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김정일 시대부터 뇌물공화국”

워싱턴-변창섭 pyonc@rfa.org
201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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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구에서 승차권과 짐의 양을 확인하는 여성 승무원. 휴대량을 초과하는 큰 짐을 가진 여성들은 뇌물을 바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승강구에서 승차권과 짐의 양을 확인하는 여성 승무원. 휴대량을 초과하는 큰 짐을 가진 여성들은 뇌물을 바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아시아프레스 제공

기자: 안녕하십니까? 북한의 총체적 문제점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언제부턴가 북한을 부정부패 공화국, 뇌물 공화국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탈북자나, 해외에서 가끔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북한엔 뇌물이 어디에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어느정도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란코프: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뇌물을 주고받는 것은 물밑에서 벌어지는 것이니까, 객관적으로 측량하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20년동안, 즉 고난의행군이 시작했을 때 부터, 북한에서 비리가 급증했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뇌물을 받지 않는 간부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교적 새로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일성 시대에 비리가 없지 않지만, 김정일이나 김정은시대에 비하면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김일성시대에 비리가 거의 없었다고 하셨는데, 왜 그럴까요?

란코프: 김일성시대 북한사회는 무슨 사회였을까요? 누구든지 배급을 타고 살았습니다. 돈은 힘이 거의 없었습니다. 1970년대에 돈이 있다고 해도 살수 있는게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모든 것은 배급이나 공급 대상입니다. 돈이 많아도, 제일백화점에서 외국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전시된 물건을 사지 못했습니다. 공급대상이 아니면, 돈은 쓸모없는 종이일 뿐이었습니다. 당시에 돈을 주고 쉽게 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연필과 같은 문구나 김일성로작을 비롯한 책 뿐입니다. 물론 시장이 조금 있지만, 당시에 시장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은 별로 없습니다. 그 때문에, 김일성시대 북한사람들은 돈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간부는 뇌물을 받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뇌물을 받아도, 쓸 데가 없습니다. 반대로 뇌물을 받은 것이 노출된다면 위험이 너무 많습니다. 당시에 간부들의 입장에서 제일 합리적인 선택이 무엇이었을까요? 일을 열심히 하고, 수령님과 위에 있는 사람들이 시키는 데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만간 보다 더 높은 자리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보다 더 높은 간부가 되면 더 많은 배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농민들이 가끔 먹을수 있었던 돼지고기 요리나 초콜릿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당시에 제일 합리주의적인 것은, 뇌물을 거부하고 법칙대로 하는 것입니다.

기자: 그렇다면 김일성 시대엔 부정부패가 아주 없었나요?

란코프: 물론, 김일성 시대에도 부정부패가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부정부패 현실은 무엇일까요? 주로 개인관계로 이루어진 비리입니다. 예를 들면, 간부들은 “나는 너의 아들이 평양외국어학원을 다닐 수 있도록 한다면, 너는 나의 조카를 외화벌이 일꾼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히 불법적인 행위였습니다. 규칙에 따라서 당연히 평양외국어학원은 능력이 많은 젊은이들만 입학할 수 있었고, 외화벌이 일꾼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능력이 대단한 사람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비리가 아닙니다. 돈을 주고받는 일이 아예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정일 시대에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기자: 비리가 거의 없던 김정일 시대에 들어서 왜 북한이 부정부패 공화국이란 오명을 얻었을까요?

란코프: 김정일시대 부정부패의 확산을 초래한 것은 바로 경제 위기입니다. 1990년대 들어와 극도의 식량난을 동반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뒤 배급과 공급을 중심으로 한 명령식 사회주의 경제가 사실상 마비되었습니다. 북한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시장경제를 재발견했고,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고 생계를 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새로운 상황에서 국가는 힘이 없게 되었습니다. 규칙대로 잘 살고, 명령에 따라서 열심히 일하는 간부라고 해도, 국가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반대로, 돈만 있으면 불가능한 일이 없었습니다. 음식과 소비품 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집까지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김정일시대가 시작한 후 간부들은 사실상 자신의 권력을 잘 팔리는 상품처럼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정만 내리면 인민들이 장사를 할 수 있게 만들수도 있고, 또는 인민들의 생활을 파괴하거나 그들이 굶어죽게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간부들은 당연히 장사를 허락했을 때, 또는 장사에 대해서 눈을 감았을 때, 장사꾼들한테서 돈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이내에 북한사회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뇌물을 받지 않는 간부, 보안원, 보위원들을 상상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김정일 시대 들어와 장마당의 성장 때문에 돈의 힘이 많아지고, 명령식 사회주의 경제의 마비 때문에 뇌물을 줄 수 있는 개인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결국, 3-5년 이내에 비리가 거의 없었던 김일성시대의 북한은 뇌물공화국이 되어 버렸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고난의 행군 시대이후 북한에서 장마당이 성행하면서 부정부패가 늘기시작했다는 뜻인데요. 이런 부정부패가 북한에 매우 나쁜 현상일까요?

란코프: 역설적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일시대 간부들이 뇌물을 받지 않고, 규칙과 법칙대로 행동했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을 것입니다. 고난의 행군 아사자들의 숫자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50만명에서 100만 명 정도로 생각됩니다. 제가 보니까 북한 간부들이 뇌물을 받지 않고, 백성들의 법칙대로 살도록 했더라면 300-400만명의 아사자가 생겼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먼저 당시에 북한정권의 주장은 무엇일까요? “배급이 곧 있을 것이다. 장사를 하지 말아라. 조금만 견뎌라” 간부들은 이 주장에 따라 장사를 진짜로 금지했다면 인민들은 먹을것을 어떻게 얻었을까요? 결국 수백만명이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장마당을 중심으로 하는 시장경제가 2000년 이후에 북한경제의 회복을 도와주었습니다. 간부들은 장사꾼들의 뇌물을 절대로 받지 않고, 그들의 장사를 단속했더라면 아마 고난의 행군은 지금까지 지속했을 지 모릅니다. 이것은 부정부패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합리주의적인 법칙이 많은 나라에서, 비리는 나라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문제점이 많은 나라에서 비리는 나라와 인민들을 도와주는 세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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