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텔레비죤의 역사 (5)

서울-문성휘, 김태산 xallsl@rfa.org
201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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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TV' 아나운서가 손에 든 태블릿PC를 이용해 방송을 진행하는 모습.
북한의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TV' 아나운서가 손에 든 태블릿PC를 이용해 방송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이 시간 진행을 맡은 문성휘 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해외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책임지고 체류하던 중 2천년 초에 한국으로 망명한 김태산 선생과 함께 합니다.

기자: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김태산: 네, 안녕하십니까?

기자: 네,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지난 시간 우리는 북한에서 처음으로 천연색 텔레비죤을 보았던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의 역사를 돌이켜 보았는데요. 오늘도 계속해 1980년대 북한의 선전선동 수단으로서 텔레비죤의 역사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1980년대 말까지 북한에서 천연색 텔레비죤이라고 하면 사실상 김일성, 김정일의 선물이 전부였지 않습니까? 거 또 선물이라 하면 거저 주는 게 아니라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보내주신 선물” 이렇게 박아 넣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정말 억울한 게 내가 살던 고장에 책임비서나 조직비서네 집은 천연색 텔레비죤이 두 대나 있어요. ‘목란’ 두 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 “위대한 수령님 선물”이에요. 그러니까 남을 주지도 못 하고…

김태산: 못 주죠. 팔지도 못 하고…

기자: 네, 제 부모나 동생이 텔레비죤이 없는데도 주지 못해요. 그걸 주었다간 제 목이 날아나니깐. “저 집은 책임비서네여서 천연색 텔레비죤이 두 대다”… 사실 우리 집도 1979년도에 텔레비죤을 놓았지만 그때 당시 마을에 정말 텔레비죤이 많이 없었으니까 우리 집은 좀 말하기 창피하지만 마음이 확 열린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봐요. 왜냐면 텔레비죤을 놓자마자 울타리부터 아주 높게 했어요. 사람들이 자꾸 들어오는 게 시끄러워서 대문도 힘들게 열고 들어오게 했고요. 어떤 집들은 텔레비죤이 있으면 초저녁부터 들어와서 문을 걸어 놓지 않아요.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안 열어주지 않았어요. 그런 집들이 그때엔 많았어요.

김태산: 그랬죠. 텔레비죤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그랬죠.

기자: 네, 그래서 우리는 문을 두드리면 확인을 해요. 누구냐고 물었을 때 “아무개다”하면 가까운 사람이면 들여 놓아요. 그리고 문을 두드리면 “누구요?”하고 소리쳤을 때 “아, 저 어디에 사는 누구인데 텔레비죤을 좀 봅시다”하면 우리와 가깝지 않거나 잘 모르는 아이들일 땐 “오늘 저녁에 텔레비죤을 안 켠다”하고 들여놓지 않았어요. 그런 시절도 생각이 나는데 아마 80년대 중반쯤 되니깐 사람들이 천연색 텔레비죤이라는 걸 가지고 있지는 못해도 좀 볼 수 있는, 그럴 정도로 천연색 텔레비죤이 좀 늘었던 것 같아요.

김태산: 그렇죠. 그렇죠. 흔하게 좀 접할 수 있었죠. 공공기관들에 많이 놓았으니깐.

기자: 네, 그리고 북한이 자체로 ‘대동강’, ‘삼지연’, ‘보천보’라는 텔레비죤을 만들었는데 그게 다 “대동강 텔레비죤 공장”에서 생산한 것들 아니었던가요?

김태산: 네, 텔레비죤 공장이라는 게 그거 하나밖엔 없었습니다.

기자: 네, 그렇게 생각하고 그다음 또 “대동강 텔레비죤공장”에서 한때 일본 도시바하고 합자해서 자체로 ‘목란’이라는 텔레비죤을 생산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우리 집이 ‘소나무’라는 텔레비죤을 처음으로 받은 게 1979년도였거든요. 그때에 벌써 북한엔 ‘대동강’이라는 텔레비죤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자체로 생산한 ‘대동강’ 텔레비죤을 더 좋다고 하던 때가 있었어요. 왜냐면 후에 ‘포톤’이나 ‘뽈스까(폴란드)’라는 텔레비죤이 나왔어요. 하지만 ‘대동강’은 북한이 루마니아에서 부속을 들여다 조립한 거여서 아마 ‘포톤’보다는 규격이 더 작았어요.

김태산: 그렇지 작았죠.

기자: 네, 작았죠. 그래서 그때 사람들이 오히려 ‘대동강’ 텔레비죤을 더 좋아했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대동강 텔레비죤공장”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삼지연’, ‘보천보’ 이런 텔레비죤들을 생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텔레비죤이 가정들에 많이 보급되던 그때가 제 기억으론 ‘고난의 행군’ 이후입니다. 왜 1975년부터 “온 사회 텔레비죤화”를 떠들었는데 실제 텔레비죤의 보급은 그렇게 늦어졌는지?

김태산: 아니 텔레비죤이라는 게 땅 파서 만드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도 기술이 발전하고 돈이 들어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북한에서 기술이 발달하지 못하다 나니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거예요. 반도체 3극소자, 2극소자, 모든 걸 다 다른 나라들에서 수입해 와야겠는데 북한 자체로 생산하는 건 30%밖에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데 텔레비죤 공장 자체로선 북한 당국이 달러를 주지 않으면 수입은 못 하는 거죠. 국가에 의존해야 하는데 1980년대 들어서면서 점점 경제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하락하기 시작하면서 텔레비죤 공장 같은데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됐다는 거예요. 솔직히 저도 1980년대 초반부터 내각 산하 경공업분야에서 수출, 수입을 맡아 보았는데 외화가 없어 생고무를 수입하지 못하다나니 인민들이 신발을 신지 못하고 있는데 신발을 못 신는 사람들에게 텔레비죤을 보여주겠다며 텔레비죤 부속을 수입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 “대동강 텔레비죤공장”도 여기 대한민국이나 자본주의 나라처럼 자체로 만들고 자체로 살아가게 했으면 나오는 이윤을 생산에 투입해서 발전했을 겁니다. 그런데 국가계획에다 꼭 얽매어 놓으니 수입원자재를 수입하지 못해서 “가뭄에 콩 나듯” ‘삼지연’도 나오고 ‘보천보’도 나오고 이름만, 명칭만 바꾸어 나오는 거죠. 여러 가지를 생산하는 것처럼 ‘삼지연’이라고도 해보고 ‘대동강’이라고도 해보고 ‘평양’이라고 해보았는데 지금도 아마 그때나 거의 같다고 봐야죠. 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북한의 공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계속 하락하고 있습니다. 큰 국가의 기간공업이 죽었는데 텔레비죤 공장 하나만 살아 남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기자: 네, 저도 보니까 1986년까지 ‘대동강 텔레비죤공장’에서 텔레비죤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부터는 전자관식이 추세가 지났다면서 반도체를 만들라고 했는데 북한에 반도체 기술이 없어서 그때부터 생산을 못했어요. 그 기억이 나는데 저의 집 텔레비죤은 워낙 일본산이니까 이건 고장 나는 법이 없었어요.

김태산: 그렇죠. 그거 하나면 몇 대를 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기자: 네, 그런데 다른 텔레비죤들, 전자관식 텔레비죤들은 고장이 자주 나죠. 우리 옆집 사람이 정말 소문난 텔레비죤 수리공이었어요. 다리 한쪽을 좀 저는 사람이었는데 대개 북한은 그런 장애인들이 수리를 많이 하지 않습니까?

김태산: 그렇죠. 약전을 배웠으니깐.

기자: 네, 북한은 텔레비죤 수리를 하는 집이라기보다 “약전하는 집, 약전하는 집” 이렇게 말했죠? 우리 옆집이 약전을 하는 집이었는데 신기한 것은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어요. “텔레비죤은 같은 대동강 텔레비죤 공장에서 만든 거라고 해도 ‘대동강’보다 ‘삼지연’이 훨씬 좋다” 그런데 ‘삼지연’이라는 텔레비죤이 많지 않았어요. 대동강이 대부분이었죠. 그래서 왜 그렀냐고 물어보았더니 ‘대동강’은 소련제 수상관이래요. 벌써 소련제는 투박하고 느낌이 다르대요. 그러나 ‘삼지연’은 미국산 수상관이라고 했어요. “삼지연은 미국산 수상관인데 이건 소련제보다 훨씬 엷고 좀 파란 형광등 느낌이 든다고, 그래서 소련제에 비해 훨씬 좋다”고 했어요. 그러면 선생님은 천연색 텔레비죤을 몇 년도에 놓았습니까?

김태산: 그게 1987년도에 놓았어요. 87년도에 일본산으로 바꾸어 놓았죠.

기자: 저희는 ‘고난의 행군’ 이후에 천연색 텔레비죤으로 ‘홍매’를 놓았어요. ‘홍매’는 중국산인데 그때 중국에서 중고가 많이 들어왔으니까 새것이 아닌 중고를 놓았죠. 아마 우리 집에 천연색 텔레비죤을 놓았을 때가 북한에서 기본적으로 “온 사회의 텔레비죤화”가 완공된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정작 “온 사회의 텔레비죤화”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니 그 다음부턴 전력사정으로 또 텔레비죤을 못 보게 되었죠. 그러고 보니 북한의 텔레비죤 역사 정말 간고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그 시절 속으로’ 북한의 간고했던 텔레비죤의 역사는 다음 시간에 계속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선생님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김태산: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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