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진행을 맡은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남한의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남북한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오늘, 노래 두 곡을 가져 나오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좀 생소한 노래인데요. 어떤 곡들인지 설명 좀 해 주시죠.
도명학: 예, 오늘 소개할 작품은 "압록강 행진곡" 과 "여명의 노래"입니다. 두 곡 모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지어진 노래들입니다.
“압록강 행진곡”은 박영만 작사 한형석 작곡의 독립군 군가입니다. 작곡가 한형석 선생은 독립투사이자 예술을 통한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던 위대한 음악가였습니다. ‘압록강행진곡’은 눈물이 핑 도는 가슴 찡한 노래로, 도탄에 빠진 동포와 형제를 구하기 위한 광복군의 바람이 담긴 가요입니다. 그러나 ‘압록강행진곡’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몰랐던 노래인데 ㅈ금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2003년부터 초등학교 4학년 음악교과서에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작곡가 한형석 선생은 은 일제 강점기 광복군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입니다. 그는 독립운동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 '아리랑'을 작곡했고, 광복군가 압록강행진곡 등 독립군의 군가를 직접 작곡해 항일 정신을 고취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부산의 자유아동극장 등의 예술교육을 통해 청소년 예술교육의 터전을 닦은 문화예술혁명가였습니다.
한형석 선생은 1910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 독립운동가인 아버지 한흥교를 찾아 중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해방 때까지 줄곧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의학공부를 하라고 했으나 그는 상하이 신화예술대학을 졸업하고 1940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거쳐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조국이 광복된 후 선생은 1948년 부산으로 돌아와 부산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1996년 별세하였습니다.
“여명의 노래” 역시 독립운동가들인 이해평 선생이 가사를 짓고 한유한 선생이 작곡한 노래로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입니다. 가사는 일제 치하의 처량하고 우울한 삶에서 벗어나 독립을 맞이하기 위하여 동포들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노래는 비유적으로 일제식민지를 “어둠”으로 독립의 기운을 “여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해평 선생은 일제강점기 한국청년전지공작대 공작조장, 광복군 제2지대 공작조장 등을 한 독립운동가입니다. 선생은 1930년대 말부터 해방되기까지 중국 관내에서 독립운동을 하셨습니다. 선생은 1938년 가을 상해임시정부가 유주에 머무르고 있을 때 중국인 50여명과 함께 선무공작대를 편성하고 중국군의 항일전선에서 선무공작을 전개하였습니다. 또 1939년 10월 중경에서 중국의 중앙육군군관학교 졸업생 30여명과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조직하고 공작조장에 임명되어 항일운동을 정력적으로 펼치셨습니다. 선생은 1944년 4월 광복군과 미군 특수부대의 합동훈련시 무전반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1945년 국내정진군의 본보 요원으로 국내 침투 공작을 대비하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인정해 1990년 건군훈장 독립장을 추서 하였습니다.
작곡가 한유한 선생 역시 독립운동가ㆍ음악가였습니다. 한유한 선생은 일찍이 부친 한흥교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 신예예술대학에서 수학하였습니다. 선생은 1939년 10월에 중경에서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결성되자 예술조장으로 임명되어 군가인 한국행진곡, 항전가곡을 작곡하였으며, 서안 등지에서 국경의 밤, 아리랑 등을 공연하여 군민(軍民)을 위안하고 항일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1940년에는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 제4단 특과총대학원대 한청반에서 교관을 역임하였습니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1941년 1월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되었으며, 이때 선생은 광복군가집 1, 2집을 발간하고 국기가, 광복군 제2지대가, 압록강행진곡, 조국행진곡 등 항일가곡들을 작곡하였습니다. 1944년 10월 선생은 광복군 제2지대 선전대장에 임명되어 복무하면서 작곡 및 가극 활동으로 침체 된 항일정신을 고취하고 광복군과 중국군 연합전선을 한층 견고히 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액트: 압록강 행진곡 / 유툽브 채널 ‘Rhee’>
MC: 선생님께서는 '압록강 행진곡'이란 노래를 언제 들으셨고, 또 처음 들으셨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도명학: 최근에 들었습니다. 특히 "압록강 행진곡"은 제목부터 끌렸습니다. 저를 비롯한 수많은 탈북민들이 압록강을 건너 북한독재정권에서 탈출하지 않았습니까. 압록강을 건너던 그때 언제 다시 고향 땅에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며 눈물이 났댔는데, 압록강 행진곡을 들으면서, 이 노래가 비록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노래지만 북녘 동포를 독재통치에서 해방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탈북민들의 마음과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밥았습니다.
“여명의 노래” 역시 같습니다. 가사에서 “어둠”은 일제 강점기를, “여명”는 독립의 기운을 의미하는 표현이지만 저에게는 “어둠”은 독재”로 “여명”은 자유통일의 기운으로 들렸습니다.
<액트: 여명의 노래 / 이윤아 / 유투브 채널 ‘대전MBC’>
MC: 이 노래는 독립군가로 알려져 있는데 말이죠. 북한과의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도명학: 북한과 이 노래들이 직접적인 관계는 없을 듯 합니다. 일제강점기는 남북이 따로 없었기에 일제를 물리치고 조국광복을 이뤄내야 한다는 소망은 남쪽에 사는 사람이나 북쪽에 사는 사람이나 같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이 노래가 북한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 남한과 다르죠.
MC: 두번째 곡인 '여명의 노래'는 먼저 들어본 압록강 행진곡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도명학: "압록강 행진곡"은 제목부터가 행진곡이니만큼 박력있고 전투 의지를 불태우는 군가입니다. 이와 달리 "여명의 노래"는 광복의 여명을 그리는 서정시적인 양상을 띤 노래입니다.
그러나 두 곡 모두 기어이 조국광복을 이뤄내기 위해 항일에 매진하자고 호소하는 점이 공통점입니다.
MC: 두 곡 모두 독립, 광복과 관련이 있는 노래인데요. 이 곡들을 고르신 이유가 뭔가요?
도명학: 첫째는 제가 노래에 감동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이달이 남북이 다같이 기념하는 8.15 광복절이 있는 달이니만큼 북한주민들에게 이 노래들을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MC: 북한에도 독립군이나 광복군과 연관된 노래가 있나요?
도명학: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없었던 것 같습니다. 또 독립군이라는 말은 있어도 광복군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다만 역사전문가들은 광복군의 존재를 알지만 일반에 소개하지 않습니다. 북에서는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일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북한에는 항일투쟁에 관한 노래들이 김일성 항일빨치산 등 공산주의 계열에서 나온 노래들밖에 없습니다.
MC: 아무래도 북한은 독립 또는 광복도 북한의 지도자 덕분이라고 할 것 같은데 말이죠, 어떻습니까?

도명학: 당연합니다. 김일성이 항일유격대를 이끌고 일제와 싸워 조국을 해방했다고 하죠. 물론 소련군의 지원도 언급합니다. 그러나 제가 고등중학교 다니던 시기엔 소련에 대한 언급 자체를 하지 않았는데, 1984년이었던지 김일성이 소련과 동유럽 공산국가들을 수개월간 순방하고 난 후부터 소련의 지원을 언급했습니다. 다만 옛날에도 함경북도 김일성혁명사적관에 가면 소련군이 대일전쟁을 선전포고하고 청진전투, 나진전투 등을 치룬 내용과 사진자료들, 소련 태평양함대가 상륙하는 모습을 담은 대형 그림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소련군이 함경북도 지역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많이 한 만큼 그것을 직접 목격한 함경북도 사람들까지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겨 전시했는지 모르겠습니다.
MC: 전체적인 감상평과 함께 오늘 순서 마무리해 주시죠.
도명학: 네, 앞에서 누루히 이야기 했습니다만. 굳이 정리하여 말씀 드릴 필요는 있읅 것 같네요. 전 디 두편의 가요를 통해 하게 된 생각은 역시 문학예술작품은 작가의 세계관, 미학관에 의해 그 가치가 평가된다는 말이 맞구나 하는 거였습니다, 또한 이 두편의 노래는 아주 옛날에 나왔음에도 생명력이 지속되는 것을 보면서 작가, 작곡가, 가수가 되기 전에 애국작가가 될 때 조국과 민족과 국민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국민의 애창곡으로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노래들을 북한주민들이 알고 부르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MC: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