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75년역사의 부끄러운 현실을 직시해야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
2020-10-12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김정은 위원장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참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참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당 간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주 당 창건 75주년을 맞이하여 여러분은 남다른 감회를 느꼈으리라 생각됩니다. 한 마디로 말해 지금 여러분 당은 너무나 엄혹한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벌써 20년여 여러분 당이 끈질기게 추진하고 있는 핵·미사일 개발을 기어이 폐기시켜야 한다고 작심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계속되어 북한 경제의 저변이 송두리째 무너졌습니다. 이에 더하여 가뭄과 홍수가 겹쳐 논벼와 강냉이의 이묘작업 자체가 어려워 금년은 예년에 비해 식량생산이 크게 감퇴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국제사회로부터의 식량지원도 여의치 않습니다.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혐오감이 높아져 식량지원 모금이 감퇴하였고 이에 더하여 김정은 자신이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떠든 것 때문에, 9월 말까지 금년도 유엔의 대북식량지원 모금액 1억 700만 달러의 28%정도 밖에 모였을 뿐입니다.

이런 여러분 당이 직면한 현실을 보면서 우리들 외부 관찰자들은 이런 현실을 여러분 당이 창당되던 당시부터 이미 자초한 것이 아닌가, 여러분 당 수뇌부의 이념과 노선이 이런 엄혹한 현실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회에 간략히 여러분 당의 75년사 당사를 회고해봅시다. 1945년 10월 소련군정당국이 북한에 거주하던 공산주의자들 즉 일제 강점기의 가혹한 탄압으로 옥중생활을 경험한 자 또는 자수했던 자, 아니면 해방직후 해외에서 입북한 자 수십 명을 모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조직하고, 이 조직에 원산항으로 입북한지 3주일도 안된 김일성 김책 최용건 등 이른바 항일 빨치산들, 국내기반이 전혀 없는 이들을 편승시켜 북한 땅에 소련위성국 건설에 착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민족이 원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과는 처음부터 어긋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른바 국토완정이란 구호 하에 북한 땅을 전 한반도 공산화를 위한 혁명기지로 만들기 위해 막강한 군사력을 육성하고 6·25남침을 자행토록 했으니 어찌 여러분 당에 대한 우리 민족의 신뢰심이 고양될 수 있었겠습니까? 스탈린의 사망으로 1953s년 7월 휴전협정이 조인되자, 김일성 일당은 전쟁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계와 소련과 중국에서 귀국하여 일선 지휘를 담당했던 간부들에게 패배의 책임을 전가하여 숙청했습니다. 특히 1956년 2월 소련공산당이 제 20차 당 대회를 개최하고 스탈린의 과오를 청산하며 스탈린 격하를 결의하고 핵전쟁이 발발할 경우 미·소 양진영 모두가 궤멸될 것을 염려해서 미·소 평화공존을 새로운 노선으로 채택하자, 그간 여러분 당 내에 쌓였던 김일성 일파에 대한 비판이 일거에 폭발했습니다. 이에 당황한 김일성 일파는 제3차 당 대회와 당대표회의를 개최한 1948년 3월, 제2차 당 대회에서 선출했던 당중앙위원회 위원의 90%이상을 숙청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에 대한 당 집중지도사업을 벌여 적성분자, 반당분자, 감시대상자 등으로 몰아서 북한주민의 3분의 1을 노동교화소, 정치범수용소 또는 감시대상으로 구분하여 일대 인간 대숙청 작업을 전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58년에는 이른바 사회주의를 완성한다는 구호 밑에 악정 중의 악정인 농업집단화를 단행함으로써 1929~1930년대의 소련처럼 농업생산이 급감하고 북한 주민의 먹는 문제가 위험에 처했습니다. 이처럼 북한경제가 나락으로 추락하던 시기에 김일성은 제4차 당 대회를 개최하고 이른바 자립적 민족경제건설을 외치며 국방건설과 경제건설의 병진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중소이데올로기 분쟁에서 중립적 태도, 이른바 자주 노선을 취함으로써 중소 양국의 지원이 급감한 것 때문에 불가피했다고는 하지마는 이런 와중에 4대 군사노선을 감행했으니 북한인민의 경제생활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이때 1960년대는 소련과 동유럽사회주의 국가에서 중앙집권적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모순이 표면화 되어 경제체제의 개혁이 불가피 하다는 주장이 한참일어나던 시기였는데, 여러분 당은 정반대로 물질적 자극을 통한 근로자의 창의력 고취를 반사회주의로 규정하고 이른바 “혁명적 정신력이 경제발전의 동력”이라는 엉뚱한 주장을 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반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상징으로 낙인찍힌 개인우상화, 스탈린우상화 방식을 김일성 우상화에 적용시켰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 당을 노동계급의 혁명적 정당이 아니라, 김일성의 당, 심지어 우리 민족을 김일성 민족 운운하며 주체사상이란 개똥철학을 제창했습니다. 급기야 1970년 제5차 당 대회는 김정일을 후계자로 임명하는 세습권력체제를 채택했습니다. 당시 3대혁명소조에 의해 얼마나 많은 고참 당원들이 반주체사상, 반당분자로 낙인찍혀 숙청되었는지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1980년에 들어서자 여러분 당의 입장은 더욱 난감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왜냐하면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를 제시한 소련공산당의 대변혁과 모택동주의를 청산하고 등소평의 개혁·개방노선으로 이행한 중국공산당과의 치열한 이념대립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국제공산주의운동은 궤멸되고 사회주의 진영이 소리 내며 무너지던 그 시기에 여러분 당은 세기적 변화에 역행하며 스탈린주의 사회주의 옹호와 핵개발로 봉건적 세습정권의 유지를 선언하며 선군정치를 내놓았으니 어떻게 세계가 여러분 당과 협력할 수 있었겠습니까? 엄혹한 현실원인은 여러분 당사 75년에서 확실히 볼 수 있는 반사회주의적, 반인민적, 반인권적 패륜으로 인해 자초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당 간부 여러분!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날 김정은을 비롯한 여러분 당 수뇌부가 추구하고 있는 노선, 핵 건설과 경제건설의 병진은 이미 1960년대 제4차 당 대회에서 김일성이 제시한 노선이고 이 노선은 김정일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변함없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니 자유세계는 물론 여러분 당의 동맹국인 중국과 전략적 협력국인 러시아가 여러분 당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어 고립무원의 딱한 처지에 놓인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하면 이 엄혹한 현실을 극복하며 북한 인민들에게 고깃국에 이밥을 먹이며 개와집(기와집)에서 살 수 있도록 할 것인가? 해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라는 허구를 벗어던지고 인간의 창의력을 발양시킬 수 있는 시장경제원리를 채택하는 것입니다. 핵·미사일 개발이라는 호전적이고 반 평화의 군비건설을 포기하고 자원과 자산을 인민경제발전에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21세기의 현실세계에 들어와 일원이 되도록 봉건적 세습 김씨 왕조체제를 허물고 자유민주주의, 인권, 법에 의한 지배와 같은 인류가 창조한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로 개혁·개방하는 것입니다. 이 길만이 여러분 당이 살 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