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우의 블랙北스] 쿠웨이트 대사관 이삿짐 꾸려야 했던 사연
2024.08.14
안녕하세요 류현우의 블랙북스 진행을 맡은 목용재입니다. 그동안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로부터 북한 외교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어봤는데요. 오늘은 참사관이었던 류 전 대사대리가 왜 대사직을 대신 수행하게 됐는지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동안 류 전 대사대리께서 쿠웨이트에서 겪었던 일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신 바는 없는데요. 오늘은 이와 관련된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진행자: 알려지기로는 지난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의 여파로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가 추방되면서 차석으로 계시던 류 대사께서 이 자리를 맡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류현우: 네 먼저 시청자들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서 당시 대사관 직제와 인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시 대사관에는 대사와 당비서, 안전대표, 참사, 서기관 등 외교관 10명이 있었습니다.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관은 걸프지역에 있는 유일한 북한 대사관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쿠웨이트, 아랍에미레이트 그리고 카타르 등 걸프지역에 있는 북한 근로자들은 약 1만 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그 대부분은 모두 건설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었고 일부 IT 기술자들, 그리고 서비스 업계에 종사하는 식당 종업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파견된 목적은 외화벌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카타르, 아랍에미리트를 맡아보는 외교관들도 있어야 했고 또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관 외교관들이 이 나라들을 맡아보면서 영사 업무도 해야 했거든요. 그런데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이에 따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가 채택됐습니다. 유엔 결의 2371호에 따라 북한 대사 추방 그리고 대사관 인원 축소, 외교관계 단절과 같은 조치들이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스페인, 이탈리아, 페루, 멕시코 등 나라들에 이어서 쿠웨이트도 북한 대사를 추방하고 북한 외교관들을 축소할 것에 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쿠웨이트는 2018년부터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을 맡고 있었습니다. 쿠웨이트는 당연히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준수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고 다른 나라들보다 더 솔선수범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쿠웨이트 정부는 북한 대사를 추방하는 것과 함께 외교관 5명도 축소하는 것에 대한 결정을 내렸고 당시 대사를 호출해 통지했습니다. 그리고 공식 문서로도 통보했습니다. 그래서 대사를 포함해 5명의 외교관들이 추방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절반이나 되는 외교관들이 추방당되다 보니 당시 차석이었던 제가 대사 대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진행자: 그러면 현재의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관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류현우: 대사대리는 대사 바로 아래 직급에 있는 차석이 맡기 때문에 아마 외교관들 중에서도 제일 급수가 높은 그런 사람이 맡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참사라든가 서기관이라든가 이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을 선정해서 대사 대리의 업무를 맡게 될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당시 저희 대사관 상황을 설명드리자면 대사관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금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이 자금 공급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중국 주재 북한 대사관까지 혹은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까지 사람을 파견해서 외교 행랑을 통해 자금을 받아오는 방식으로 계속 오고 가고 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방식으로 현재도 대사관이 유지될 것으로 추측합니다.
진행자: 대사직을 대리 수행하시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이 같은 경험을 통해서 더 출세를 할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도 해 보셨을 것 같은데요.
류현우: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대사대리직을 수행하면서 굉장히 힘들었다는 기억밖에 없습니다. 공관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럽고 힘든지 그때 알게 됐거든요. 우선 제가 당시 대사관 상황을 설명하면 2017년 3월부터 북한의 모든 은행들이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스위프트(SWIFT, 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서 퇴출당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송금도 안 되고, 또 재정 형편도, 그리고 북한 외무성의 재정 형편도 어려워졌습니다. 북한은 부득불 긴축정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취한 조치가 대사관 건물을 임대하는 해외에 주재하는 모든 북한 대사관들을 큰 건물에서 작은 건물로 옮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임대료를 줄여서 전반적인 예산을 줄이자는 것이 기본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관도 대사관 건물을 두 차례나 옮겼습니다. 그런데 대사관을 옮길 때에는 대사관 문건, 변신 기재 등 기밀 문건과 내부 문건들도 있기 때문에 대사관 외교관들과 그 부인들이 자체로 짐을 싸야 했습니다. 거기에 유엔 대북제재 결의 2397호에 따라서 북한 근로자들이 2년 안에 모두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쿠웨이트뿐 아니라 아랍에미레이트 그리고 카타르에서도 북한 근로자들이 철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5명의 외교관들이 서로 이를 담당해 북한 근로자들의 철수를 보장해야 했는데 큰 문제는 미수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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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대사관 이사를 두 차례나 하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가정집 이사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대사관 이사라면 더욱 어려울 것 같은데, 이를 대사관 직원들끼리 자체적으로 진행하신 겁니까?
류현우: 내부적으로 이사짐을 꾸릴 때에는 기밀 문건도 있기 때문에 대사관 직원들로만 이삿짐을 싸야 합니다. 이사할 때에는 이사를 전문으로 해주는 회사들이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회사에 의뢰해서 이사를 진행하면 됐습니다. 문제는 변신 기재를 비롯해서 무전 기재 등을 해체하고 다시 재설치해야 하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북한 대사관들은 인터넷을 100% 사용해서 암호, 변신 체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구식 모스 부호를 사용하는 안테나를 이용합니다. 옛날에 지붕 옥상을 올라가면 높은 안테나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북한 대사관들을 보면 옥상에 그런 안테나들이 하나씩 무조건 있습니다. 이 5m 안테나를 하나하나 분해해야 했습니다. 모스 부호를 송수신하기 때문에 방향도 신경 써야 하고 날씨에 따라서 전파가 송수신이 잘 되거나 잘 되지 않는 등의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것을 해체한 이후 삼각자로 각도를 조절하면서 하나하나 다시 작업합니다. 원래는 대사관이 이사하게 되면 안테나들을 옮길 때 북한 외무성 내 대외통신국의 기술자 1명이 나와서 안테나를 해체하고 (다시) 설치하는 일을 혼자서 맡아서 했었습니다. 그런데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외교관도 축소시키고 대사도 추방한 쿠웨이트 정부가 기술자가 입국하는데 필요한 사증을 주지 않은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체로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외교관들이 다 달라붙어서 설계 도면 하나하나 그리고, 또 사전 예행 연습도 해 봤습니다. 해체했다가 재설치해서 안 되면 통신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예행연습을 하고 다시 또 했습니다. 이게 이틀이 걸렸습니다. 아마 이렇게 일당백의 외교관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진행자: 전문가가 아니시잖습니까. 그렇게 안테나를 재설치하면 가동은 잘 됐나요?
류현우: 어떻게하다 보니까 잘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모스 부호로 통신을 보낸다고 해서 무전수가 옛날처럼 모스 부호를 직접 날려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관련된 변신 프로그램을 활용합니다. 네 글자를 한 글자로 조합해서 모스 부호로 내보내기 위한 숫자를 먼저 작성을 합니다. 그래서 이를 프로그램에 입력하면 자동으로 모스 부호가 전파로 날아가는 원리입니다. 그러니까 안테나를 하나 설치하게 되면 관련 설비로 갖춰야 할 변압기, 컴퓨터, 또 변환시켜야 하는 변환기 등 따라붙는 게 굉장히 많습니다.
진행자: 오늘 방송에서 류 전 대사대리께서 북한 외교관들만큼 일당백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한편으로는 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열악한 상황에서 일당백의 역할을 해내야만 하는 외교관들의 고충과 피로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류현우의 블랙북스, 다음시간에도 류 전 대사대리께서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로서 겪으신 경험을 풀어내 주시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