∙ 탈북자
201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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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경흥관 맥주집에서 근로자들이 여러종류의 대동강 맥주를 마시고 있다.
평양의 경흥관 맥주집에서 근로자들이 여러종류의 대동강 맥주를 마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이른 봄철부터 들이닥친 무더위와 가뭄으로 농작물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저를 비롯한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탈북자들도 많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뜨거운 불볕 아래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아마 시원한 맥주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맥주는 값이 눅(싼)은 상품입니다. 북한도 ‘대동강 맥주’를 크게 광고하고 있지만 일반 주민들은 맛보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 탈북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제가 이야기 해드렸지만 북한에도 룡성맥주와 봉학맥주, 대동강맥주, 금강생맥주와 평양맥주를 비롯해 수십 가지의 맥주들이 있습니다. 다만 생산을 제대로 못해 시장에서 보기 어렵고 웬만한 간부라 해도 장마당에서 중국산 맥주를 사서 마시는 게 보통입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항상 인민을 먼저 생각한다’고 주장하는 김일성과 그 후손들은 오로지 자신들만을 위해 사소한 음식부터 맥주 하나에 이르기까지 상상 못 할 거액을 들여 외국에서 수입하거나 특별한 시설에서 따로 만들어 즐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김일성 일가가 즐기던 맥주가 북한에서 어떻게 생산되고 있는지에 대해 말씀 드리려 합니다. 북한의 어딜 가나 김일성 일가의 먹을 거리를 위한 ‘9호 농장’들이 있습니다. 그 중 양강도의 ‘9호 농장’들 중에는 유명한 호프농장도 있습니다.

맥주는 영어로 비어(beer), 혹은 호프(hop)라고도 부릅니다. 맥주의 주원료는 보리와 호프 꽃인데 맥주의 독특한 향기와 기호 성 쓴맛은 호프 꽃에서 생긴 것입니다. 맥주생산에서 호프는 반드시 첨가해야 하는 재료입니다.

호프는 맥주 고유의 맛과 신선도, 특유의 향미와 상쾌한 쓴맛을 부여하고 잡균 번식을 억제하며 특히 부패를 방지하여 대량적인 유통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뇨작용 효과로 신석 증(결석)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입니다.

호프는 야생종과 재배종이 있으며 재배종에는 붉은 줄기 호프와 푸른 줄기 호프가 있습니다. 줄기의 길이는 보통 5~10m이지만 15m까지 자라기도 합니다. 호프는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으며 맥주생산에는 암꽃만을 사용합니다.

때문에 호프농장에서는 암꽃만 재배합니다. 맥주에 들어가는 호프꽃송이는 직경(지름)이 3~4cm 정도의 둥근 타원형 솔방울 모양이며 연한 녹색을 띱니다. 보통 한 대의 줄기에 3천~4천여의 꽃이 열리며 1만 6천여 개 이상이 달리기도 합니다.

호프의 원산지는 독일과 체코 등 유럽지역입니다. 북위 50˚ 안팎의 해발높이가 1,000~2,500m인 고산지대에서 잘 자랍니다. 온대지방의 비교적 서늘한 지역에서 잘 자라며 이런 지역에서 생산된 호프의 질이 매우 좋습니다.

호프는 땅속 온도 3~5℃에서 싹트기 시작하여 낮 적정기온은 25℃정도로 북한에서는 고산지대인 양강도가 적지입니다. 현재 양강도에는 700여 정보의 국영농장 호프 밭과 1천2백여 정보의 협동농장 호프 밭이 있습니다.

양강도 지역에서 호프가 재배되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시기인 1934년부터였습니다. 현재는 양강도 갑산군이 재배면적 445정보로 가장 많고 삼수군과 김정숙군, 풍서군, 보천군, 운흥군에서도 적지 않은 면적에 호프를 심고 있습니다.

북한은 양강도에서 재배된 호프를 해외에 수출도 하였는데 그만큼 품위와 품질이 좋았습니다. 특히 김일성 일가가 즐기는 ‘룡성맥주’엔 양강도에서도 가장 품질이 뛰어난 운흥군과 갑산군의 ‘9호 호프농장’에서 키운 호프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북한은 체코의 호프 기술자 9명을 양강도에 초청해 기술전수를 받고 현대식 호프가공 공장도 건설했습니다. 슬로바키아 코멘스키 대학교에 유학한 양강도 혜산농림 대학 김하룡 교수가 기술협조와 통역을 담당했습니다.

김일성 일가의 호위를 전문으로 맡고 있는 중앙당 5과와 금수산 의사당 경리부에서 김정일과 고위특권층들이 마시는 맥주를 생산하기 위해 양강도에서 ‘9호 호프농장’을 따로 분리한 때도 이 시기부터였습니다.

‘9호 호프농장’은 검역초소를 설치해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수확기에는 근무자 가족들의 출입까지 통제했습니다. ‘8호 보안 원’과 담당 보위 원들이 항상 잠복근무하면서 농장 내 인력에 대한 점검과 유동정형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습니다.

다른 식물의 줄기를 타고 자라는 호프는 일반적으로 넝쿨을 갈고리로 걸어 땅바닥에 내려놓고 꽃을 알알이 잡아 뜯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9호 호프농장’에서는 바닥에 흰 천을 깔아 호프가 흙에 닿지 않도록 하고 급수 별로 꽃송이를 선별했습니다.

바닥에 까는 흰 천을 ‘백포’라고 했는데 깨끗이 세탁하여 청결 성을 보장해야 하고 비 오는 날에는 절대로 수확을 하지 않았습니다. 호프를 심는 일반 국영농장이나 협동농장들에 비해 ‘9호 호프농장’은 후방공급도 잘해주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농장 원들은 해마다 신체검사를 세 차례 받아야 했고 건강에 이상이 없음을 반드시 확인했습니다. 만약 세균성 질병이나 선천적인 질병이 나타나면 전염력이 없다고 해도 ‘9호 호프농장’에서 해고되었습니다.

‘9호 호프농장’ 근로자들은 다른 호프농장에 비해 30% 이상의 높은 ‘생활비’를 보장받았고 가족들의 몫까지 배급은 물론 룡성특수식료 공장에서 생산되는 과자와 사탕, ‘태평 술’ 공장에서 나오는 삼백 술과 같은 식품도 정기적으로 공급했습니다.

북한에서는 공장맥주로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들이 보리를 사서 싹을 틔워 길금(엿기름)을 만들고 여기에 호프와 전분, 맥주효모를 넣어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자체로 맥주를 만들어 마시거나 장마당에 내다 팔기도 합니다.

개인들이 맥주를 만들려면 호프를 사야 하는데 국가 재산인 호프를 마음대로 살 수 없었습니다. 개인들의 맥주생산에 필요한 호프는 일반 호프농장에서 일하는 농장 원들이 몰래 훔쳐 불법적 으로 돈을 받고 팔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의 행군’ 시기 ‘9호 호프농장’의 호프를 한 직원이 몰래 빼내 팔다가 적발된 일이 있었습니다. 제대군인이고 당원이었던 그는 가족의 생계에 필요한 배급 량이 부족해 돈을 받고 10kg 정도의 호프 꽃을 팔았습니다.

이게 발각돼 그는 출당 철직과 함께 3개월 동안 ‘9호 보안서’에서 조사를 받다가 어느 날 가족과 함께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습니다. 훗날 안 일이지만 그는 민족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호프 10kg이 많고 적고를 떠나 김일성 일가의 먹을 거리에 손을 댔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가족들과 함께 다시 소생하지 못할 지옥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사진으로, 영화로 보는 북한의 산과 들을 무심히 지나치지 마십시오.

그 속에는 김일성 일가, 오늘날 김정은을 위해 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해야 하는 북한 인민들의 피, 눈물이 배어 있습니다. 시대의 한순간을 감출 수는 있어도 역사는 왜곡할 수 없습니다. 양강도 ‘9호 호프농장’에서의 예에서 보듯이 김일성 일가가 자신들의 호의호식을 위해 북한 인민들에게 저지른 행위는 훗날 반드시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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