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 ] 한국 드라마의 이모저모를 알려드리는 시간,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서울에 있는 문화평론가인 동아방송예술대 김헌식 교수와 함께합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이전 시간까지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드라마의 내용 살펴봤는데요. 넷플릭스 자체제작 콘텐츠로 BH엔터테인먼트와 콘텐츠지음이 공동 제작한 작품입니다. 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드라마의 국내외 영향력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이 작품은 스페인 ‘종이의 집’을 각색해 재창조한 작품이다 보니 원작 먼저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겠죠? 교수님, 원작의 인기는 어느 정도였나요?
[ 김헌식 ] '교수'라고 불리는 한 천재 지략가가 8명의 범죄자를 모아서 스페인 조폐국을 터는 내용인데요. 2020년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 지역의 방송예술상인 '플라타노 상(Premios Platino)'에서 최우수 미니시리즈/TV 시리즈 부분을 수상했습니다. 교수 역을 맡았던 알바로 모르테가 미니시리즈/TV 시리즈 부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또 도쿄역의 우르슬라 코르베로와 나이로비역의 알바 플로레스는 각각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1화 같은 경우는 스페인 지상파에서 방영할 당시 스페인 전역에서 무려 460만 명이 본 것으로 집계됐고요. 너무 인기 있다 보니까 이를 따라 하는 강도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습니다. 강도들은 드라마처럼 한화로 10억에 이르는 금을 훔친 것으로 드러났고 드라마 속 가면, 복장과 똑같은 것을 착용했는데, 이를 보면 스페인 원작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 기자 ] 이처럼 한국에서 외국 작품을 각색해 만든 드라마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김헌식 ] <하얀 거탑>이나 <꽃보다 남자> 같은 경우에는 일본의 소설과 만화를 바탕으로 제작했었고요. 또 드라마 <여왕의 교실>도 마찬가지로 리메이크작이었습니다. 근래에는 <나쁜 형사>라는 작품이 영국의 BBC 드라마 <루터>를 바탕으로 제작됐었죠. 연쇄 살인마보다 더 나쁜 형사와 매혹적인 천재 여성 사이코패스의 공조 수사를 그린 작품이었습니다. 또 2013년 리메이크작인 <그 겨울, 바람이 분다>라는 작품을 통해서 의미 없는 삶을 사는 남자와 갑자기 찾아온 시각장애로 고단한 삶을 사는 여자가 만나는 사랑 이야기도 소개됐습니다. 2020년에는 배우 전도연 주연의 <굿와이프>를 통해서 법정에서 변호사의 활약을 다루기도 했고요. 이 작품 같은 경우에는 대단히 흥행했었는데 원래 미국 드라마<굿와이프(The Good Wife)>의 리메이크작이었고요. 2021년 리메이크작<닥터 포스터>에는 김희애 씨가 출연해서 눈길을 끌었었습니다. <지정 생존자> 같은 경우에는 미국 드라마였는데,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되며 이준혁, 허준호 등이 출연했고 볼 만한 작품으로도 화제를 불러 모았습니다.
[ 기자 ] 그럼 한국판 '종이의 집'의 인기는 어땠는지요?
[ 김헌식 ] 종이의 집 한국판 같은 경우에는 공개 하루 만에 세계 순위 3위에 올랐습니다. 브라질 페루, 베네수엘라 등에서 2위를 차지했고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홍콩 쪽에서는 3위를, 원작 제작국인 스페인에서는 7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다음 주 일주일 만에는 세계 2위를 차지했습니다. 16개 국가에서 정상에 올랐고요. 일본과 파키스탄 등에서는 2위 이탈리아, 콜롬비아에서는 3위에 올랐습니다. 그다음 주에 비영어 시리즈 부문에서 1위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사흘 만에 성적으로 가뿐히 정상을 차지할 만큼 크게 눈길을 끌었고요. 한국을 비롯한 6개국에서 정상에 올랐고, 멕시코 이탈리아 등 총 51개 국가에서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해외 매체들은 호평이었습니다. "강도단의 계획은 야심 차고 반전은 흥미진진하며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한 마디로 중독적"이라며 대부분 호평한 바 있습니다.
[ 기자 ] 대개 원작을 각색하다 보면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곤 하는데요. 한국판 종이의 집은 스페인판 종이의 집과는 어떻게 달랐나요?
[ 김헌식 ] 한국판은 통일을 앞둔 상황이었고 경제 통합을 준비하는 시대 상황을 그렸습니다. 원작은 이런 내용과 거리가 멀었고요. 또 원작에서는 교수와 라켈(위기협상팀장)은 사건 발생 후 카페에 손님으로 처음 만나지만, 한국 리메이크판에서는 교수가 카페를 운영하고 사건 발생 전부터 위기협상팀장인 선우진과 알았습니다. 다만 라켈도 위기협상팀장인 점은 같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원작에서는 살바도르 달리 가면을 썼는데, 한국에서는 하회탈로 변경하면서 한국적인 요소를 잘 살렸고요. 원작에서는 베를린이 형, 교수가 동생이지만 한국 작품에서는 교수가 형, 베를린이 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원작에서는 교수와 베를린이 어머니만 같고 아버지가 다른 이복 형제로 나오지만, 우리나라 한국판에서는 어릴 적에 탈북 중에 헤어진 친형제로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베를린의 부하인 '서울'은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한국판에서는 극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역할로 등장합니다. 또 원작에서는 베를린이 강도단의 세 번째 사망자가 되지만, 한국판에서는 탈출에 무사히 성공해서 살아남습니다. 원작에서는 교수와 위기협상팀장이 재회하는 곳이 동남아시아의 휴양지지만, 한국판에서는 우크라이나 헤르손에서 교수와 위기협상팀장 선우진이 재회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는 점이 다릅니다.
[ 기자 ] 그렇다면 원작에서 그대로 차용한 설정이나 장면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김헌식 ] 일단은 화폐를 훔친다는 설정이 같고요. 화폐를 훔치기 위해서 조폐국에 들어가는 목표도 같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설정뿐만 아니고 인물 설정까지도 원작과 동일한데요. 교수는 종이의 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나오고 뛰어난 전략으로 등장인물들 혹은 경찰팀까지도 쥐락펴락하는 인물로 똑같이 나옵니다. 또 위기 협상 전문가인 경찰 라켈 무리오는 선우진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그대로 등장하고요. 도도하고 냉철한 이미지가 똑같습니다. 그리고 돈 찍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강도들이 경찰의 예상을 역으로 이용한다는 설정, 도쿄를 화자 즉, 설명하는 사람으로 내세워서 상황을 설명한다는 점도 같습니다. 천재적인 지략가와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강도들이 기상천외한 변수에 맞서며 벌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원작과 같습니다. 원작을 안 본 팬에게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까지도 있습니다.
[ 기자 ] 네, 그럼 잠시 드라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의 배경음악 듣고 올까요?
( 종이의 집 : 공동경제구역 OST)
[ 기자 ] 다시 종이의 집 드라마 얘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교수가 혼자 독대하는 장면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요. 사실 이 장면들은 모두 교수 역을 맡은 유지태 배우 혼자 연기해야 했다고 해요. 그래서 감독님이 직접 상대 배우 연기를 해줬다고 하는데요.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촬영 뒷장면 함께 보고 올까요?
[ 김윤진 / 우진 역 ] 감독님이 우진이 대사도 다 해주셨어요 . 감독님 연기력 덕분에 저희 신들이 잘 나온 것 같아요 .
[ 유지태 / 교수 역 ] 메이킹 없나 ? 메이킹 ?
[ 유지태 / 교수 역 ] 알았어 !
[ 김홍선 감독 ] 어쨌든 , 교수 . 다들 힘든 밤 보낸 거 알아요 .
[ 기자 ] 방금 들은 목소리가 상대 배우를 연기하는 감독의 목소리였는데요. 이렇게 감독이 상대 배우의 역할을 대신해 주는 이유는 뭔가요?
[ 김헌식 ] 드라마에서 교수는 뛰어난 전략가이기 때문에 리더로서 진두지휘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로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진두지휘하면서 전화 통화라든지 인터넷을 통해서 대화해야 하다 보니까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혼자 대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죠. 그런데 혼자 연기를 하게 되면 진정성이 떨어지거나 사실적인 연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있어야 하는데요. 그렇다고 그때마다 배우를 불러서 합을 맞출 수는 없으니까, 감독이 그 앞에 말을 건다거나 대사를 읊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유지태 씨가 교수 역을 맡았는데, 촬영 뒷얘기를 통해서 "혼자 연기를 하다 보니까 정작 다른 배우들과 친해지지 못했다"고 해서 웃음을 유발했는데요. 거꾸로 같이 참여해 준 감독하고 더 친해지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배우의 연기가 얼마나 고독한지, 또 그 속에서 명작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 기자 ] 드라마에서는 북한 배경뿐 아니라 북한 사투리, 특작 부대 등 북한을 묘사한 요소가 많았는데 어떤 방식으로 고증한 건가요?
[ 김헌식 ] 요즘에는 영화, 드라마를 찍을 때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 옆에서 지도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예전에는 즉흥적으로 북한 말을 사용했습니다만, 요즘에는 철저하게 고증해 따르는데요. 특히 베를린 역할을 했던 박해수 배우 같은 경우는 어미나 조사를 배우는 게 아닌 북한말 선생의 과거사를 들으면서 연기에 녹여냈기 때문에 북한 사투리 연기가 더 자연스러웠다고 합니다. 박해수 배우는 "처음에는 대본을 숙지하면서 수정하고 억양을 따라가기보다는 선생님의 과거사를 계속 들었는데, 영화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연습하니 상황을 이해하게 됐고 몰입하게 됐다", "크게 억양을 주신 것은 아니지만 그 이야기 자체가 도움이 됐다"면서 사투리에 진정성이 더해진 비결을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실제 분단국가 현실과 북한 난민에 대해 이야기만 하면 눈물이 고스란히 나서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 극 중에 부국장 역을 했던 홍인 배우 같은 경우에는 부국장의 나이를 헤아려서 북한에서 중년 이상의 남자이고 또 특정 지위에 있으면 어떤 말투, 목소리, 억양이 있는지 등을 북한말 선생님께 물어봤다고 합니다. 부국장에 어울릴 만한 억양과 말투를 항상 수백 번 반복해서 연습했습니다. 짧은 대사여도 허투루 보이지 않고 싶어서 노력했기 때문에 그들의 북한말이 더 자연스럽고 진정성이 많이 느껴지게 된 게 아니냐고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 기자 ] 특히 북한 이탈 주민을 연기했던 배우 중에 베를린의 북한 사투리가 실제와 유사하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그 뒤에는 실제 일화를 새겨들었던 비하인드 이야기가 있었던 거였네요.
[ 김헌식 ]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은 사실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 경험을 녹여내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억양과 분위기, 단어만 잘 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줘서 앞으로 북한 관련 드라마와 영화를 만들 때 이런 방법들을 좀 더 심화시켜서 쓰면 더 좋은 연기와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 기자 ] 마지막으로 드라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의 전반적인 평가와 관전 요소 말씀해 주시죠.
[ 김헌식 ] 스페인 원작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판 1부와 2부에서 흘러가는 상황을 보면 2부에 진정한 가치가 있거든요. 1부에서 보여지는 원작과 비슷한 점도 2부에서 완전히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페인 원작을 배제하고 본다면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북한 구성원들의 상황들, 인물들의 사연들을 들여다보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미래의 언제인가 남북한 간에 있을 법 한 일이기 때문에 비록 범죄 행각은 나쁘지만 '이 같은 모순된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라는 점을 남북한 주민과 리더들을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드라마적인 재미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 통일 한반도를 위해서 새겨봐야 할 점들을 꼼꼼하게 챙겨보면 더 좋겠습니다.
[ 기자 ] 김헌식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김헌식 ] 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 기자 ]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오늘은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드라마의 국내외 영향력과 뒷이야기 살펴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