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회고록의 진실과 날조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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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회고록의 진실과 날조 북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 진단’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최근 김일성회고록이 한국의 한 출판사에서 출판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으며, 김일성회고록은 지난 1999년 7월 노동당 출판사에서 출판된 후 몇 차례 재판을 거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의 진실성이라고 안찬일 박사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안 박사는 과연 북한에서 김일성의 혁명 활동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 아마도 김일성 왕조가 막을 내리고 나서야 밝혀질 김일성 우상화의 절정 김일성 회고록 오늘 우리는 그 진실과 허위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해서 오늘은 ‘김일성회고록의 진실과 날조’란 제목으로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안찬일 박사님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잘 지냈습니다.

질문 1: 먼저 김일성회고록의 출판 목적과 진실 여부부터 살펴보고 이야기를 시작할까요?

안찬일: 네, 김일성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1999년 7월 노동당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는데 그 첫 번째 페이지에 이런 문구가 쓰어 있습니다.

“민족의 운명은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귀중히 여기는 모든 애국력량이 단합과 거족적인 투쟁에 의해서만 구원될 수 있다” 김 일 성

이 말의 내용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김일성 주석 자신만이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귀중히 여기어 혁명의 길에 나섰다는 일종의 자아도취 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김일성의 항일투쟁 그 자체 전부를 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 시절 김일성 말고도 얼마나 훌륭한 애국자들과 독립투사들이 나라를 찾고자 고군분투하였습니까. 그들 모두의 애국을 무시하고 오직 자신만이 나라를 구한 것처럼 선전하는데 바로 김일성회고록의 반민족성과 날조가 농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차차 말씀드리겠지만 김일성회고록 갈피마다에는 개인숭배의 죄악이 넘쳐나고 노동당 선전선동기관이 얼마나 사기행각을 벌이는지 명약관화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질문 2: 그러면 어떤 대목에서 어떤 내용이 날조되었는지 본격적인 검증해 주시지요.

안찬일: 네! 우선 무슨 당을 조직하는 문제가 등장하는데 이 대목은 김일성회고록 제2권 54페이지에 ‘첫 당조직-건설동지사’이런 제목으로 날조되어 있습니다. 1930년대 초반 만주의 정치정세를 간단히 말씀드리면, 사회주의 국가의 정치원칙인 ‘1국 1당주의 원칙’에 의해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이 해체되고 조선공산당원들은 전부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던 그 시절이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도 당시 1930년 5월 중국 공산당에 막 입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김일성은 카륜회의 직후인 1930년 7월 3일 새형의 당조직을 만들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 산하에서 목소리 한 번 크게 못 내고 말단 당원으로 생존하던 김일성이 당을 창건했다니 이 어인 말입니까?

질문 3: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이 하나의 당을 창건한 사실은, 해방 직후 그것도 서울 중앙당의 허가 하에 평양에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을 창설했는데, 10년도 훨씬 전에 당을 창건했다니 이상한데요.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지요.

안찬일: 네 김일성회고록 제2권 63페이지에 보면, 김일성이 1930년 7월 3일 카륜의 진명학교의 어느 한 교실에서 차광수, 김 혁, 최창걸, 계영춘, 김원우, 최효일 동무들이 모여 첫 당조직을 무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당시 회의에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김리갑, 김형권, 박근원, 리제우 등도 첫 당조직 성원으로 되었으며, 조선혁명군 대장으로 내정되어 있던 이종락과 박차석도 창당 멤버로 동의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관인 것은 당의 강력과 규약을 별도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며, 더욱 가관인 것은 당 명칭을 별도로 내오지 않고 그냥 <건설동지사>로 명명하였다는 것입니다.

질문 4: 문제는 해방 후 그토록 북한 지역에 공산당을 만들고 싶어했던 김일성 주석이 왜 이런 창당 사실을 숨기며 서울의 조선공산당 총수 박헌영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평양에 당을 만들게 해 달라고 빌었느냐는 것인데, 그 내막도 설명해 주시지요.

안찬일: 그 대목이 중요합니다. 당시 김일성은 이미 중국 공산당 당원이었습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원칙에 따르면 절대 하나의 나라에는 하나의 당밖에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김일성회고록은 김일성이 10여 명의 청년들을 모아놓고 당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래서 김일성 회고록은 날조라는 것입니다. 물론 당을 만들고 싶은 욕망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조선공산당이 1925년 창당되어 1928년까지 3년동안 존재하는 사이 끝없는 종파투쟁과 내분으로 갈갈이 찢어져 국제공산당으로부터 제명되었기에 더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나이 경우 18살인 김일성이 당을 조직했다는 것은 앙천대소, 즉 삶은 소대가리가 웃다 꾸레미 터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질문 5: 그렇군요. 그러면 또 다른 대목은 어떤 날조로 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검증해 볼까요?

안찬일: 김일성회고록 제2권 2편에서는 일명 조선인민혁명군 즉 항일유격대 창설 부분이 나오는데 이 대목도 당 창설 못지않게 중요한 날조 분야입니다. 김일성 주석은 이 대목에서 마치 자신이 독자적인 혁명무력을 창설한 것처럼 주장하지만 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김일성이 말하는 1932년 4월 25일 항일유격대 창설은 당시 중국공산당의 방침에 따라 비폭력 항일전을 폭력 항일전으로 전환하는 방침에 따라 만주 지방 도처에서 산발적인 무장조직의 출현 중 하나였지 전혀 독자적인 무장부대 조직이 아니었습니다. 앞서 지적한 대로 김일성은 이미 1930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중국 공산당원으로서 중국혁명에 참여하고 있었고, 그래서 무장부대 조직도 약 30여 명의 청년들을 모아놓고 항일유격대를 결성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당시 총이 없어 총을 든 청년보다 총을 들지 못한 청년이 더 많은 무장부대로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자체를 평가절하할 생각은 전혀 없고 다만 왜 그렇게 역사를 날조해야만 하는지 처량함 마저 느끼고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은 언젠가 다시 써야 할 텐데 애석하게도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참 안타깝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진실은 속일 수 없는 법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안찬일: 네 감사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MUSIC

지금까지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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