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 ] 한국 드라마의 이모저모를 알려드리는 시간,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서울에 있는 문화평론가인 중원대 김헌식 교수와 함께합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추억의 드라마 ‘가을동화’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2000년 한국 방송 채널 KBS에서 방영된 월화 드라마로 현재 초특급 배우인 송혜교, 송승헌, 원빈 배우 등이 출연했는데요. 혹시 ‘가을동화’ 드라마를 시청했지만, 잊어버린 시청자분들은 이 노래를 들으면 기억날 것 같습니다.
[ 가을동화 배경음악 ]
어린 시절 친남매인 줄 알고 자랐던 윤준서, 윤은서 남매는 중학생이던 시절 은서가 친동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그 이후로 떨어져 지내던 둘은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 묘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두 남매를 둘러싼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많은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는데요. 김헌식 교수님과 함께 드라마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은 ‘가을동화’에 대한 북한 주민 반응과 리메이크 즉, 재창작 된 작품들 알아보겠습니다.
한 탈북민이 가을동화 드라마 때문에 탈북을 결심했다고 말할 정도로 북한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북한에서 ‘가을동화’ 인기는 어느 정도였다고 파악되나요?
[ 김헌식 ] 관련 단체인 '통일미디어'가 '2019 북한 미디어 환경과 외부 콘텐츠 이용에 대한 실태조사' 보고서를 낸 적이 있는데요. 탈북민 200명 가운데 가장 많은 31명이 '가을동화'를 가장 재미있게 봤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어서 <남자의 향기>, <천국의 계단>, <꽃보다 남자>, <겨울연가> 순으로 나타났거든요. <겨울연가>가 5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겨울연가>와 <천국의 계단>보다 훨씬 더 인기가 많았다는 것이고요. 그 뒤로 <올인>, <태양의 후예>, <상속자들>, <미생>도 순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결과적으로 '가을동화'가 얼마나 많이 사랑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 기자 ]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 드라마 중 특히 '가을동화'의 인기가 엄청났던 것 같은데요. 심지어 탈북민들이 각종 미디어에서 "북한에서 즐겨봤다"고 직접 말하기도 했죠. 탈북민 김가영 씨는 TV조선의 모란봉클럽에 출연해 윤준서 역할을 했던 송승헌 배우를 직접 본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 김가영 / 탈북민 ] 면세점에 송승헌이 모델로 왔는데 그때 제가 우연히 갔다가 봤어요 . 그런데 실제가 더 마르고 더 멋있어요 . 보는 순간 후광이 비쳐서 "팬입니다 ! " 그랬거든요 . 그랬더니 놀라서 봤어요 . ( 제가 ) "북한에서 왔습니다 ! 북한에서 가을동화 11 번 봤어요"라고 그랬어요 .
[ 김지선 / 개그우먼 ] 그랬더니 뭐래요 ? 감사합니다 ?
[ 김가영 / 탈북민 ] ( 송승헌 배우가 ) 북한 분 처음 봤다 , 자기 팬이 세계 각국에 있지만 북한에 팬이 있는 건 처음 봤다 ( 그랬어요 ).
[ 기자 ] 또 다른 탈북민은 '가을동화' 때문에 탈북을 결심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이 같은 사람들이 많았죠?
[ 김헌식 ] 네, 그렇습니다. 한 탈북민은 인천국제공항에 처음 도착해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살피다가 인솔하던 국가정보원에게 "어디 가면 송승헌 배우를 볼 수 있나요?"라고 물어봤는데 그 이유가 바로 '가을동화'를 너무 감명 깊게 봤기 때문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가을동화'를 감명 깊게 보니까 <천국의 계단>이나 <이브의 모든 것>, <황태자의 첫사랑> 등을 연달아 보게 됐다는 것입니다. 박소연 씨 같은 경우는 "북한에서 남한 드라마를 많이 봤는데 그중에서 가을 동화는 북한 전체 주민들이 다 봤을 정도로 인기였고 특히 주인공 은서를 좋아했다"고 언급했고, 이해연 씨는 "북한에서 가을동화를 안 봤으면 간첩이다"라며 "저희 때도 주인공 은서를 너무 좋아했고 남한에 가면 은서를 만나보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은서는 송혜교 씨에 해당하는데요. 양경순 씨는 "17살 때 무산 시장에서 추석 무렵 남조선 비디오테이프가 몰래 유통되었을 때 테이프 2개를 옥수수 14kg을 주고 빌려봤다"면서 "그 남조선 드라마가 '가을동화'였다"는 겁니다. "네 남녀의 사랑, 이별, 아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에 매혹되었다"며 "송승헌, 송혜교, 원빈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남조선에 가면 저 배우들처럼 비행기도 타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 가운데 언니에게 어느 날 '우리 남조선으로 갈까?' 물었다가 언니가 화들짝 놀라면서 입을 막으려 했다"고 합니다. "언니는 '온 가족이 몰살당하는 꼴 보고 싶어서 그러느냐?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말아라'라고 했는데, 본인은 그 뒤에도 내색은 안 했지만 언젠가는 곧 남조선으로 가리라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지금도 추석날이면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고 말했습니다.
[ 기자 ] 남한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북한 시청자들도 남자 주인공에 매료됐던 것 같은데요. 남한에서는 윤준서 역을 맡았던 송승헌 배우와 한태석 역을 맡은 원빈 배우 사이에서 누가 더 멋있는가 의견이 분분했는데, 북한에서는 어땠을까요?
[ 김헌식 ] 대체로 원빈 씨보다는 송승헌 씨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송승헌(윤준서 역) 씨가 바른 생활하는 청년으로 나오잖아요. 일방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상대방, 특히 여성을 배려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모습이 인기 요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행동도 바르고 말투도 얌전한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원빈 배우 같은 경우는 반대 역할을 했었죠. 삐딱하고, 제멋대로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일방적으로 자기 사랑을 받아달라고 우기고, 또 말을 잘 들어주지도 않은데요. 그렇지만 남한에서는 원빈의 대사가 더 많이 회자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는 원빈을 통해서 대리만족하는 건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데요. 좋게 본다면, 원빈 배우의 역할은 자신의 목표나 계획을 위해서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자기가 목표로 한 사랑하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쟁취하려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송승헌 배우는 자신이 이미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는 지고지순한 사랑이기도 합니다만, 수동적인 면모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한국에서는 나쁜 남자 스타일, 그러니까 약간 못되게 구는 남성이 유행했던 적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원빈 씨가 더 많이 화제가 됐던 것 같습니다.
[ 기자 ] 원빈의 한태석 역이 한국에서 나쁜 남자 열풍의 시초가 됐다 얘기도 들어본 것 같아요.
[ 김헌식 ] 충분히 그럴 만한 연기를 보여줬죠.
[ 기자 ] 그럼 잠시 드라마 '가을동화'의 배경음악 듣고 오겠습니다.
( 가을동화 OST)
[ 기자 ] 네, 다시 드라마 이야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가을동화'는 국내에서 42%의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크게 화제가 됐습니다. 그래서 다수의 리메이크작 다시 말해 재구성 드라마가 다양한 나라에서 만들어졌는데요. 어느 나라에서 이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거죠?
[ 김헌식 ] 태국, 필리핀, 튀르키예(터키), 중국에서 리메이크됐습니다. 중국판은 <일부소심애상니 一不小心 上 >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우연히 당신과 사랑에 빠졌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중국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일일 검색 수가 50만 건에 달하면서 중국 전체 드라마 가운데 2위를 차지했습니다. 중국 신예 여배우인 장카이퉁은 1989년생인데 '가을동화'의 리메이크판인 이 작품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시나닷컴이라는 매체에서는 "보통 드라마 평점이 3.9점에 그치는데 이 리메이크 작은 9.3에 달했다"는 분석까지 내놨고요. 태국 최대 민영방송사인 트루비전TV에서는 2013년에 <포에버 러브, Forever Love> 그러니까 "영원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재창작됐었고 이때 송승헌의 인지도가 태국 전역에 퍼져서 '오빠'라는 애칭은 송승헌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됐습니다. 2014년 첫 태국 공식 인터뷰가 있었는데 80여 개의 현지 언론이 엄청나게 몰려들었고, 일부 팬들은 수십 대의 택시와 오토바이 등을 나눠 타고서 송승헌이 탄 차량을 따라가는 진풍경도 연출됐습니다. 튀르키예에서는 <파람파르차, Paramparça> '산산이 부서진'이라는 이름의 드라마로 재창작됐는데요. 2년 넘게, 한 회당 2시간~2시간 반짜리로 방영됐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에서는 또 <엔드리스 러브, Endless Love> '영원한, 끊임없는 사랑'이라는 뜻으로2010년에 방영됐습니다. 중국에서는 <남색생사연, 色生死 >이라는 작품으로 2019년에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배경을 상하이로 옮겨서 제작했고 배역의 이름도 거의 그대로 썼다고 합니다.
[ 기자 ] 리메이크작마다 '영원한 사랑', '산산이 부서진' 등 제목은 다르지만 대부분 기존 한국 드라마와 내용이 비슷한데요. 튀르키예에서 리메이크된 작품은 좀 많이 다르다고요?
[ 김헌식 ] 네, 그렇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역배우가 자라서 사랑하는 이야기입니다만 튀르키예판에서는 아역배우가 없고 젊은이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소득층에 따라서 이용하는 산부인과가 다르다는 점을 반영에 내용을 바꿨습니다. 드라마 초반 설정에서 평소에 다니던 공공 산부인과가 아니라 비싼 산부인과에 가게 되는 이유가 임산부가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이고요. 또 아이가 바뀌는 과정도 다른 재창작 물이나 한국 원작에서는 어린 준서가 이름표를 건드려서 떨어뜨리면서 두 아이가 바뀌는데, 튀르키예 편에서는 간호사의 온전한 실수로 아이가 바뀝니다. 그리고 튀르키예터 편에서는 남매가 담백한 관계로 별 사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원작과 다른 재창작 작품에서는 남매의 애틋한 사랑의 관계로 전개되고요. 또 사춘기 딸과 엄마의 관계도 좀 냉랭합니다. 이는 모녀 간의 전쟁이 벌어지면 걷잡을 수 없다는 측면을 보여줍니다. 또 아이가 바뀌었다는 걸 아는 계기가 은서가 교통사고를 당한 건데 원작과 대부분 재창작 드라마에서는 하굣길에 교통사고가 나는데, 튀르키예 편에서는 승마장을 뛰어나간 은서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 그리고 혈액형은 물론 유전자가 다르다는 검사 결과까지 나오게 됩니다. 튀르키예에서 제작된 <산산이 부서진>이라는 재창작 드라마는 2014년 굉장히 인기를 끌어서 유럽,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 20개 이상 국가에 수출되는 성적을 거뒀습니다.
[ 기자 ] '가을동화'가 튀르키예로 수출이 됐다가 또 튀르키예 리메이크작이 다시 해외로 수출이 됐다는 얘기네요. 또 궁금해지는 건, 주인공인 윤은서의 친엄마는 돼지국밥집을 운영하며 어렵게 살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요. 돼지국밥은 저렴한 가격대로 든든한 한 끼가 되어주어서 한국 사람들에게 요즘 단어로 '소울푸드' 다시 말해 '서민들의 영혼이 담긴 음식'이라고 할 수 있죠? 다른 나라에서 리메이크하면서 돼지국밥을 차용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데, 그럼 리메이크작들의 돼지국밥은 어떤 거였나요?
[ 김헌식 ] 가을동화에서는 어린 은서(문근영)가 원래 엄마 집에 가게 되고 거기서 돼지국밥을 처음 먹게 되는데요. 문근영 씨가 열연했던 윤은서는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이었는데 친오빠가 먹는 것을 보고 당황하게 됩니다. 돼지국밥은 돼지의 뼈와 살코기를 푹 삶아서 우려낸 국물에 살코기를 썰어서 밥을 말아 먹는 음식이고 원래 부산, 대구, 밀양, 울산, 경상도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 중의 하나인데요. 사실 남한에서도 전국에서 먹는 음식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에서 등장할 리 없겠죠. 다른 나라의 재창작 드라마에서는 현지 서민 식당으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그렇지만 튀르키예 작품에서는 식당이 등장하지 않고, 엄마를 지나치게 가난하게 그리지도 않습니다. 튀르키예 버전은 은서 아빠(신애의 친아빠)와 신애 엄마(은서의 친엄마)가 사랑에 빠지는 불륜 이야기기 때문에 나름 매력적인 여성으로 등장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돼지국밥 같은 서민 시장 아주머니로는 불륜을 그려내기가 좀 맞지 않는 측면이 있었을 겁니다.
[ 기자 ] 각 나라마다 식당을 등장시키지 않기도 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네요. 김헌식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김헌식 ] 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 기자 ]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오늘은 추억의 드라마 '가을동화'의 북한 내 반응과 리메이크작 살펴봤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 드라마의 국내외 영향력 알아보겠습니다.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