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북한주민 ‘울다 웃길’ 남한 영화

0:00 / 0:00

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미국 워싱턴DC에서 보내 드리는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홍알벗입니다. 고향인 북한을 떠나 한국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시와 소설 뿐만아니라 노래와 영화를 아우르는 남북한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오늘은 어떤 작품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도명학: 네, 오늘 준비한 작품은 영화입니다. 제목은 "간 큰 가족"입니다.

MC: 제목만 들어서는 코미디 영화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요. 간단하게 어떤 영화인지 설명해 주시죠.

2.jpg
‘간큰가족’ 스틸컷. / 사진출처: 연합, 쇼박스

도명학: 네, 코미디 영화 맞습니다. 북한에서는 코미디라는 용어를 쓰지 않으니까 희극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순수 웃음을 주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진 영화도 아닙니다. 영화에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장면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희비극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조명남 감독의 작품이고 배우들인 김우성, 김수로, 신구, 김수미가 주역을 맡았고, 2005년 개봉됐습니다. 한편 영화는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금강산 온정각에서 촬영이 진행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6.25 전쟁 때 북에 가족을 두고 남으로 피난 내려온 실향민과 그가 남쪽으로 내려와 새로 결혼을 하여 생긴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고령의 나이가 되어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인데 통일되기를 학수고대하면서 늘 북한에 두고 온 가족과 만날 날을 그립니다. 남쪽에서 낳은 자녀들도 아버지의 가장 큰 소원이 통일임을 이해하면서도 유산을 욕심내던 나머지 통일이 되었다고 아버지에게 거짓말까지 꾸미는 등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는 그런 영화입니다.

MC: 줄거리는 어떻게 되나요?

도명학: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6.25 때 남쪽에 피난 온 실향민인 김노인은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마누라 앞에서 북에 두고 온 본마누라 타령만 해댑니다. 김노인은 오매불망 북에 두고 온 아내와 딸을 만나는 게 소원입니다. 그런데 여느 때처럼 통일부에 이산가족상봉 신청서를 내고 돌아오던 김노인은 그만 발을 헛딛고 계단에서 굴러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가족들은 김노인의 병이 '간암 말기'라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게다가 간암 말기 아버지에게 50억 유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후 유산에 대한 처리 공증을 맡은 사람이 발설하는 바람에 알게 된 거죠. 하지만 이 유산은 ‘통일이 되었을 경우에만 상속받을 수 있다’는 기이한 조항을 달고 있습니다.

만약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인 통일이 되지 않으면 자칫 그 많은 돈이 통일부로 전액 기부될 판이니 난리가 났습니다. 그러잖아도 아들 중에는 영화를 만들다며 돌아치다 빚을 진 아들 명석이가 있는데 빚독촉 때문에 고민이 큽니다. 가족들은 50억 유산을 사수하기 위해 ‘통일이 되었다’는 담화문을 담은 가짜 뉴스 프로그램을 제작해 임종 전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감쪽같이 가짜 통일 상황을 믿게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가족들이 다같이 행복해하는 순간! 금방이라도 돌아가실 것처럼 심해지던 김노인의 병세가 ‘통일이 되었다’는 거짓말에 기적처럼 호전되어 갑니다. 게다가 업친 데 덮친 격으로 가짜로 만들어 낸 통일신문을 본 김노인이 ‘남북 단일팀 탁구 대회’를 봐야겠다는 통에 가족들은 졸지에 탁구선수로 분장해 경기장면까지 카메라에 담아내야 합니다.. 하지만 사건은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설상가상으로 ‘평양 교예단이 서울에서 공연을 한다’는 가짜 기사를 본 김노인은 다짜고짜 평양교예단 공연을 보겠다’고 우기기 시작합니다.

모든 게 거짓 상황이니 교예 공연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모든 게 거짓이었다고 말했다가는 김노인은 금세 쓰러질 게 뻔합니다.. 게다가 아들 명석이 진 빚을 받기 위해 찾아온 악덕 사채업자 박상무마저 집에 눌러 앉게 되면서 상황은 더욱 꼬여갑니다.

결국 명석은 박상무를 포섭한 데 이어 명규를 짝사랑하는 여성까지 통일연극에 참여시키며 직접 평양교예단의 공연을 가짜로 재연해내지만, 아버지 소원을 사수하기 위해 벌였던 거짓말은 점점 눈덩이처럼 커져가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치달아 가다가 결국 모든 것이 가짜였음이 드러나고 맙니다. 이에 충격 받은 김노인은 다시 중태에 빠지고 이제 해볼 일은 이산가족상봉이라도 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온 가족이 떨쳐나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통일부에 도장을 받아 단체로 김노인을 이산가족상봉에 선정되게 해달라는 진정서를 작성합니다. 이 진정서를 그동안 함께 가짜통일연극을 만들며 감동한 사채업자가 통일부장관이 탄 차량을 가로막고 하소연할 정도로 노력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김노인의 이산가족상봉이 성사됩니다. 하지만 금강산에 간 노인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쓰러져 상봉장에 나가지 못합니다. 대신 두 아들이 나가는데 북한에서 온 여성은 김노인의 딸이 아니라 딸의 외사촌 언니 되는 여성입니다. 북한에서 소학교 선생님이던 딸은 용천폭발사고 때 사망하여 대신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차마 김노인에게 말할 수 없어 가족들은 또 한번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북에서 온 여성이 노인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딸인 척 합니다. 노인은 생의 마지막에 만나게 딸을 보며 하염없이 웁니다. 아버지는 맏아들이 알아서 유산을 자녀들이 나누라는 유언을 남기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MC: 코미디 영화지만 감동을 주는 내용도 있을 거 같은데 말이죠. 선생님께서는 어느 부분에서 감동을 느끼셨나요?

도명학: 아들들이 거짓 통일을 재연해내느라 무던히도 애쓰다가 마지막엔 남한을 방문한 평양교예단 공연까지 가짜로 하다가 실수를 연발하면서 드디어 아버지를 속인 것이 발각되었을 때입니다. 이 장면은 웃음이 나와야 할 대목인 것 같은 데도 너무 안타까워 눈물이 나더군요.

이보다 더 감동적인 대목은 마지막 이산가족상봉 장면에서 비록 진짜 딸은 아니지만 정말 딸인줄 알고 우는 장면, 딸한테 계속 내가 잘못했다. 잘못했다 하면서 울 때 저도 울었습니다. 북한에서 온 여성도 진짜 딸 못지 않게 진심으로 울면서 이산가족의 슬픔을 정말 눈물겹게 잘 보여주었습니다.

MC: '간 큰 가족'이라는 제목에서 '간이 크다'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도명학: 겁이 없고 매우 대담하다는 뜻을 그렇게 표현하더군요. 그러나 겁이 없고 대담한 행동이나 발언이라고 해서 다 그렇게 표현하는 건 아니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무모하게 행동이나 말을 감히 저지를 때 사용하죠. 북한에서도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는 말을 쓰긴 합니다만 지방에 따라 차이는 있는데 저희 고향에선 심장이 바가지만 해졌다는 표현을 더 많이 했었습니다.

MC: 실제로 김노인과 같은 처지에 놓은 실향민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들은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극복해 나가나요?

도명학: 당연한 얘깁니다. 이 영화가 개봉된 때가 2005년인데 그때도 북에 두고 온 가족과 고향 산천을 애타게 그리다 끝내 세상을 떠나는 실향민들이 많아 안타까웠는데 그때로부터 18년 세월이 더 흐른 지금은 생존해 있는 실향민들이 훨씬 줄었습니다. 이제는 실향민 2세, 3세, 4세들이 많은데 다들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보지 못한 통일이 꼭 이뤄지는 것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자식들에게 북에 있는 가족친척 이름과 주소 같은 것을 알려주며 통일이 되면 꼭 찾아가라고 당부하고 영화에서처럼 유산을 북에 두고 온 가족한테 주기로 유언장을 남긴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3세, 4세들 중 상당수는 북한을 모르니 통일에 대한 열기가 다소 떨어지긴 합니다.

common (1).jpg
‘간큰가족’ 스틸컷. / 사진출처: 연합, 쇼박스

MC: 이 영화를 고르신 이유가 있을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도명학: 이산가족을 주제로 한 영화는 북한에도 있지만 이 영화처럼 독특한 색깔을 가진 영화가 없습니다. 전부 무겁고 슬프기만 합니다. 거기다 정치적 색채를 넣기 때문에 순수한 면은 떨어집니다. 그러나 영화 '간 큰 가족"은 제목부터 코믹해서 재밌거니와 정치적 이념적 색채가 전혀 섞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순수한 내용의 영화를 북한주민들도 알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 북한 주민들 속에 이 영화가 유포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MC: 북한 주민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요.

도명학: 우선은 코믹해서 배꼽 터지도록 웃겠죠. 웃지 않을래야 웃지 않을 수 없는 장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까요. 그러면서도 눈물이 날 것입니다. 다만 영화에 나오는 유산 문제는 옛날 같으면 비윤리적인 사회라고 비난했을 텐데 현재는 북한 현실이 달라진 것만큼 남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태도와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습니다.

MC: 통일이란 무거운 주제를 코미디라는 장르의 영화를 통해 재미있게 표현한 작품인거 같은데요, 이 영화 속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고나 할까요, 뭘 얻을 수 있을까요?

도명학: 영화 마지막에 김노인이 유언으로 자식들에게 남긴 말이 가슴을 치더군요. "물론 너희들에게 통일이 무슨 그리 절박하겠냐만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건 사랑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대사인데 긴 여운을 남기는 대사였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갈라진 혈육이 다시 만날 수 있는 통일을 꼭 이뤄내는 것이 최대의 동포애, 민족애, 양심이라는 것, 그래서 통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MC: 선생님의 전체적인 감상평을 부탁드립니다.

도명학: 영화 내용에 대한 감상은 앞에서 다 얘기한 바와 같은데, 예술성 측면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산가족에 관한 슬픈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코믹하게 만들 수 있었는지 재능이 정말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웃음 코드를 감동코드, 슬픔 코드로 재치 있게 호환시키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도 이런 기법을 좀 익혀서 재미와 감동이 어우러진 작품 한번 써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MC: 네,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지금까지 함께 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희는 다음 주 이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정영,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