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어린 시절 꿈을 한국에서 이룬 미용사(1)

서울-김인선 kimi@rfa.org
2023.08.31
[마순희의 성공시대] 어린 시절 꿈을 한국에서 이룬 미용사(1) 국비 직업훈련기관인 대구 중구 오무선 뷰티 아카데미에서 '결혼이민자 헤어디자이너 양성프로젝트' 참가자들이 미용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머리 모양에 따라 사람의 인상이 달라지기도 하고, 기분전환도 가능하잖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한두 달 사이에 한번 정도는 미용실을 찾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한국에선 가을을 맞아 부쩍 미용실을 찾는 분들이 늘고 있다고 해요. 그만큼 미용 일을 하는 분들에게는 제때 식사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쁜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용사인 탈북민들도 지금 많이 바쁘시겠네요.

 

마순희: , 그렇습니다.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탈북민들을 취재하는 일을 몇 년간 하면서 제가 만났던 미용실 원장님들만 해도 여러 명 되고요. 또 저의 옆집 따님도, 처음 한국에 왔을 때에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지금은 미용실에 다니고 있을 정도로 주변에 미용사로 일하는 분들이 적지 않거든요. 그분들만 보더라도 주말에는 밥 먹을 시간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고 하시더라고요. 오늘 성공시대에서도 미용 일을 하는 분을 소개해 드릴게요. 2009년에 한국에 정착한 최수지 씨인데요. 한국생활을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한 분이십니다. 그러다가 어릴 적부터 꿈꿨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미용사가 됐다는 최수지 씨입니다.

 

김인선: 미용사를 하기 위해서는 미용사 자격증이 기본이잖아요. 요즘은 쉽게 딸 수 있어서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정도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필기와 실기시험 모두 합격해야 최종적으로 미용사가 될 수 있는데, 시험은 상시로 있어서 언제든 응시할 수 있지만 필기시험을 한 번에 통과하는 분들이 많지 않다고 해요. 수지 씨는 수월하게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을까요?

 

마순희: . 수지 씨는 다른 분들에 비해 수월하게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지 씨에게 미용 공부가 쉬웠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수지 씨가 북한에 있을 때부터 미용 분야에 관심은 많았지만 전혀 접해 본 경험이 없었기에 모든 것이 생소한 분야라 공부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탈북민에게는 외래어가 대부분인 미용 관련 용어가 어려운 난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지 씨는 주변에서 필기시험을 1년을 준비했는데도 합격하지 못 하는 친구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지 씨는 미용사 시험을 준비한 지 20일 만에 필기시험에 합격했고, 실기도 한 달 만에 합격했다고 합니다. 그 비법을 물으니 수지 씨는 반드시 해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불가능이란 없었다고 하더군요. 자격증을 취득한 수지 씨는 곧 바로 취직을 했는데 규모가 제법 큰 미용실이었습니다.

 

김인선: 큰 미용실에서 일을 하게 되면 처음엔 실습과정을 밟는 예비사원이나 미용사를 보조하는 업무부터 시작하고요. 2년에서 5년 정도 근무를 해야 머리를 매만질 수 있는 헤어디자이너로 승급할 수 있거든요.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보니 중간에 그만 두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수지 씨가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마순희: 맞습니다. 수지 씨는 그런 과정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자격증을 취득한 직후 곧바로 큰 미용실에 취직하면서 자신이 본격적으로 미용사 일을 시작하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곧 바로 머리를 매만지며 손님들이 원하는 머리 모양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미용실에 취직하면 곧 바로 손님들의 머리를 만지거나 경험이 많은 미용사에게 기술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수지 씨는 큰 미용실에서 가장 낮은 위치인 미용사 보조였기에 하루에 50-60명 정도 손님들의 머리 감겨주는 일만 전담으로 했습니다. 하루 종일 머리 감겨 주고 말려 주는 일을 반복하면서 손과 손목 피부가 벗겨졌지만 수지 씨는 손목에 붕대를 감고 주어진 일을 해냈습니다. 붕대가 있어도 반복적으로 손과 손목을 사용하다 보니 상처는 쉽게 낫지 않았습니다. 결국 수지 씨는 1년 정도 일하다가 큰 미용실을 그만두고 개인 미용실에 다시 취직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개인 미용실은 손님이 많지 않았기에 일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김인선: 그만큼 육체적인 노동 강도는 약해졌지만 수지 씨가 정말 원했던 것은 다양한 손님의 머리를 매만지면서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었잖아요. 두 번째 미용실에서도 오래 일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마순희: 맞습니다. 그래서 수지 씨는 6개월 후에 그만 두고 다른 미용실에 다시 취직을 했습니다. 원장님은 30년 경력의 전문가로 기술도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미용실을 찾는 손님들이 매일 꾸준했고 단골손님도 많은 덕분에 수지 씨에게도 다양한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초반엔 원장님 보조 역할만 했지만 몇 달 만에 수지 씨도 짧은 머리, 단발머리 등 머리카락을 자르는 커트부터 곱슬머리로 만드는 파마도 할 수 있었습니다. 수지 씨는 세 번째로 일했던 미용실 원장님 밑에서 기술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고 2년 후에는 독립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세 곳의 미용실을 옮겨 다니면서 미용 기술과 영업 비법은 물론 미용실 운영 업무까지 제대로 익힌 수지 씨는 2017년부터 자신의 명의로 된 미용실을 열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인선: 탈북민들 중 상당수가 한국에 와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기까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하잖아요. 상대적으로 수지 씨는 본인이 좋아하는 미용 일을 빨리 찾은 것 같아요.

 

마순희: , 맞는 말씀입니다. 미용사는 북한에서부터 수지 씨의 꿈이었습니다. 수지 씨는 어려서부터 꾸미기를 좋아했고 미용사를 선호했지만 북한에서는 그 꿈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전문대를 졸업한 후 집단 배치로 광산에 배치되어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한국에 와서 자신의 꿈을 이뤘지만 사실 수지 씨도 한국에 와서 자신이 미용사가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습니다. 대다수의 탈북민들처럼 수지 씨도 뭐든 해서 돈 벌고 살면 된다는 생각뿐이었기에 자동차운전 학원과 컴퓨터 학원에 등록하고 열심히 배웠습니다. 수지 씨의 나이를 고려하면 무엇이든 충분히 공부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국 입국 당시 수지 씨의 나이가 34살이었기 때문입니다.

 

탈북민 지원정책 중에 35세 미만의 경우 대학 공부를 하면 장학금에 최소 생활비까지 주는 제도가 있잖아요? 주어진 조건을 정말 잘 활용해서 열심히 살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거죠. 그래서 2-30대 탈북 청년들의 경우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수지 씨는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생각했습니다. 탈북 청년들도 한국에서는 컴퓨터 공부가 기본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대학 진학 여부와 상관없이 컴퓨터를 우선적으로 배우는데요. 취업이 목표였던 수지 씨는 전산회계 관련 과정까지 거쳐 자격증을 취득했고 약국에 취직을 했습니다. 일이 힘든 편도 아니었고 수입도 나쁘지 않았지만 약국에서 매일 단조로운 전산 업무를 하면서 반복되는 하루가, 흘러가는 시간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김인선: 맞아요. 몸이 힘들면 다른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지만 반대의 경우엔 쳇바퀴 도는 것처럼 반복되는 일상이 단조롭게 느껴지더라고요.

 

마순희: . 수지 씨가 그랬습니다. 약국 업무가 단조로운 데다가 금방 익숙해져 버리니까 시간이 갈수록 수지 씨는 편하게 돈만 벌 수 있는 일 말고 스스로를 성장시켜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어린 시절 동경하고, 하고 싶었던 미용사가 되면 좋겠다는 확고한 마음이 들자 수지 씨는 2년 반 동안 일했던 약국 일을 과감히 그만두고 미용 공부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수지 씨가 원했던 꿈이었기에 20일 만에 필기시험 합격, 한 달 만에 실기시험 합격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김인선: 마음먹은 일을 해내는 수지 씨의 추진력이 정말 굉장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부지런히 돌격하는 모습이 연상되는 것 같은데요. 수지 씨가 살아가는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갈게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