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선생님, 강선희 씨 (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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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우리들학교’에서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들이 17일 한국어 교육을 받고 있다.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우리들학교’에서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들이 17일 한국어 교육을 받고 있다.
RFA PHOTO/목용재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강선희 씨에 대한 이야기 나눠 볼게요. 코디네이터는 쉽게 말해 보조 선생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일반 학교에 다니는 탈북 학생들의 적응을 돕고 부족한 학업성취를 돕습니다. 코디네이터는 교육자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학력과 경력뿐 아니라 컴퓨터 활용능력은 물론이고 남한 교육활동에 대한 이해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교원활동을 했던 탈북민 중에 코디네이터가 된 분들이 많은데요. 선희 씨도 마찬가집니다.

마순희: 맞습니다. 선희 씨는 북에 있을 때 중학교 한문교사였습니다. 한국에 와서도 교사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교사 경력은 인정해도 교편을 잡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무기력해진 선희 씨는 배정 받은 집에 홀로 덩그러니 앉아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슬픈 마음이 가득한 우울증을 앓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선희 씨의 집을 오가며 살뜰히 살펴준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정착도우미 봉사자들입니다.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 생활을 마치고 나온 탈북민에게 남한사회 적응에 필요한 전반적인 것들을 알려주고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가재도구 사는 일부터 지역 주민센터에 가서 행정적인 절차를 밟는 일까지 정착도우미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낯설고 처음인 우리 탈북민들의 한국 정착의 길잡이가 되고 안내자가 되어 주는 참으로 중요한 업무를 맡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탈북민들은 초기정착의 가장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자신들에게 진심으로 도움을 주고 말벗까지 되어 주는 식구 같은 정착도우미들을 늘 잊지 못 하고 살아간답니다.

김인선: 탈북민들이 남한에서 살아가는 동안 잊지 못한다는 정착도우미, 이제는 탈북민 중에도 그 일을 하는 분들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마순희: 네, 제가 알고 있는 분들 중에도 정착도우미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꽤 있는데요. 그분들은 모범적으로 잘 정착하신 것은 물론이고 적어도 한국정착 10년이 훨씬 넘는 분들이랍니다. 탈북민 정착도우미는 후배들을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분들로 선발하기 때문입니다. 남한 사람들 중에서 정착도우미 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북한이나 탈북민에 대한 관심이 높고 사회봉사, 지역보건, 이산가족찾기 등의 구호사업을 하는 대한적십자사, 혹은 공공기관들에서 탈북민 관련 일들을 많이 하시던 분들이 대부분인데요. 남한토박이나 탈북민을 떠나서 정착도우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탈북민들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무한한 헌신과 봉사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인선: 맞아요. 그래서 선희 씨처럼 정착도우미에게 감명 받아 사회복지학과를 가서 관련된 일을 하려는 탈북민들을 많이 봤거든요. 어쩌면 선희 씨도 북한에서의 교사경력이 없었다면 정착도우미가 되지 않았을까요?

마순희: 그럼요, 그럴 자격이 충분하죠. 그런데 선희 씨의 마음속에는 늘 교사라는 직업이 남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착도우미들의 보살핌으로 마음을 더 단단히 잡은 강선희 씨가 처음 시작한 일은 국립도서관에서 자료를 정리하는 사서였습니다. 그 업무도 북한에서의 높은 학력과 교사라는 직업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적성에도 맞았지만 2년 계약직이었고 재계약이 어려워서 그 일을 그만 두게 됐는데 그동안 배워뒀던 컴퓨터 활용능력 등이 코디네이터 지원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선희 씨는 2014년부터 초등학교에서 탈북 학생 전담 코디네이터로 근무했는데요. 코디네이터 업무가 그렇게 적성에 맞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국립도서관의 사서 일보다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금의 코디네이터가 교사였던 선희 씨에게 더 적합한 직업인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김인선: 사서로 2년간 일한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북쪽에서의 교사 경력이 도움이 된 것 같은데요. 제가 선희 씨라면 정식 교사가 되고 싶다는 욕심도 날 것 같아요.

마순희: 그럼요, 하지만 40대가 넘었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북한에서의 교사경력이나 학력은 인정받지만 한국에서 교사로 근무하려면 임용고사를 거쳐야 하기에 쉽지 않은 것입니다. 사실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으로 온 나라가 어려움을 겪기 전까지 교원의 위상은 대단했답니다. 교원은 직업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키우는 직업적 혁명가라고 불렸거든요. 그러다 보니 사범대학이나 교원대학, 심지어 교양원대학이라도 출신성분을 엄격히 따지면서 갈 수 있었고 또 교사라 하면 인성도 바르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자부심도 높기에 한국에 와서 직업을 선택할 때에도 일반 탈북민들보다는 생각하는데 차이가 나기도 하더라고요.

자신에게 어울리는 직업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많아서 몸이 고되고 힘든 일자리들은 기피하는 사례들도 있습니다. 선희 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고 암담하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실례로 정착초기에 취업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을 때 남북하나재단에서 생활수준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게 되었는데 당시 작성하기를 북한에서의 나의 생활은 중상위층이고 남한에서의 나의 생활은 최하라고 작성했다고 합니다. 그 글을 본 담당 상담사가 대한민국에는 강선희 씨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훨씬 많다고 하면서 선희 씨가 사회를 이해하고 자신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게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고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김인선: 사실 남한에서도 교사의 위상은 높은 편이죠. 차이가 있다면 남한에서는 출신에 상관없이 임용고시라는 시험만 통과하면 교사가 될 수 있는데요. 하지만 그 시험을 통과한다는 게 상당히 어렵습니다. 요즘엔 선생님이 되어서도 아이들과 얼마나 잘 소통하고 잘 지내는지 자질도 중요한 거 같더라고요. 선희 씨는 마음 열기 어려울 수도 있는 탈북 청소년들과 어떻게 대화하는지 궁금하네요.

마순희: 북한에서는 선생님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는데 한국에서는 선생님이라고 해서 학생들에게 강요를 하거나 강압적으로 말을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선희 씨는 북에 두고 온 자신의 두 딸들을 생각하면서 탈북학생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애썼고 학교와 학업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돕는다는 마음으로 근무했습니다. 그래도 학생들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더군요. 원치 않는 한국행으로 부모에 대한 불만이 많았고 어렵게나마 적응을 해보려 해도 남북한 어휘가 달라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선희 씨는 학생들의 학업과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남한학생들과의 교우관계도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그 외에도 학부모님들과도 자주 만나고 상담도 하면서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했다는데요. 코로나 사태로 교육과정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지만 노트북이나 컴퓨터가 없어서 온라인 수업을 받기 힘든 학생들에게, 교육청과 복지기관에서 전자기기를 지급해 주기 때문에 학부모들과 일일이 전화로 실태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요즘엔 탈북민 학생들뿐 아니라 다문화 가족들을 위한 지원수업도 겸하고 있어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낸다는 선희 씨입니다. 이렇게 학교에 근무하는 일만으로도 벅찰 텐데 선희 씨는 2014년부터 몸담고 있는 봉사단체에서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고요. 앞으로 6년 후면 정년 퇴직할 나이가 된다고 하면서 요즘에는 새로운 공부를 모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동교육분야에 대한 꿈이라고 하는데요. 아무도 모르는 선희 씨의 새로운 희망을 응원하겠습니다.

김인선: 어린 탈북 학생들의 학업과 학교적응을 도와주면서 봉사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강선희 씨! 코디네이터라는 수식어가 있지만 선희 씨는 과거에도 지금도 또 미래에도 영원한 선생님이 아닐까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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