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최수지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수지 씨는 34살에 한국에 입국했기 때문에 탈북민 지원 정책을 통해 대학 공부도 충분히 가능했는데요. 대학진학 대신 취업의 길을 선택했었죠?
마순희: 네. 맞습니다. 한국에서는 회사생활 뿐 아니라 학교생활에서도 컴퓨터가 기본이기 때문에 컴퓨터 자격증 공부부터 시작했습니다. 취업의 기회가 다양하게 주어지는 전산세무회계 자격증을 취득했고 약국에 취직을 했습니다. 2년 반 정도 일을 하다가 단조로운 일상 대신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미용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약국 전산업무를 그만두었습니다. 약국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미용 공부를 시작한 수지 씨는 단 20일 만에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실기도 한 달 만에 합격한 것은 물론 곧바로 큰 미용실에 취직도 됐습니다. 대형 미용실에서 전문 미용사가 되려면 미용사 보조 일을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을 해야 하지만 수지 씨는 빨리 미용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컸고 1년 후 개인 미용실로 이직했습니다. 두 번째 미용실에서 6개월 정도 근무하고 마지막 세 번째 미용실, 30년 경력의 원장님이 운영하는 곳에 취직했습니다. 수지 씨는 그 원장님 밑에서 2년 동안 기술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고 2017년부터는 자신의 이름을 건 미용실을 열어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김인선: 수지 씨의 취업 성공률은 거의 백발백중이네요. 기본적으로 수지 씨의 노력과 열정이 밑바탕이 됐겠지만, 이 정도면 수지 씨에게 타고난 복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런 수지 씨에게 한국행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은 뭘까요?
마순희: 네. 말씀하신 것처럼 수지 씨는 어린 시절부터 비교적 무탈한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시간 날 때마다 장사를 하며 지냈고 특별히 탈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고 했으니까요. 고난의 행군 시기 중국에 가면 돈을 벌어올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했던 시절, 수지 씨도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던 것이 한국행으로 이어진 계기라고나 할까요? 1999년 20대 중반의 수지 씨는 중국에 가서 3일만 벌어서 북한으로 돌아오면 잘 살수 있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친구랑 함께 중국으로 향했다는데요. 아시는 것처럼 그렇게 중국으로 간 탈북 여성들 대부분이 돈을 벌기는커녕 인신매매자들의 속임수에 빠지게 되는데 수지 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수지 씨는 인신매매를 주도하던 사람의 동생과 불같은 사랑을 하게 되었고,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보다 그냥 그 사람과 중국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결국 수지 씨는 집에 편지만 내 보내고 중국에서 그 남성과 결혼하고 함께 살림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조선족인 그 남성은 돈도 좀 있었기에 수지 씨는 얼마 뒤부터 식당을 차리고 남편과 함께 운영해 나갔는데요. 돈도 잘 벌었다고 합니다. 그렇다 해도 수지 씨는 불법 체류자라는 신분 때문에 늘 마음을 졸여야 했고, 식당을 운영하면서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수지 씨는 남편에게 한국으로 가 국적을 딴 뒤 중국으로 돌아와서 마음 놓고 함께 살고 싶다고 했고, 9년을 함께 산 남편도 그렇게 하자고 약속했습니다. 수지 씨는 한국행 브로커를 통해 가짜 여권을 비싼 값으로 구입한 뒤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가짜 여권을 소지했기에 가슴 졸이는 긴장감의 연속이었겠지만 수지 씨는 특별한 어려움 없이 한국에 무사히 입국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인선: 제 3국을 통해 몇 년간 고생하며 한국에 오는 탈북민들과는 전혀 딴판이었네요. 수지 씨의 원래 계획대로라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중국에서 지내야 하는데, 수지 씨는 지금 한국에 있잖아요. 뭔가 변수가 생긴 것 같은데, 수지 씨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요?
마순희: 네. 한국에 와서 중국으로 가기까지 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리면서 큰일이 생겼습니다. 중국을 떠나 인천공항에 도착한 수지 씨는 한국 국적을 갖고 싶어서 온 만큼 자신은 탈북민이라고 자진신고를 했고, 국정원 조사를 받은 뒤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 교육까지 마쳤습니다. 그 기간 동안 수지 씨는 조선족 남편과 연락을 하지 못했는데, 사정을 모르고 있던 조선족 남편은 수지 씨의 마음이 변한 것으로 오해하고 이미 다른 여성과 살림을 차렸던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적의 여권을 가지고 중국으로 향했던 수지 씨는 너무나도 기가 막힌 현실에 망연자실했습니다. 조선족 남편과 마음 편히 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던 수지 씨였기에 남편에게서 그 여자를 떼어 놓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좀처럼 남편과 헤어지려고 하지 않았고 남편의 마음도 멀어져 갔습니다. 수지 씨는 1년 넘게 한국과 중국을 오가면서 부부 사이를 되돌리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은 모두 허사였습니다. 결국 수지 씨는 허무한 마음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남편에 대한 사랑이 컸던 만큼 수지 씨가 체감하는 이별의 상처가 깊었겠어요.
마순희: 맞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수지 씨는 우울증으로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밖으로 나가기도 싫었고 사람을 만나기도 싫어서 그냥 술에 의지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는 사이 몸무게는 갑자기 13kg이나 불어났고 활기가 넘치던 수지 씨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수지 씨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정신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에서 남편과 함께 식당을 운영했던 추억 때문에 수지 씨는 음식 장사나 식당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굳게 먹고 운전면허부터 취득하고 컴퓨터학원에 등록하고 전산회계를 배웠습니다. 약국 취업도 쉽게 하고 미용 공부와 미용실 취직도 수월하게 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별의 상처를 딛고 한국 정착을 시작한 수지 씨가 아득바득 지독하게 해냈던 일들이었던 것입니다.
김인선: 수지 씨는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루는 것으로 멋지게 이별의 아픔을 이겨낸 것 같아요. 그런데 미용 장비 구비부터 미용실 임대까지 하려면 경제적인 부분도 뒷받침 돼야 하는데, 어떻게 수지 씨는 짧은 기간에 자기만의 공간인 미용실까지 열 수 있었는지 그 비결 좀 알 수 있을까요?
마순희: 네. 수지 씨는 중국에서 9년을 지내는 동안 7년 동안 식당을 운영했을 정도로 사업 수완이 좋았고, 한국에 올 때부터 경제적인 조건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 수지 씨의 좌우명입니다. 우울한 마음을 털고 일어난 뒤부터 수지 씨는 거침없는 추진력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약국에서 일하면서 돈을 모았고 미용실에서 일하면서도 급여를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미용실에서는 미용 기술만 배운 것이 아니라 미용실 운영에 필요한 전반적인 것들을 모두 습득했기에 3년 반 만에 자신의 명의로 된 미용실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이했고 그러다 보니 고객과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물론 단골이 늘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수지 씨가 운영하는 미용실 문을 열고 나가면 근처 여기저기 보이는 게 미용실들인데요. 수지 씨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열고 닫는 다른 미용실과 달리 수지 씨는 손님이 원한다면 일찍 출근하기도 하고 늦게 퇴근하면서 손님을 기다려 줬더니 한 번 왔던 고객은 거의 단골이 됐기 때문입니다.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남자친구도 사귀게 되었고 지금은 결혼해서 시어머님까지 모시고 함께 살고 있습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학기부터 서울사이버대학 3학년에 편입하여 사회복지와 상담학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열심히 사는 수지 씨. 내년이면 대학 졸업증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기에 미리 축하의 인사를 보냅니다.
김인선: 사람마다 기운이 있다고 하는데요. 수지 씨에게는 긍정의 기운, 도전의 기운, 열정의 기운이 굉장한 것 같아요. 나쁜 기운을 꾹 눌러줄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최수지 씨의 좋은 기운이 청취자 여러분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