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김정은이 신년사를 중단한 이유

서울-오중석 xallsl@rfa.org
2025.01.10
[오중석의 북한생각] 김정은이 신년사를 중단한 이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노동당 중앙위위원회 제8기 제11차 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이 올해로 6년째 신년사를 생략하고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강령적 결론 보고로 신년사를 대체했습니다. 집권 첫 해인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조선중앙텔레비전을 통해 직접 신년사를 발표해온 김정은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2020년부터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고 당전원회의 결정서를 통해 새해의 국가운영 방향과 각 부문별 과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지난 10여 년의 통치기간 동안 인민에게 뚜렷이 제시할 만한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주민 생계 안정과 국가 경제 발전이라는 목표달성에 실패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신년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신년사는 세습독재 체제에서 주민에 대한 통치수단으로 작용해왔습니다. 최고 지도자가 신년사를 발표하는 1 1일 아침에는 북한의 모든 주민은 의무적으로 청취해야 합니다. 신년사가 발표되면 각 시··단체, 공장·기업소 별로 신년사 관철 결의 모임과 궐기대회를 한 달이 넘게 진행합니다. 신년사 전문을 암기해서 각 조직별로 신년사 학습경연대회를 벌이는 등 1월 한 달 내내 신년사를 소재로 말 잔치를 벌이는 것입니다. 신년사 내용은 해마다 비슷합니다. 부문별로 새해 추진 과업을 제시하고 대남메시지, 대외정책 등의 순으로 언급됩니다.

 

지난 1946 11일 김일성이 새해 각 부문별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전국 인민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한 게 북한 신년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신년사를 통해 전년도 실적을 평가하고 새해 국가 방향과 계획 및 과업을 국민에게 제시해 왔습니다. 신격화 되고 있는 최고지도자가 발표하는 신년사의 특성상 주민과 학생, 군인들은 신년사에서 제시한 방향이 옳건 그르건 그대로 관철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 집권시기에는 육성 신년사를 하지 않고 매년 11일 노동신문과 조선인민군 기관지, 청년전위 등 3개신문의 신년공동사설형식으로 신년사를 발표했습니다. 신년사와 마찬가지로 신년공동사설의 위력도 대단해서 모든 주민, 학생, 군인들은 학교와 주민학습회, 군부대 정신교육을 통해 신년공동사설을 집중적으로 학습하고 실행 방향을 토론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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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 1, 집권 2년차를 맞은 김정은은 사전에 녹화된 30분 가량의 육성 신년사를 발표함으로써 19년만에 신년사를 부활시켰습니다. 2013년 신년사를 통해 김정은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이행을 촉구하는 등 남한에 유화적인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4년과 2015, 2018년 신년사에서는 남한에 대한 비방을 늘어놓으면서 동시에 남북대화의 필요성은 인정하는 듯한 내용을 포함시켜 대남정책에 관한 북한의 강온 양면 행보를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2018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핵무력 완성을 주장하며 이례적으로 남북관계에 많은 비중을 할애했는데 남북화해 제스처를 통해 평화를 추구하는 책임있는 핵강국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남북 간 군사적 긴장해소 및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놓았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한국이 주최하게 된 평창 동계올림픽과 북한의 정권창건 70주년을 결합시켜, 교착된 남북관계의 국면전환을 시도한 것입니다. 평창올림픽을 활용한 일종의 평화 마케팅을 통해 남북관계를 대화모드로 전환해 남한과 국제사회의 경제적 지원을 끌어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2020년부터 신년사 발표를 중단하고 2019년말에 개최된 당전원회의 결과보고로 신년사를 대신한 데 대해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통치실적으로 내세울만한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김정은은 매년 신년사를 통해 핵무력 강화와 경제발전을 이뤄내 북한 인민들의 오랜 소망인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살게 해주겠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매번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최고지도자의 새로운 지도능력으로 생활이 나아지기를 고대하던 북한주민의 실망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거듭된 실망은 최고지도자에 대한 원망으로 되돌아갔고 결국 김정은이 신년사 자체를 포기하게 만든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2019년에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로 김정은이 적극 추진한 비핵화 합의나 남북관계 개선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해입니다. 비핵화 합의로 대북제재 해제와 경제지원을 기대했던 김정은으로서는 인민들에게 제시할 성과가 전무한 상태에서 2020년 신년사를 하는 건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당전원회의 결정문으로 신년사를 가름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김정은이 신년사 발표를 중단하면서 미국과 남한에 대한 비방과 위협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외부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자신의 집권 10여 년 동안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해 민심이반 현상이 뚜렷해지자 미국, 한국을 비롯한 자유세계에 대한 대립구도를 더 강화하고 한반도 핵전쟁위협을 부각시키면서 북한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려 한다고 지적합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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