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인생과 사고는 예고가 없다
2024.10.28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이해연 : 남한에는 자동차 사고가 난 뒤 가해자가 보험사에 연락해 현 상황을 알려주면 즉시 자동차사고접수번호가 나옵니다. 자동차 사고를 당한 피해자는 사고접수번호만 있으면 어떤 병원에서도 쉽게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치료 비용은 가해자 측에서 부담합니다.
박소연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동차사고접수는 대물과 대인으로 나뉩니다. 대물은 사고로 인한 자동차보상접수, 대인은 말 그대로 사람 즉 사고로 인한 운전자가 다치면 병원 치료를 위한 보상 접수를 말합니다. 저도 이번에 사고를 당하고 가해자 측으로부터 자동차사고접수번호를 전달받았어요. 병원에 도착해 사고접수번호를 알려줬더니 입원 치료를 권유하더라고요. 물론 겉으로 보이는 부상이나 상처는 없지만 렌트겐(엑스레이)검사, CT검사를 통해 머리 혈관 출혈이나 충격으로 인한 다른 부상이 없는지 꼼꼼히 검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검사 결과 다행히 뼈가 부러지거나 머리에 출혈이 없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어요.
이해연 : 대형 혼합 차량(레미콘)과 충돌했는데 이 정도면 너무 다행인 것 같습니다. 지금 선배님이 지금 녹음 시작하고 거의 20분 동안 사고 경위에 대해 계속 말씀하고 계시잖아요. (웃음) 그만큼 큰 사고였다는 얘기죠.
박소연 : 북한말로 죽었다 살아난 셈이에요. 예전에 주변 지인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5년 후에 후유증 때문에 힘들다고 하길래 꾀병 부리는 줄 알고 속으로 욕했거든요. 제가 직접 당해보니 이해가 갑니다. (웃음) 요즘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비롯해 여러 가지 치료를 받는 중인데도 허리가 점점 더 아파요. 처음에는 다행이다, 두 번째는 치료를 받으면 괜찮겠지, 지금은 화가 납니다. 자기가 당해봐야 이해가 되네요.
이해연 : 그 심정 이해합니다. 사실 저는 앞차와 정상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뒤차가 차 사이 거리를 지키지 않아 생긴 사고잖아요. 물론 사고를 낸 측에서 차량 수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전부 부담했지만 후에 차를 팔려면 차 수리 기록 때문에 가격이 낮아집니다.
박소연 : 맞아요. 남한은 차 수리를 비롯한 기록들이 문서화가 참 잘되어 있어요. 사실 겉에 보이는 상처는 약을 바르고 치료를 하면 회복되지만, 마음이 아픈 상처를 자신만이 아는 거니까… 특히 자동차 사고를 겪으면서 나만 운전을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방어 운전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해연 : 다들 한번 사고를 당하면 두려움 때문에 운전을 다시 하기까지 힘들더라고요.
박소연 : 제가 아는 한국 지인은 40세인데 운전을 전혀 하지 않아요. 왜 운전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20대에 큰 자동차 사고를 당했는데 아직도 그날의 공포 때문에 운전을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겁이 많고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당하고 나니 마주 오는 모든 차가 다 나를 향해 오는 것 같고, 뒤에 오는 차는 나를 다 들이받으려고 도로에 나온 것 같은 그런 착각이 듭니다. (웃음) 사고 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해연 : 저도 그랬어요. 사고 보상을 받았지만 뭔가 억울해요. 상대편 보험사에 전화가 왔길래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차를 수리하면 기록이 남아 제 가격이 팔 수 없는데 이거에 대한 보상은 없냐’고 따졌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전문가 용어를 쓰면서 한참을 설명했는데 결과적으로 시세 하락 손해가 있지만 그 기준에 저는 해당이 안 된다고요. 결국에 돌아온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박소연 : 그래도 큰소리로 따지기라도 하면 화가 좀 풀릴 것 같은데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가 없네요. 해연 씨는 이제 사고 보상은 다 받으셨나요?
이해연 : 네, 저는 보상을 받은 상태입니다. 사고가 나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잖아요. 치료를 어느 정도 받았다고 생각될 무렵에 피해자 측과 합의하게 됩니다. 저는 사고가 난 후 1주 정도 입원하고 1주 정도 통원 치료를 받았어요. 이 정도면 치료를 마무리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시기에 상대측 보험사로부터 합의를 하자는 전화가 왔어요. 저는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상 합의 과정에 대해 미리 파악하고 있어서 적절한 합의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박소연 : 역시 해연 씨는 준비성 하나는 알아줘야 합니다. 저도 상대측에서 제시한 합의 금액에 제가 동의하면 마무리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합의 과정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해연 : 비슷합니다. 먼저 상대측 보험사가 전화를 걸어 괜찮냐는 안부와 함께 치료를 더 받아야 하는지 확인합니다. 처음에는 몸이 아프니까 좀 더 치료를 더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하고 가볍게 전화를 끊었어요. 두 번째 전화가 왔을 때 보험사는 혹시 합의를 생각해 보신 거 있냐고 다시 물어봅니다. 지금도 아프지만 일도 해야 하고 바쁘기 때문에 합의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어요. 보험사는 저에게 생각하신 합의 금액이 있냐고 묻길래 제 기준에 받을 수 있는 합의 금액보다 조금 높게 요구했습니다. 그래야 적절한 합의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요. 결과적으로 저는 합의금으로 약 2천 달러 정도를 받았습니다.
박소연 : 오늘 이 방송을 하지 않았다면 큰일이 날 뻔했네요. 해연 씨가 어떻게 보면 교통사고 선배입니다. (웃음) 저도 얼마 전에 보험사가 전화로 몸은 괜찮냐고 하길래 레미콘으로 들이받았는데 괜찮겠냐고 화를 냈어요. 그분이 자기가 사고를 낸 것처럼 죄송하다고 사죄하더라고요. 얼마 지나 보험사 측에서 한 달 동안 치료가 끝난 후 재활 치료가 필요할 경우, 보름 동안의 진단서를 떼서 보내 달라고 문자 메시지를 남겠어요. 진단서를 떼서 전송하고 지금은 통원 치료를 받고 있는데 비용이 꽤 나올 것 같습니다. 아마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전화가 올 텐데 이번에는 소리를 치지 않으려고요.(웃음)
이해연 : 화가 나신다면서요?
박소연 : 남한은 모든 것이 규정이 있는 사회잖아요. 북한처럼 목소리 크다고 이기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고통을 돈으로 받는다면 저는 합의 금액으로 1만 달러는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웃음)
이해연 : 논리적으로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지금 상태를 제대로 전하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이번 사고를 통해 많이 배우긴 했어요. 특히 운전은 서로 배려하는 운전을 할 때 사고가 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했습니다.
박소연 : 제가 7년을 운전하면서 항상 운전할 때는 다급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사고가 나지 않은 원인이 급하게 운전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사고를 당하면서 느꼈죠. 운전은 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구나, 사고라는 것은 예고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이해연 : 공감해요. 사고는 예상할 수 없는 순간에 갑자기 찾아옵니다. 이번에 새롭게 배운 것은 사고를 미리 예방하는 방법입니다. 뒤에 오는 차가 너무 가까이 오면 브레이크 등을 자주 켜주면서 앞 도로 상황을 뒤차에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피해를 본 부분도 있지만 배움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남한에는 어려움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는 말이 있어요. 사고는 항상 소리 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미리 대비해야 하고 우리가 사는 인생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항상 대비하면서 살아가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번 사고를 통해 남한에는 왜 이렇게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나는지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특히 고속도로에는 언제나 차가 꽉 차 있거든요. 그 광경을 보면서 도대체 남한에는 차가 몇 대가 있을지 궁금해졌어요. 혹시 해연 씨는 알고 계세요?
[클로징] 여러분은 혹시 남한 인구가 5천만 명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현재 남한의 자동차 수는 버스, 화물차, 승용차까지 포함해 2,600만 대입니다. 인구 두 명당 한 명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는 건데 운전할 수 없는 연령을 제외하면 그보다 더 많다는 얘기죠. 차가 이렇게 많다 보니 자동차 사고도 자연스레 많습니다. 1973년 남한에서 일어 난 자동차 교통사고는 4만 3천 건으로 사망자 수는 2천여 명, 지난 2022년 자동차 사고는 19만 건으로 증가했지만 사망자 수는 3천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사고는 5배 정도 늘었지만 사망자 수는 줄었는데요. 그 이유는 뭘까요? 다음 시간에 나머지 얘기, 이어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