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청춘연가②

서울-이현주, 김태산, 문성휘 xallsl@rfa.org
201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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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물빛무대에서 열린 청춘페스티벌에서 가수 소이가 열창하고 있다.
서울시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물빛무대에서 열린 청춘페스티벌에서 가수 소이가 열창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 일꾼 출신 탈북자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출신 탈북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부터 청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청춘’하면 청취자 여러분은 뭐가 생각나십니까?

저와 김태산 씨, 문성휘 씨가 생각하는 청춘은 많이 달랐습니다. 나고 자란 곳이 다르고 세대가 틀리다고 해도 그 차이는 크게 느껴집니다.

진행자 : 대학생활, 즐거운 시절, 여행, 연애...

문성휘 : 청춘하면 내 눈앞에서 죽음을 처음 목격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김태산 : 난 아직도 젊은 시절에 군수공장 28살까지 배고픈 걸 생각하면 안타까워 죽겠어요.

문성휘 씨, 김태산 씨 모두 이제 20대 청춘들의 아버지인데요. 내 아이들의 청춘은 나와 너무 달라 가끔은 화도 난답니다.

오늘 <내가 사는 이야기> 청춘 얘기 두 번째 시간입니다.

문성휘 : 청춘, 젊은 시절 아닙니까? 청춘하면 이 기자는 어떤 생각이 납니까?

진행자 : 대학생활, 즐거운 시절, 여행, 연애...

문성휘 : 저도 분명 대학을 다녔지만 청춘하면 대학생활이 떠오르진 않아요. 통나무를 나르던 일, 집 기초를 파던 일, 산에 가서 나무를 하던 일이 떠오릅니다. 돌격대 생활을 했으니까요.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은 청춘하면 군대를 많이 떠올릴 겁니다. 근데 무엇보다도 청춘하면 내 눈 앞에서 죽음을 처음 목격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돌격대나 인민군대나 정말 죽는 사람이 많아요. 일하다가 내려오는 통나무에 맞으면 죽는 것이고 아파트 고층에서 떨어지면 죽는 겁니다. 작년부터 평양시 십만 세대 건설 현장에서 대학생들이 그렇게 많이 죽었다지 않습니까? 군대도 역시 같습니다. 훈련에서 진짜 죽는 사람이 많거든요. 영양실조 걸려 죽고... 김 선생님 때는 그렇지 않았죠?

김태산 : 우린 갱도 공사에서 많이 죽었지요. 돌 맞아 죽고 이래 저래 죽는 거죠.

문성휘 : 내가 돌격대 생활을 할 때 자강도 임강 쪽에 가서 통나무를 했는데 그때 겨울이었는데 하루에 아홉 명씩 죽었어요.

김태산 : 겨울에 통나무를 절단에서 산 아래로 내리 쏘는데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산에서 나무를 찍는 게 얼마나 위험해요. 경험도 없는 얘들을 무조건씩 하루에 나무 몇 통씩 끌어 내리라고 하면서 산에 올려붙이는 거예요. 눈길에서 통나무 내리 쏘기 시작하면 정말 화살같이 내려오는데 맞으면 그건 그냥 현장 즉사하는 겁니다.

문성휘 : 또 내려오다 방향을 바꿔서 옆으로 튕기면 사람들이 무리로 죽을 수 있어요. 진짜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청춘하면 힘들던 일, 죽음을 목격한 순간이 제일 먼저 기억에 떠오르는 것이죠.

진행자 : 근데 북한에도 청춘이라면 꽃이다, 좋을 때다, 한창인 시절이라는 뜻 아닌가요?

문성휘 : 청춘은 밝고 가벼운 것이 아니라 아주 무겁고 중압감이 있는 표현입니다.

김태산 : 북한에서는 청춘을 조국에 바치자, 청춘의 끓는 피를 당과 수령을 위하여... 정치적 구호에 청춘을 쓰면서 젊은 사람들을 충동하고 감동시키려고 하죠. 그래서 안변 발전소 건설 때도 그 수십리 갱도에 화약 연기도 뽑아 내지 않았는데 젊은 사람들이 충성한다며 들어가서 무더기로 쓰려져 죽고 그랬던 거죠.

진행자 : 청춘을 이용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성휘 : 맞아요. 이용당하는 거죠. 그래서 청춘이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지난해 화성인가에서 일하다가 중국 조선족이 일하다 죽었는데요. 가족들에게 사망 보상금을 줬습니다. 큰돈이었어요.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일하다 사람이 죽으면 보상을 해줍니다. 그런데 북한은 청춘에 대한 보상이 없습니다. 무한정 바치기만 하는 것이 북한의 청춘인 거죠.

김태산 : 한 푼도 안 주죠. 옛날엔 그래도 천연색 텔레비전 한 대씩은 주고 그랬어요. 근데 너무 많이 죽으니까 그마저도 없어요.

진행자 : 텔레비전 한 대요?

김태산 : 아이고 그것도 신수 좋은 장소에서 신수 좋게 죽어야 차려지지...

문성휘 : 북한에선 아들 사망해서 텔레비전 한 대 받으면 그 집은 정말 대단한 집에요!

김태산 : 아들 죽었다고 연락이 오면 가서 시신도 못 보고 그냥 무덤 앞에서 꺼이꺼이 울다오는 게 다에요.

문성휘 : 통신과 운송 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부모들이 아들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어도 사고난 장소까지 오는 데 한 달 정도 걸립니다. 그러니 냉장고도 없고 죽은 시신을 수습해서 보관할 방법이 없는 거죠.

김태산 : 북한은 군대 나가면 휴가라는 게 없으니까 부모들이 군대 나갈 때 17-18살 때 모습밖에 모릅니다. 그러니 아들 얼굴도 모르고 그냥 묻어 버리는 셈이죠. 여기 사람들이 생각하면 상상도 안 가는 일일 겁니다. 여기서 그랬다가는 대통령도 박살나는 사회 아닙니까...

진행자 : 참 북한은 그렇게 청춘들이 꽃 같은 목숨을 바쳤는데 국가 사정이 나아지질 않네요.

김태산 : 그래서 안타까운 거죠. 피 값도 못하는 청춘을 바쳤으니 안타깝다고 하는 거죠.

진행자 : 김 선생, 문 선생 이제 청춘들의 아버지시죠? 우리 아이들의 청춘은 좀 어떻기를 바라세요.

문성휘 : 아! 저요. 이거 완전히 틀려먹을 거예요. 교육 시스템은 남한 걸로 쓰고 방법은 북한의 것을 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얘들을 혼내면 저에게 반박하지 않습니다. 그냥 조용히 나가요. 그리고는 밤새하는 PC방이나 찜질방에 있다가 들어옵니다. 제일 분통이 터질 때는 나갔는데 전화기를 꺼버릴 때에요. 나중에 들어오면 너 제발 그러지 말아라... 이러면 안 돼. 너 계속 이러면 노트북 안 사줘 하며 사정을 해서 달래야 해요.

진행자 : 청춘들의 아버지 노릇도 간단치는 않죠? (웃음)

김태산 : 그렇지요. 여긴 너무들 자유분방하니까요.

문성휘 : 젊은 얘들은 그냥 어디 가지고 못하게 딱 인터넷도 끊어놓고 공부만 시켰으면 좋겠어요. (웃음) 금요일 저녁만 되면 친구들이랑 전화를 해서 이번에 어느 보를 놀러갈까 고민을 해요.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면 그때부터 화가 나죠. 대학생인데 공부는 안 하고 놀러만 다닌다고 막 혼내면 자긴 공부를 한 답니다. 언제 하는지 모르겠는데... (웃음)

김태산 : 그냥 두고 보세요. 그게 상책입니다.

문성휘 : 사실 좀 부러운 면이 있지만 우리 아버지는 우리들한테 막대한 권한을 행사했거든요? 근데 왜 나는 그런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가 억울한 것이죠.

진행자 : 그런데 그런 억울함은 문 선생만 특별히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학생 딸, 아들을 가진 지금 남쪽의 아버지들도 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억울해 합니다. (웃음)

김태산 : 근데 학년 차이가 있어서 그러는 지 몰라도 맏딸도 대학생인데 솔직히 공부 때문에 죽어요. 나는 정치적 구호에 휩쓸려 남을 위해 청춘을 다 바쳤다면 내 딸은 그러지 말고 자신을 위해 자기의 청춘을 위해 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기가 일생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들을 청춘 시절에 잘 닦아놓았으면 좋겠어요. 근데 여긴 문 선생 말처럼 너무나 자유로운 게 문제입니다. 하지만 남쪽이 북쪽보다 청춘들에게 뭐가 좋냐하면 선택권이 있다는 거예요. 북한 청춘들은 선택권이 없이 18살 되면 군대에 무조건 뽑아 내가고 노동현장에 강제 배치해 섞어 버리고... 젊음의 선택권이 없잖아요? 여기는 선택권이 있어요. 군대 가는 것도 언제 가겠다 선택할 수 있고 대학도 어느 대학을 가겠다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또 직업도 무엇을 잡겠다는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 자식들도 자유로운 세상에 살고 있으니 하고 싶은 건 하라고 허용하는데 여긴 또 너무 자유로워서 그게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죠. (웃음) 아... 진짜 남북한이 좀 섞어서 나눠가지고 선택을 너희가 하 돼 선택을 했으면 밀고 나가는 건 북한식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문성휘 : 여하튼간 그렇게 논다고 해도 대학 졸업하는 걸 보면 사무처리 능력에서 저희보다도 훨씬 잘하잖습니까? 그니까 진짜 억울한 거죠. 우린 막 땅을 뒤지고 있었던 20대에 쟤네들은 자가용을 타고 놀러 다니고요. 북한 대학생들은 이런 걸 상상이나 해요? 난 아직도 그 땅에 있는 사람들 이 청춘을 어떻게 알아야 되겠나...

김태산 : 여기는 또 자기가 아무 것이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도 있지만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게 부럽죠. 옥수수밥 한 덩어리 먹고는 국가와 당을 위해 그냥 청춘을 바치는 거죠. 나도 17살부터 대학 가기 전까지 군수 공장에 12시간씩 일하면서 10년을 보냈는데 그 시간이 안타깝다기보다 그때의 그 배고팠던 생활... 배고파 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 설움을 모릅니다. 난 아직도 젊은 시절에 군수공장 28살까지 배고픈 걸 생각하면 안타까워 죽겠어요. 근데 대학에 들어가니 식권제가 없어요. 먹고픈 대로 먹을 수 있는 거예요. 근데 더 먹으려고 해도 어렸을 때부터 하도 배를 곯아서 얼마 더 먹지도 못하는 거예요. 참 얼마 먹지도 못 하는 걸 가지고 그렇게 배를 곯고 살았어요.

문성휘 : 진짜 너무 불쌍해요. 지금도 저기 있는 청춘들 너무 안 됐고 언제면 배부르고 자유로운 청춘들 될 수 있을까? 청춘하면 집단이 연상되는데 그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지...

김태산 : 아니, 쌀도 아니고 강냉이 밥이라도 배불리 먹이면 좋은데 그걸 왜 못 주는지 모르겠어요. 어려운 일이 아니잖습니까? 못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안 하는 것이겠죠?

문성휘 : 그렇죠. 핵 실험도 해야 하고 미사일도 쏴야하고요. (웃음)

진행자 : 저는 사실 청춘 얘기를 처음 시작하면서 좀 밝은 얘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김태산 : 아니에요. 배고프고 그런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그 시절이 청춘이어서 웃기도 했어요. 싸움을 해도 재밌었고... (웃음)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마 이 얘기도 지난 간 청춘을 아쉬워하는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나온 말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렇게 청춘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릴게요.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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