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이산가족 1세대의 한 맺힌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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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분단 된지 79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부모형제와 정든 고향을 떠나 남한으로 피란 온 실향민 1세대들은 대부분 꿈에도 그리던 북녘의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6.25 한국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몇 달 후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부모곁을 떠나 혈혈단신 월남한 실향민들은 분단의 고착으로 평생 가족을 만날 수 없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령화로 인해 북녘에 계신 부모님과 형제자매의 소식을 모른 채 가슴속에 실향의 한을 품고 생애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실향민 1세대뿐만이 아닙니다. 북녘 고향의 부모형제를 그리며 눈물과 한숨의 나날을 보내는 실향민 부모님을 곁에서 지켜보며 살아온 실향민 2세대에게도 이산의 고통은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한국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현재 남한의 1세대 이산가족 생존자는 총 2만 5천890명으로 모두 80~90세가 넘은 고령입니다. 이 가운데 과거 남북관계가 좋았을 때 수차례 진행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북쪽 가족을 만나본 사람은 전체의 2.51%에 불과합니다. 지난 2022년 한해에만 이산가족 2천 504명이 북한에 남은 가족과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이산과 실향의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올해 2024년 12월 기준으로 추산해보면 1세대 이산가족 생존자는 2만 명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지난 1979년부터 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에 인도적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마련할 것을 줄기차게 제안했고 지난 1985년 8월 15일을 기해 남북이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을 교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같은 해 9월 20일 고향방문단 교환 행사가 성사되어 남북 이산가족 방문단 100명 가운데 65명이 남과 북의 가족, 친척 92명과 상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것도 한 번의 전시성 행사로 끝나고 1986년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되면서 제2차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 행사가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이산가족의 애를 태우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0년 6월 15일에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당국간의 합의가 이루어져 그해 2000년 8월 15일이 되어서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었습니다. 2000년 8월 15일에 열린 1차 이산가족 상봉을 시작으로 2018년 8월에 열린 21차 상봉까지 총 21회의 상봉행사가 실시되었는데 이 기간에 걸쳐 남북한을 통틀어 4천 290가족, 2만 604명이 몽매에도 그리던 가족을 일시적으로나마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남북당국은 이산가족의 화상 상봉행사도 진행했는데 7차례의 화상 상봉으로 557가족이 남북한의 가족, 친척 3천 748명을 영상으로 상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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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의 후원과 호응을 받았던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북한의 변덕과 생트집으로 21차 상봉행사만에 중단되어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사실 북한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응하고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한 것은 당시 심각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서 남한의 경제 지원이 절실했기 때문에 마지못해 남한의 요청에 응한 것입니다. 당시 남한 당국의 요청은 한 번에 수백 명씩 한 달에 10여회 상봉행사를 지속적으로 마련해 상봉을 희망하는 모든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 주자는 것이었는데 북한은 남한의 제안에 난색을 표하면서 한번에 50~60명씩 추석, 설날 등 민속명절을 계기로 형식적이고 보여주기식 상봉행사를 진행하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인도주의에 입각한 이산가족 상봉의 본래 목적 보다는 남한 당국을 달래서 경제지원을 이끌어내는 게 궁극적인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이산가족상봉에 대한 북한의 완강한 거부로 인해 세월이 흘러갔고 1세대 실향민 생존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남북 이산가족상봉행사를 추진하면서 실향민 1세대뿐 아니라 2대, 3대의 직계가족도 이산가족 상봉 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가족과 생이별하는 슬픔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부모로부터 이산의 아픔을 전해들은 2세대, 3세대에도 북한에 있는 일가 친척을 만나볼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산가족 2세대, 3세대들은 자신의 부모나 조부모가 실향민으로 한 많은 삶을 살았다는 기억만 있을 뿐이지 북한에 있는 친척을 만나 보아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전적으로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정치, 군사적 문제이자 체제 위협 요소로 보고 있기 때문에 한국정부의 이산가족 상봉 협상 요구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거듭하면 할수록 남북한의 경제 격차와 북한체제의 모순성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아는 북한은 남한의 이산가족 상봉행사 제안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 문제는 특정 개인의 문제이거나 정치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민족의 동질성 보존의 문제이자 인류 보편적인 인도주의 문제입니다. 북한의 비인도적이고 반 민족적인 태도로 인해 이산가족 1세대들의 아픔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한(恨)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남북분단 79년, 우리 민족의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