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이 깊고 큰 용접기술자 김민섭 씨 (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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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직업학교 '용접교실' 교육생들이 용접기술을 배우고 있다.
한빛직업학교 '용접교실' 교육생들이 용접기술을 배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용접기술자 김민섭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볼게요. 올해로 한국정착 14년차인 민섭 씨는 북한에 있을 때 탄광기계공장에서 10여 년간 일을 했는데요. 한국에 와서도 그 경험을 살리면 잘 정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거주지를 선택할 때도 공업도시를 찾았다고 했었죠?

 

마순희: 네. 김민섭 씨는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거주지를 선택할 때 제철소가 있는 공업도시인 포항을 거주지로 신청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무한 우리 탈북민들이 하나원에서 거주지 선택을 하면서 참고하는 책자가 있다는 말씀 전번에도 드린 것 같은데요. 그 책자에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로부터 지방 도시들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정보들이 실려 있거든요. 그 책자를 보고 자신의 정착지를 결정하는데 김민섭 씨는 탄광기계공장에서 10여 년간 일을 했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곳으로 포항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하지만 생각만큼 모든 게 순조롭지만은 않았습니다. 기술자로 취업하는 게 쉽지 않았기에 하루 일당을 받고 노동일을 하는 일용직 근로자가 됐답니다. 주어진 일에 성실히 임하는 민섭 씨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여럿 생겼고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기술을 배우라고 권했습니다. 김민섭 씨는 용접기술을 배우게 됐고 용접기술자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일용직 근로자에서 용접기술자가 된 것입니다.

 

김인선: 용접기술자가 되면 돈벌이가 꽤 된다고 알고 있어요. 현장 일을 소개해주는 인력사무소에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루 일당이 최소 50달러(6만원)지만 용접기술이 있는 사람은 최고 143달러(17만원)를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마순희: 네. 아마도 금속재료를 녹일 정도의 고온의 열과 강한 빛 속에서 하는 작업이라 위험하고 또 높은 기술을 필요로 하기에 일당이 높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일당이 높은 건 아니고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일당이 올라간다고 하더라고요. 무엇보다도 현장경력을 중시한다고 합니다. 민섭 씨는 올해로 한국정착 14년차인데 용접기술자로 일한 햇수가 12년이 다 됐다고 하더군요. 그의 현장에서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는 거죠. 그런데 전문 용접기술자로 인정받는 민섭 씨에게는 초기정착을 시작하면서 잊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처음 지역사회에 정착하면서 사회경험도 없다 보니 탈북민끼리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함께 정착해 나가자는 취지로 자그마한 단체를 조직했습니다.

 

김인선: 탈북민들끼리 마음을 나누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모임이 참 많더라고요. 그런 모임을 새로 조직했군요.

 

마순희: 네. 당시 포항에는 다른 단체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포항에 함께 정착하게 된 하나원 동료들은 하나원 생활을 할 때부터 민섭 씨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단체를 이끌어 주기를 바랬다고 해요. 민섭 씨도 같은 탈북민들을 돕는 일이기에 발벗고 나섰고 정착하는데 서로 도우면서 힘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민섭 씨를 친 형님처럼 믿고 따르던 한 남성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있어서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민섭 씨는 그 자리에서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았는데요. 동생처럼 따르던 그 남성이 그날 밤 한 시에 민섭 씨네 집에 찾아왔었다고 하더군요. 별 의심없이 문을 열어 주었는데 다짜고짜 갑자기 흉기로 찔렀다고 합니다.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았다면서 말이죠. 잠자리에서 일어나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피투성이가 되었고 크게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그 일로 김민섭 씨는 몇 개월을 병원신세를 졌다고 하는데요. 구속되어 있는 그 남성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민섭 씨는 치료비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합의를 해주고 용서를 해주었다고 해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절대로 남의 일에 나서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하더군요.

 

김인선: 자주 있는 건 아니지만 탈북민들의 폭력사건이나 사기사건에 대한 얘기는 들어봤는데 이런 큰일날 뻔한 일도 있었군요.

 

마순희: 네. 일단은 그런 큰일을 당하고도 완쾌되어 정상생활을 하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사실 탈북민들, 특히 남성들 간에는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요. 주로 한국에 정착한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취한 김에 사소한 말다툼을 하게 되고 욱하는 성격에 혹은 괜한 자존심 때문에 주먹다짐을 하기도 하는데요. 대부분 사소한 일로 싸움이 벌어지는 겁니다. 사실 북한에선 흔한 일이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남한에선 누군가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경찰이 오기도 하고 문제가 커지잖아요? 어떤 경우에라도 폭력은 인정이 안 되니까요. 예를 들어 북한에선 상대방이 먼저 때려서 때렸다고 하면 정당방위라고 하는데 남한에선 상대방이 먼저 때렸다 해도 똑같이 때렸다면 쌍방폭행으로 처벌을 받고 각각의 피해자에게 치료비를 지불해야 합니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되는 탈북민들은 그런 걸 몰라서 싸움에 휘말리기도 하는데요. 최근엔 그런 경우도 흔치 않습니다. 선배 탈북민들이 알려주기도 하고 한국에 대해 많이 알고 오니까요. 무엇보다 제 살길 찾기 바쁘기 때문에 만날 기회가 많지도 않아요. 민섭 씨도 마찬가지고요.

 

김인선: 어쨌든 제가 민섭 씨라면 용서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내 목숨을 위협한 것도 괘씸하고, 무엇보다 친동생처럼 아끼면서 마음을 줬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도 클 테니까요.

 

마순희: 민섭 씨는 같은 탈북민으로 그런 사정을 알기 때문에 용서를 했고요. 아내 역시 그런 그를 이해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남편을 위로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용서해 주지 않아 그 후배가 감방에 라도 가면 언젠가는 형을 마치고 나올 텐데 낯선 한국 땅에서 정착해 애들도 키우는 입장에서 자기 가정에 원한을 품고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불안한 삶일지를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한국에 와서 선물 같은 딸까지 얻었기에 민섭 씨 부인은 아이들을 먼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차라리 용서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안고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젊은 청년이잖아요? 훌훌 털고 일어난 거죠. 정착 초반에 겪은 큰일 때문에 민섭 씨는 직장생활과 가정에만 충실하게 되는데요. 민섭 씨가 다니던 회사에는 모두 남한 동료들 뿐이었다고 해요. 민섭 씨는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또 가정에 초대받을 때도 있었는데요. 가서 보니까 한국 사람들의 화목한 가정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고 합니다. 친구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민섭 씨가 다정다감한 남편인 이유가 있었네요.

 

마순희: 민섭 씨 같은 경우에는 워낙 북한에서부터 애처가이고 가장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 하는 성품이다 보니 중국에 살 때나 한국에 와서나 제 성품 대로 사는 것 아닐까요? 한국 친구들의 가정을 보면서 더 배우기도 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은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하게 지내고 있고 자신의 명의로 아파트도 장만했고 두 자녀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는 민섭 씨입니다. 매일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자는 것이 인생의 좌우명이라는 김민섭 씨는 특별한 혜택은 바라지 않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세금도 내면서 평범하면서도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정착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는 김민섭 씨야말로 일과 가정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이 시대의 가장이자 진정한 성공시대 주인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인선: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그리고 탈북민 사회에서도 김민섭 씨는 진심을 다하는 것 같습니다. 이해와 포용을 하면서 말이죠. 마음 그릇이 큰 김민섭 씨처럼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때론 용서를 하면서 지내봐야겠네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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