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행복한 인생: 아버지를 위한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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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기획 ‘아름다운 세상, 행복한 인생’ 이 시간에는 6. 25전쟁 때 어린 나이의 학도병으로 참전한 아버지와 동료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당시의 기록들을 모아 사비로 기념관을 운영하고 있는 치과의사 이규원씨의 얘기를 전해드립니다.

지난 25일은 6.25전쟁이 일어난 지 56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지 반세기가 지나면서 전쟁을 겪은 세대도 점차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특히 당시 어린 나이의 몸으로 전쟁터에 나섰던 소년병들, 학도병들에 대한 기억은 더욱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지워져가고 있습니다. 인천에서 치과병원을 운영하는 이규원씨는 6.25전쟁이 일어나자 어린 나이에 전쟁터로 나섰던 아버지의 뜻을 기리기 위해 10년 넘게 당시학도병들의 기록을 모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규원 씨는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통화에서) 16살의 어린나이, 법적으로도 징집대상이 될 수도 없는 나이에 전쟁터로 나섰던 아버지, 역사의 질곡 속 그 한가운데 있었던 아버지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이제는 잊혀져가는 그 시대의 아픔을 정리해 가고 있습니다.

이규원 씨 : 저의 아버님을 제가 생각할 때.. 국가 위난이 됐을 때 개인의 목숨을 부지하는 것 보다는 국가를 위해서, 이 땅을 위해서 고향을 위해서 뭔가 해야겠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시 않으셨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당시 이규원 씨의 아버지, 올해 72세의 이경종씨는 나이가 어려 징집대상이 아니었음에도 발걸음을 돌리지 않고 탈영병의 군번을 대신 받고 군에 복무했습니다.

이규원 씨 : 부산으로 갔는데 중학교 3학년짜리 모자에다 옷을 입고 군대 가고 싶다고 왔는데 20일 동안 부산까지 걸어가서 입대를 원했는데 인천이 너무 머니까 부산에 아무 연고가 없으니까,, 군대에서 데리고 있는데 탈영병이 있으면 군번이 있잖아요 사람은 있는데 사람이 없는 거잖아요 그 T/O 로 있는거죠 남의 이름으로.

5년 만에 제대해 고향 인천으로 돌아온 아버지에게 남은 것은 제대증 1장과 평생 후유증으로 고생한 허리병, 그리고 중학교 중퇴의 학력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 겨우 국가로부터 참전증 하나를 받게 됐습니다.

이규원 씨: 1995년도에 국가로부터 참전증을 받으셨는데 우시더라구요, 인천에 있는 인천고등학교, 인천상업중학교가 명문이거든요, 거기만 들어가면 나름대로 인천지역사회에서,, 저희 아버님 친구 중에는 교장선생님이라든가 은행지점장이라든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들이 많은데 저희 아버지 중학교 3학년때 군대가서 21살에 제대하는 바람에 중학교 3학년 중퇴가 돼 버렸어요 그래서 평생을 아버님은 세탁소를 하셨어요. 어떤 때는 제가 굉장히 눈물이 나요, 시대의 아픔이니까.

이규원 씨는 2004년 인천 병원근처 한 건물 3층을 얻어 ‘인천학생 6.25참전관’을 만들고 그동안 아버님처럼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분들 300여명으로부터 받은 사진이나 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아예 병원건물 2층에 ‘인천학도의용대 6.25참전역사관’을 추가로 마련했습니다.

한 달에 운영비만으로도 100만원, 미화로 천달러 이상이 들어가지만 이규원 씨는 아버님과 같이 자신의 인생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했던 이들의 희생을 아무 사심없이 그저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가끔은 이런 일에 무관심한 사회에 대해 섭섭해 하는 아버님을 위로해 드리는 것도 이규원 씨의 몫입니다.

이규원 씨 : 아버님이 가끔 서러움을 말씀 하세요, 이게 소중한 일인데 남들이 관심을 안갖냐고,, 그러면 제가 아버지, 저 얼어있는 호수가를 기러기 3천마리가 지나가는데 지나가면 저 밑에 호숫가에 지나갈 때는 3천마리가 보여도 지나가면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안 남습니다. 우리가 기록한 거에 대해서 또 나중에 아무도 안 봐준다 해도 그러면 나의 운명과 아버지의 운명이 그런 것 뿐이예요 아버지,, 저들이 날아가면서 국립묘지에 묻히게 해달라고, 위대한 사람이라고 기억해 달라고 날아간 것도 아닌데.. 208명은 집에도 못왔는데 ,, 아버님은 살아 오셨잖아요,, 절대 섭섭한 마음 갖지 마세요.

이규원 씨는 그동안 모아놓은 학도병출신 생존자 3백여 분의 녹음자료와 사진들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어느 한 고장에서 꿈 많은 청소년들이 전쟁으로 인해 어떻게 삶이 달라졌는가를 담담히 설명해 보고 싶은 것이 이규원씨의 바램입니다.

이규원 씨 : 옛날 한 지역에 소년들이 이러한 일이 있었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지만 그런 것이 기억을 해주라고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도 내가 한일을 누가 기억해주지 않더라도 이런 기록을 남긴다.

1950년 6월25일부터 53년 7월27일까지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우리는 영화나 소설을 통해 많이 보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에게 그 기억은 현실이라기보다 영화나 소설처럼 느껴질지 모릅니다. 병원에서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남들처럼 여유롭게 즐기고 살 수도 있지만 아버지가 남긴 유산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한 시대를 아프게 살아간 이들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애쓰는 이규원 씨의 모습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우리의 이웃의 모습입니다.

워싱턴-이장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