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시간입니다. 저는 이 시간 진행을 맡은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MC: 북한에서 '재정성'이라고 하면, 정부의 예산을 책정하며 각 경제분야로 예산을 배분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의 수장이 얼마 전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모양새가 50년 전의 사건과 매우 비슷하다고 합니다. 어찌된 일인지.한국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의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안찬일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MC : 먼저 북한 내각의 고정범 재정상이 숙청되었다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안찬일: 네, 얼마 전 막을 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경제 발전의 장애물'을 거론했습니다. 그러면서 재정상 고정범을 리명국으로 전격 교체했습니다. 북한 사정에 밝은 대북 소식통은 "재정상 교체는 환율, 물가 관리 실태에 대한 질책으로 풀이된다"고 전했습니다. 전 재정상 고정범은 지난 1월을 마지막으로 공개 석상에 등장하지 않고 있는데, 처형설 등 여러 소문이 나돌고 있는 거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김정은 초상휘장을 공개하는 등 김정은 독자 우상화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재정 책임자를 해임해 경제 부진의 책임이 김 위원장에게 돌아가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로도 풀이됩니다. 또 최근 '실패'라는 우리 군의 평가와 다르게 잇따라 '신형 미사일 시험 성공'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옵니다.
MC : 그런데 말이죠, 북한의 재정상은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갖게 되나요?
안찬일: 북한에서 재정상의 권한은 빈껍데기 뿐이고 노동당 중앙위원회 계획재정부가 나라 예산을 좌지우지 합니다. 그런데 근래 몇 년 사이 김정은 총비서가 앞장서 내각을 '경제사령부' 운운하며 재정성의 권한을 좀 보장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비록 취약할지언정 재정상의 권한이 어느 정도 체면상 보장되면서 고정범 재정상이 예산관리에 열정을 바쳐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김정은 총비서의 제멋대로 예산퍼가기에 어느 정도 브레이크를 걸었고 그것이 결국 숙청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죠.
MC : 반세기 전에도 북한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데 무슨 내용인가요?
안찬일: 네, 꼭 반세기 전의 북한의 재정상은 김경련이었습니다. 그 역시 노동당이 제멋대로 예산을 끌어다 개인우상화에 탕진하려는 것을 막아 나섰다가 정치적 희생물이 될 번 했는데, 다행히 김일성의 날개 밑에서 근근히 북한 재정을 주무르다 1982년 김일성이 거의 노동당에서 손을 떼면서 김정일에 의해 숙청의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한 마디로 북한 경제는 김경련이 사라지면서 본격적인 붕괴에 들어갔다고 보시면 됩니다.
MC : 참 대단한 인물이 아닐 수 없는데요. 김경련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안찬일: 네, 북한 최고의 재정통 김경련은 일찍이 1949년에 소련 모스크대학 유학을 다녀온 최고의 금융전문가입니다. 그는 1971년 6월 25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공진태에게 대외경제위원장 자리를 물려주고 재정상으로 조동되었습니다.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최고인민회의 5기 1차 회의에서 내각 재정성이 정무원 재정부로 개편됨에 따라 재정부장에 유임되었습니다. 이어 1977년 12월, 최고인민회의 6기 1차 회의에서 재정부장에 유임되었으며, 이후 대의원 자격으로 예산 보고도 하면서 6기 대의원에 선출되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1980년 1월, 로태석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이 시점부터 정무원 부총리 직함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는 바,. 이 과정에서 재정부장 자리는 윤기정에게 물려주고, 북한에서 밝힌 윤기정의 재정부장 임명 시점은 1979년 12월이니, 이때 정무원 부총리에 임명된 것으로 보입니다.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에 재선,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도 재선되었습니다.
MC: 그 후에는 어떻게 됐나요?
안찬일: 제7기 대의원 재선 직후인 1982년 4월의 최현 장의위원회에서 탈락하는 등 부총리에서 해임된 정황이 보이더니 최고인민회의 7기 1차 회의에서 모든 직무에서 탈락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한 고위 탈북자가 증언한 바에 따르면, 1982년에 김경련이 사석에서 개선문, 주체사상탑, 김일성경기장 등 소위 김일성 우상화를 위한 특수건설에 김정일이 막대한 돈을 쓰는 것을 두고 "이런데 너무 많은 돈을 쓰면 안된다"라고 지극히 상식적인 우려를 표명했다가 반당 발언을 한 것으로 체포되어 온 가족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따라서 숙청 시점은 1982년 2월부터 4월 사이 시점으로 보입니다.
MC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북한 경제는 이상하게 분화되었다는데 당시 어떤 일이 벌어진 건가요?
안찬일: 네, 김정일 시대가 열리며 북한 경제는 인민경제, 제2경제, 노동당 경제, 궁중경제로 분화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인민경제 위주로 가는게 사회주의 경제인데 노동당이 월권하며 내각의 재정권한을 접수하고 거기에 궁중경제라고 또 외화를 중심으로 로열패밀리들이 경제를 주무르는 독단이 추가되니 북한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어 소리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노동당은 말로는 미제국주의를 타도하자면서 미국의 달러를 기본화폐로 하는 경제체제를 구축하려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니 진작 북한 경제를 주도해야 할 내각은 유명무실해지고 특히 재정을 담당하는 재정상 역시 바지저고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MC : 이번 고정범 재정상 숙청 이후 북한의 경제 전망, 어떻게 보십니까?
안찬일: 4-5년 전 평양종합병원 미완공의 책임을 물어 내각 총리를 경질하고 지금의 허수아비 김덕훈을 그 자리에 앉혔는데 북한 경제는 여전히 바닥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내각 총리가 있으나 마나한 존재란 겁니다. 그나마 대바른 고정범 재정상이 올라서 인민경제를 바로잡아 보려 애를 썼는데 다시 김정은이 그를 잘라버리고 리명국을 임명했지만 리명국은 맹탕입니다. 그 역시 노동당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바로 잘리지 않겠습니까?
MC : 안찬일의 주간진단.,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안찬일: 네, 수고하셨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