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탈북 선배의 조언 (2)
2024.10.03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오지연 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지연 씨는 정착 초반에 식당 개업을 목표로 삼았고 5년 만에 그 목표를 이뤄낸 분이셨죠?
마순희: 네. 맞습니다. 오지연 씨는 2009년 한국에 먼저 정착한 남동생의 주선으로 직행으로 한국에 입국했는데요. 당시 40대 중반의 나이였기에 무슨 공부든 충분히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연 씨는 북한의 전문대학교에서 식료가공학(식품가공학)을 전공했었기에 조금만 공부하면 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었는데요. 그녀의 선택은 정반대였습니다. 남들처럼 대학공부를 하거나 기술을 배우고 사무직으로 일하기에는 스스로 나이가 많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북한에 남아있는 하나뿐인 딸을 서둘러 데려오기 위해서 였습니다.
탈북민들의 일상생활 적응을 도와주는 정착도우미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기에 지연 씨는 지역 정착 생활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데요. 휴대폰을 개통하는 것부터 시장 보기, 대중교통 이용, 은행거래까지 일상생활의 첫 걸음을 함께 해 주었습니다. 정착도우미의 소개로 일자리도 찾았는데요. 오리집, 영양탕집 등 주방보조로 시작한 식당 일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지연 씨는 주방장까지 되었고 5년째 됐을 무렵에는 서울의 한 지역에서 자신의 가게인 오리 전문 식당을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그런 지연 씨를 보면서 목표가 뚜렷하면 어떤 일이든 성공할 확률이 더 높은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딸도 정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 데려왔습니다. 식당 개업을 목표로 삼았던 지연 씨는 식당 일이 단순히 돈을 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탐구와 배움의 시간들이라 여겼고, 그 경험을 통해 정착 5년 만에 그토록 바라던 식당을 열 수 있었습니다. 겉보기에는 목표하는 바를 모두 이루어 낸 지연 씨지만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남북의 생활양식이나 생활수준의 차이가 크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너무도 익숙하게 타고 내릴 수 있는 지하철이지만 처음엔 노선과 방향이 혼동됐고 교통카드를 대는 것도 낯설고 들어가는 곳과 나가는 곳이 헷갈리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지연 씨는 그렇게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면서도 잘 적응해 나갔고 어엿한 식당 사장으로 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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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선: 이제는 식당 운영만 잘하면 되는데요. 지연 씨가 가게를 낸 곳이 어느 지역인가요?
마순희: 서울 마포 지역입니다. 지연 씨의 거주지가 마포였기 때문입니다. 정착 초반부터 일했던 식당은 인천 지역에 있었는데요. 거의 두세 시간을 출퇴근길에 보내야 했습니다. 그 길을 5년 동안 꾸준히 했으니 지연 씨의 성실함이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지요? 지연 씨는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가게를 거주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잡았는데요. 다른 지역보다 임대료가 비싼 곳이었습니다. 대신 상권부터 위치 등 조건이 좋았기에 그 자리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지연 씨가 5년 동안 열심히 모은 돈으로 가게를 내기에는 부족한 상황이었고 지연 씨는 난생처음, 대출이라는 것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자영업자들 중에 대출이 없는 자영업자가 드물다고들 하지만 지연 씨는 언제나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지연 씨는 수입이 생기는 대로 대출부터 갚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김인선: 매출이 꾸준하면 몇 년 안에 대출을 갚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처음부터 장사가 잘 됐다고 말하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지연 씨는 흡족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마순희: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연 씨는 주방보조 일을 할 때부터 자신의 가게를 내는 날까지 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왔고 서울 지역의 한 번화가에 자리 잡은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지연 씨의 오리 전문점 운영은 낙관적이지 않았는데요. 초반엔 자신의 인건비 정도만 매출이 나오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연 씨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월세 걱정은 하지 말자’를 목표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가게 주변에 회사가 많은 만큼 직장인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생각했고, 가게의 활성화를 위해 홍보 방식이나 메뉴 개발, 그리고 가격 인하 등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며 결국엔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지연 씨네 가게는 번창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단골손님도 하나, 둘 늘어 점차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김인선: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생각한 것만큼, 원하는 것만큼 돈을 벌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마순희: 맞는 말입니다. 지연 씨네 가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과적으로 2년 전에 지연 씨는 가게를 접었고 지금은 여수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서 조리사로 근무하고 있는데요.
김인선: 경영의 어려움 때문에 가게를 접게 됐을까요?
마순희: 가게를 접은 이유는 경영상의 어려움이 아닌 뜻밖의 이유였습니다. 건강상에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 몸이 그전 같지 않다는 생각에 어느 날 병원을 찾았는데, 2020년경 위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연 씨는 가게를 임시 휴업 상태로 해 놓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도 잘됐고 항암치료 경과도 좋아서 몸은 점차 회복되었습니다. 하지만 가게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지연 씨는 한국에 와서 목표로 삼고 이뤄냈던 자신의 가게를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식당 운영을 할 수는 없었지만, 지연 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정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암 수술이나 항암 후 환자들을 위한 체계적인 요양과 치료를 하는 요양병원이었습니다. 지연 씨 역시 암 수술과 항암 치료를 했던 분이기에 어떤 식단이 도움이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게다가 여수는 항암 음식인 각종 해조류가 넘쳐난다고 소문이 난 고장입니다. 무농약과 유기농법으로 직접 재배한 야채를 이용해서 자연식과 채식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는 지연 씨의 말에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지연 씨는 요양병원에서 조리사로 근무하는 것이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도 최적의 환경이 되기에 최고라고 하더라고요. 환우들을 위한 음식을 정성껏 만드는 것으로 삶의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는 지연 씨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암환자의 경우 항암 치료를 마친 이후 5년 동안 재발하지 않으면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고 하는데요. 지연 씨는 올해로 항암치료가 끝난 지 3년이 경과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2년도 거뜬히 잘 이겨내고 꼭 완치 판정을 받았다는 행복한 소식이 전해지기를 바래봅니다.
김인선: 지연 씨에게 삶의 원동력이 되는 따님 얘기도 궁금해요.
마순희: 네. 지연 씨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 한국에 왔을 때가 20대 초반이었습니다. 지금은 미용전문가인 헤어디자이너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요. 8년 전에 결혼해서 지금은 두 딸의 엄마가 됐습니다. 지연 씨를 만나기 위해 딸네 가족이 여수로 자주 놀려온다며 행복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 지연 씨입니다. 최근 통화하면서 탈북민 후배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없는지 물어 보았더니 열심히 살면 남한에서는 최소한 밥을 굶을 일은 없으니까 무조건 열심히 노력하라고 당부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목표가 뚜렷하면 반드시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걸 지연 씨를 통해 알게 된 것 같아요. 지연 씨처럼 삶의 목표설정이 있는지, 그 목표를 향해 잘 달려가고 있는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