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남북한 전쟁 재발시 러-우크라 전쟁보다 피해 클 것

경북 칠곡군 왜관읍 낙동강 둔치에서 6·25 전쟁 낙동강지구 전투 재연행사가 열리는 모습.
경북 칠곡군 왜관읍 낙동강 둔치에서 6·25 전쟁 낙동강지구 전투 재연행사가 열리는 모습.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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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진행에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한국 서울의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남북한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이제 얼마 안 있으면 6.25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날인데요. 오늘은 한국전쟁과 관련된 작품을 갖고 나오셨다고요? 어떤 작품인가요?

도명학: 네, 오늘은 6.25전쟁 시기 이야기를 그린 한국영화 "적과의 동침"을 가지고 이야기 할까 합니다.

MC: 이 영화는 비교적 근래에 만들어진 작품인 거 같은데요. 간단하게 어떤 영화인지 설명해 주시죠.

도명학: 네, 나온 지 오래된 영화는 아닙니다. 이 영화는 6.25 전쟁 초기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한 시골 마을에 북한군이 들이닥치면서 혼란을 겪게 되는 마을의 일상과 비극적 결말을 그린 무거운 소재이지만 마냥 슬프고 아픈 모습으로만 그리지 않고 총을 들고 침입한 적도 마을 사람들과 농사를 지으며 눌러앉게 만드는 마을 사람들의 순박하고, 유쾌하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MC: 코미디영화로도 볼 수 있을것 같은데, 작품의 줄거리는 어떻게 되나요?

도명학: 그냥 코미디영화라고 하기보다는 희비극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1950년 여름 경기도 평택의 한 시골 마을 석정리에 사는 주인공 설희는 혼례복도 입어보고 꽃가마도 타보며 곧 있을 혼사 준비에 바쁩니다. 그러나 석정리는 잘 나오지도 않는 라디오만으로 겨우 외부의 소식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웃이 찾아와 인민군이 남쪽으로 밀고 내려왔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설희의 약혼자인 반공청년단 소속 택수는 가장 먼저 피신하였고, 마을의 작은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설희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농사도 도우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택수의 가족이 말도 하지 않고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습니다. 이때 마을에는 유학파 엘리트 장교 정웅이 이끄는 인민군이 들이닥칩니다. 인민군은 마을 사람들을 잡아들여 젊은 남자들은 인민군 의용대로 만들었고, 미 제국주의로부터 인민들을 해방시키려 왔다면서 도망간 택수의 행방을 물어보며 인민군에 항의하는 설희를 잡아갑니다. 끌려간 설희는 책과 직업, 택수와의 혼인 등 모든 것을 단서로 추궁당하기 시작했고 특히 반공청년단 지부장인 택수 때문에 인민군 소대장에게 위협까지 당하지만 정웅이 나서 상황을 정리합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빨간 완장을 차고 교회 안에 들어와 갑작스럽게 만세를 외치는데. 빨갱이 만세!라고 외치는 재춘 때문에 큰일 날뻔했지만 다수의 만세 소리에 묻혀 위기를 모면합니다.

MC: 어디를 가나 그렇게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계속해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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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고아들이 트럭으로 실려와 서울의 한 고아원에 내리기 직전의 모습(1950년 11월 2일)의 사진. /연합

도명학: 마을의 안전을 위해 사람들은 인민군들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고 적극 협조하겠다고 하면서 마을에 대한 모든 일들을 순순히 알려줍니다. 한편 석정리 이웃에 있는 백씨 마을로 찾아간 인민군은 고기를 푸짐하게 차린 음식을 대접받았고 대놓고 살기 위해 재빨리 인민군에게 붙어 알랑거리는 백씨가 석정리를 가난하다며 비하합니다. 그러자 동네의 곳간을 모두 털어버리는 인민군은 모든 것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눈다는 공산주의 사상을 들먹이며 자신들이 관리하기로 합니다.

MC: 그런데 설희하고 정웅이 서로 만난 적이 있다고요?

도명학: 십 년 전인 1940년, 설희와 정웅의 아버지는 독립군으로 활동했었습니다. 그로 인해 정웅과 설희는 과거에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정웅은 설희에게 반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친해졌었는데 일본군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바람에 총격전이 벌어졌고 거기에서 설희의 아버지가 총에 맞아 사망하였습니다. 정웅은 설희에게 마지막 선물로 책 한 권을 주었고 다음에 꼭 만나자 하고 헤어졌습니다.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정웅은 한눈에 그런 설희를 알아봤는데 아직 설희는 정웅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MC: 마을 사람들과 인민군들 간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게 되나요?

한편 인민군이 연이어 승전하면서 부산을 코앞에 두고 인민군의 분위기는 한참 좋았고 마을 사람들은 아픈 인민군을 치료도 해주며 인민군은 마을 농사도 함께 지으면서 서로 사이좋게 지냅니다. 며칠 후 상부를 찾은 정웅은 UN군이 참전해 전세가 불리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미군 폭격기로부터 보호할 방공호를 파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정웅은 돌아오는 길에 양민들이 인민군에 의해 사살되는 현실을 목격합니다,

한편 인민군들의 빨래를 하던 설희는 정웅의 군복에서 수첩 하나를 발견하고 안을 들여다보다 곧 정웅을 기억하게 됩니다. 정웅과 단둘이 만난 설희는 자식 앞에서 아버지에게 총을 겨누는 인민군이나, 일본군이나 별 차이 없다며 얘기했고 한때 전쟁의 무고한 피해자였고 시간이 지나 이제는 적이 되어버린 슬픈 현실에 두 사람은 착잡함을 함께 합니다.

MC: 그런데 전쟁으로 인한 마을이나 인명과 관련된 피해는 없었나요?

도명학: 그러다 하늘에 미군 비행기가 날아오고 폭격기에서 떨어지는 폭탄을 피하기 위해 주민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아수라장이 됩니다. 그 속에서 정웅은 어린아이와 설희를 구해줬고 마을 건물들은 무너져 내립니다. 그 폭격으로 재춘의 아들이 폭탄 파편에 맞아 죽습니다.

재춘은 자신이 방공호 작업을 게을리해서 아들이 피하지 못하고 죽은 걸로 생각하고 밤낮으로 방공호 작업에 집착하게 되고 마을 사람들까지 합세해 공사를 앞당기게 됩니다. 이윽고 방공호가 완성되고 그것이 자기들의 무덤이 될 것임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방공호에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기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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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군에 자원 입대한 병사들이 지난 3월 11일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 전선에서 러시아 정규군과 용병업체 바그너 그룹 소속 병력을 상대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AFP

무전을 통해 상부와 연락한 정웅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철수해야 한다며 마을 사람들을 전부 처형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습니다. 이미 다른 마을에서는 인민군이 주민들을 방공호에 몰아넣어 사형시키고 시작했고 정웅은 무고한 사람들을 처형하는 것에 갈등합니다. 정웅은 다시 한번 처형을 반대하지만 계속 밀어붙이는 연대장에게 총을 쐈고 정웅의 부대와 연대장의 부대가 서로 총을 쏘며 싸우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그동안 친하게 지낸 인민군과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걱정해 주고, 총에 맞아 쓰러졌다 다시 일어난 연대장에 의해 처형당할 위기에 처한 순간 미군이 탱크를 몰고 나타나 전투가 벌어집니다. 정웅은 저항하다가 총에 맞아 쓰러졌고 재춘은 큰 돌을 집어 들고 탱크에 돌진하다 미군들이 쏜 총에 맞아 죽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자신을 구해주려 했던 정웅의

진심을 알게 된 설희는 쓰러진 정웅을 감싸 안았지만 날아오는 총알에 맞아 끝내 함께 죽고 맙니다.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은 만세를 부르며 씁쓸하게 미군을 맞이하면서 영화 '적과의 동침'은 막을 내립니다.

MC: 어떤 부분이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 짓게 만드나요?

도명학: 웃음이 나는 장면이 꽤 있습니다. 혼례식 준비를 하는 과정에 마을 여인들이 가마를 타보다가 망가뜨리는 장면도 우습고, 인민군을 향해 "빨갱이 만세"하고 부르는 재춘이, 방공호를 천천히 파라고 하니까 삽질을 거꾸로 하는 사람들, 홀로 사는 과부와 정분이 난 것이 들통 나고도 아닌척 능청을 부리는 재춘의 행동 등, 많습니다. 그중에도 제일 인상 깊은 건 백씨의 약삭 바른 행동입니다. 일제 시기에는 창씨개명을 제일 먼저 하며 일본인들에게 붙어살고, 해방이 되자 대한독립만세를 제일 목이 터지게 외치고, 인민군이 마을에 들어오기 바쁘게 완장을 차고 고기까지 대접하며 인민군에 협조하는데 앞장서고, 전세가 바뀌는 듯 하자 벽에 이승만과 김일성 초상화를 번갈아 걸어보며 잔머리를 굴리는 백씨의 모습은 우습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격변하는 시대 상황마다 살아남기 위해 허둥지둥 살아야만 했던 수많은 민초들에 대한 생각, 약소민족의 비극을 절감했습니다.

MC: 웃기지만 그만큼 감동도 있을 거라 짐작됩니다. 눈시울을 찡하게 만드는 부분은 어디였나요?

도명학: 영화 '적과의 동침'은 큰 여운을 남겼던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인민군 장교 정웅과 설희와의 관계가 찡한 감동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정웅과 설희 둘 다 항일독립운동자의 자녀인데, 부모들이 그토록 원하던 해방이 되었지만 민족분단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서로가 적의 신분으로 만나 적과의 동침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너무 마음 아팠습니다. 또 정웅과 설희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매개체로 활용된 시인 백석의 시도 감명 깊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처형 장소에서 죽어가는 와중에도 마을 사람들과 인민군들이 서로를 걱정해주는 장면은 이념과 체제를 떠나 휴머니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실감케 하였습니다.

MC: 이 작품을 고르신 동기는 뭔가요? 이 작품을 보시고 느끼신 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도명학: 이달 6월 25일이 6.25 전쟁이 발발했던 날인 만큼 다시는 이 땅에 동족상잔의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적과의 동침"이 주는 메시지가 유익할 것 같아 골랐습니다.

지금 남북 관계는 좋아질 기미가 없고 북핵은 점점 더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한반도를 위시한 주변 정세도 좋지 않습니다. 이러다 또다시 전쟁의 도화선에 불이 달리면 자칫 민족 공멸을 자초할 수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그 피해도 엄청나지만 제 생각에는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그 피해가 우크라이나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리라 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