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마이 라이프 – 특별한 졸업식 (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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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한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의 졸업식 모습.
사진은 한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의 졸업식 모습.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벌써 2월의 마지막 주가 됐네요. 2020년 2월은 코로나 19, 신형코로나비루스의 유행으로 취소, 연기, 생략 그리고 간소화, 최소화라는 단어가 많이 들려옵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선 필수 표현이 됐습니다.

서울 시내 학교는 3월 첫 주 예정됐던 개학이 일주일 연기됐고요. 지난 2월에 열린 졸업식도 작게 치뤄졌습니다.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 남북사랑학교의 졸업식도 마찬가지였는데요. 행사는 축소 됐어도 그 의미까지 작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여기는 서울>에서 졸업식 현장, 전해드립니다.

인서트1: (현장음) 주형아~ 그거 벗고 갈아입고 바로 이쪽으로 와. 시간이 없거든. / 핸드폰, 중요한 것만 챙기고 짐은 여기다 놔 얘들아. 그리고 이따가 졸업식 마치고 여기에 다시 와서~

2시부터 시작되는 남북사랑학교의 졸업식을 앞두고 모두들 분주합니다.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학교에 도착한 졸업생들은 선생님들이 건네주는 검정색 학사모와 졸업 가운을 건네 받는데요. 이제야 졸업을 한다는 게 실감난다는 표정입니다.

도착한 순서대로 옷을 갈아 입은 졸업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의 모습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고 서로의 사진을 확인하며 싱글벙글 웃음꽃이 핍니다. 이제 슬슬 행사장으로 가자는 선생님의 말에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고 차례대로 아래층에 있는 졸업식장으로 향하는데요.

인서트2: (현장음) 어머, 송철아!! 누구세요.. 어머! 그거 쓰니까 삼촌 같애. / 축하해! / 감사합니다!~

졸업식을 준비한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이 제일 먼저 졸업생들을 맞아줍니다. 감탄과 축하의 말이 오가고 졸업식 장엔 학생들을 후원했던 후원자들, 지인들 그리고 후배들까지 속속 도착합니다.

인서트3: (현장음) 안녕하세요. / 하나, 둘, 셋 마이크 테스트입니다. / 어머! 안녕하세요~ 홍매 어머니. 왔어. 얘들아~ 여기 앉아..

졸업식 예정 시간까지 아직 20분 가량 남았는데요. 졸업생 중 한 명을 만나봤습니다.

인서트4: (강송철)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남북사랑학교 3회로 졸업하게 된 강송철 입니다. / (리포터) 어떻게 이 학교와 인연을 맺게 됐어요? / (강송철) 제가 구출을 받았거든요. 어머니가 탈북했을 때 한국교회의 후원으로 (중국에서) 한국까지 들어오게 됐거든요. 한국교회가 저의 후원금을 마련해 보내줘서 제가 고맙게도 한국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참고로 제 동생까지도 다 교회에서 해주셨습니다. 그런 놀라운 역사 속에서 저희 가족이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탈북민들의 한국 입국과 정착을 돕는 여러 단체들이 있는데요. 북한인권단체는 물론 종교단체들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남북사랑학교는 개신교 교회에서 후원하는 학교이고 탈북 청년과 탈북민 자녀들의 정규교육지원을 통해 대학진학을 돕습니다.

강송철 군도 졸업을 하며 대학에 진학하게 되는데요. 비슷한 또래 친구들보다 빨리 남한의 정규학습과정을 마쳤습니다.

인서트5: (강송철) 아버님이 법무국에서 일하셨고 어머님이 세관 무역을 하셨기 때문에 제일 잘 사는 집은 아니었지만 잘 사는 부류에 들어가는 집 정도는 살았습니다. 소학교때부터 영어과외를 받아왔고 중학교 올라가서는 수업이 끝나면 영어 과외, 수학 과외, 아코디언 과외까지.. 그래서 하루에 잠자는 시간 3~4시간을 빼놓고는 하루 종일 공부를 하는, 나중에는 중국어 과외까지 받았습니다.

이렇게 여유 있던 송철 씨의 삶이 한순간 바뀐 계기는 뭘까요?

인서트6: (강송철) 김정일이가 2012년 12월 17일에 죽었어요. 매해마다 한달 동안은 애도 기간이라고 해서 그 동안은 게임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고 장사도 못하게 법적으로 되어 있는데 저희 어머니께서 밀수를 했어요. 대담하게 하다 걸려 가지고 집안의 모든 것을 다 몰수당하시고 빠져나올 길이 없어서 저희 집이 망하게 됐죠.

결국 2013년 집안이 망하고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까지.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 먹고 살아야겠기에 중국으로 갔고 고향에 남아있던 송철 씨의 삶은 힘겨웠습니다. 그러던 중 송철 씨의 어머니는 2016년, 중국에서 체포돼 강제 북송됩니다.

인서트7: (강송철) 어머니로 인해서 제 앞길이 막히게 되었고 고향 사람들이.. 저희를 바라보는 눈들도 약간 나쁜 눈들도 있고 해서…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대담하게 탈북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2017년 5월에 탈북했고 제가 2017년 6월에 탈북했고 제 동생이 2018년 6월에 탈북했습니다. 지금은 저희 삼촌까지 탈북해서 하나원 생활을 마감하고 6월 말일에 나오기로 되어있습니다.

가족 모두가 함께 지내게 되면서 송철 씨는 심리적으로 안정됐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정착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는데요. 5년간의 학업 중단 후 한국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두려웠고 탈북민을 위한 대안 학교로 진학하긴 했지만 가는 날보다 빠지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이 학교 저 학교로 옮겨 다니다가 지난 해 남북사랑학교까지 온 송철 씨는 다행히 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선생님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라는데요. 졸업 가운을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쓱 보더니 선생님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답니다.

인서트8: (강송철) 그동안 선생님들 너무 감사했고요. 지식수준이나 모든 문화 차이 쪽으로 선생님들한테 많이 속태웠던 저이지만 선생님들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학교에 안 나오면 항상 먼저 연락주시고 또 대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제가 발버둥칠 때 선생님들께서 먼저 열정껏! 저희가 대학에 가는 것인지 선생님들이 대학에 가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열정과 노력을 기울여준 선생님들께 너무나도 감사하고요. 선생님들로부터 받은 그 사랑, 다시 흘려 보낼 수 있는 저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새 졸업식 시작 시간입니다.

인서트9-1: (현장음) 축하 연주

졸업식장 제일 앞 줄에서 긴 시간 함께 하고 있는 졸업생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새로운 출발에 대한 설렘, 정든 학교를 떠나야 하는 아쉬움… 아닐까 싶은데요. 지금 이순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본인들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고 축하했는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서트9-2: (축하 인터뷰) 졸업하는 학생들 축하드리고요. 졸업 이후에 정말 당당하게 이 사회 속에서 성장하기 바랍니다. / 졸업 축하합니다. / 너무너무 축하하고 고생 많았고 우리 학교의 자랑이고 너무 예쁩니다. 축하해요~ / 얘들아! 선생님하고 함께 했던 시간들 잊지 말고 그 힘으로 앞으로의 삶을 잘 살아낼 수 있기를 바랄게. 응원하고 축하한다. / 이번에 졸업하는 12명의 졸업생들, 이름을 나열하고 싶지만 마음으로 이름을 새기면서 이번 졸업을 너무도 축하드려요. 남북사랑학교에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지만 많은 추억들을 만들었었고 또 공부하는 과정에서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선생님들의 지도를 따라서 잘 와줘서 너무 고맙고요. 졸업 가운이라는 게 어떤 과정이 끝났다는 의미도 되지만 새로운 과정이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좋은 출발이 되어서 너무 기쁘고요, 사회에 가서 대학에 가서도 언제나 여러분을 위해서 마음으로 후원하는 여러분들이 계시다는 거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정말 졸업을 축하드려요.

-Closing-

작고 조촐하게 준비된 졸업식이지만 축하객들로 빈 자리가 없을 지경입니다. 졸업식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재학생의 송사와 졸업생의 답사, 그리고 내빈들의 축사까지! 못다한 남북사랑학교의 졸업식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도 계속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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