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북한의 교통사고는 팔자소관?
2024.11.04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이해연 : 자동차 숫자로만 따져보면 남한은 평균적으로 한 가구당 차 한 대는 무조건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박소연 : 저희도 식구가 두 명인데, 차가 두 대입니다. 남한의 인구는 5천만 명으로, 버스 자동차 다 합쳐서 이동 수단이 2,600만 대라고 합니다. 정착 초기에 드라마를 보는데 ‘아니 땅을 파도 휘발유가 1g도 안 나오는 나라에 무슨 차가 이렇게 많아'라는 대사를 듣고 놀랐어요. 처음에는 이렇게 차가 많은데 땅을 파면 당연히 휘발유가 나온다고 생각했거든요. 정착한 기간이 늘어나면서 휘발유를 전부 수입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남한은 차가 많아서 예상치 못한 사고들이 자주 나는 것 같습니다.
이해연 : 자동차 사고 소식이 뉴스로도 많이 나오고 직접 자동차 사고를 당했잖아요. 그래서 1년에 사고가 얼마나 발생하나 최근 통계를 찾아봤더니, 19만 건 정도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많지 않죠?
박소연 : 그렇죠. 자동차 숫자에 비하면요. 남한에는 1973년부터 교통사고 통계가 나와 있어요. 그 해 1년 동안의 교통사고가 4만 3천 건인데 가장 최근인 2022년에는 19만 건이고 사망자 수는 1973년에 2천 명, 50년 세월이 흐른 2022년에는 사망자 수가 3천 명입니다. 교통사고는 증가했지만 사망자 수는 생각보다 높지 않습니다. 그만큼 차 사고로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이나 교육이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얘기죠.
이해연 : 사망자 숫자가 늘지 않은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안전띠를 운전자뿐만 아니라 조수석과 뒷좌석까지 다 착용하도록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고 발생 시 응급 대처도 예전보다 빨라졌고 고속도로 중간에 졸음 쉼터 등이 생기면서 자동차 사고를 많이 줄일 수 있었어요.
박소연 : 지금은 안전띠를 착용 안 해서 사망했다는 뉴스들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요.
이해연 : 맞아요. 북한 차에는 안전띠를 잘라서 흔적만 남은 경우가 많지만 남한은 법적으로 안전띠를 안 하면 벌금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습관이 돼서 안전띠를 착용 안 하면 불안해져요. 그리고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고 운전하려고 해도 자동차 내부의 자동 시스템이 감지하고 시끄러운 경보음을 계속 울려요. 지금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안전띠를 착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활 문화가 된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그리고 아까 해연 씨가 졸음쉼터 얘기하셨는데요. 남한은 고속도로에 휴게소도 많고 중간, 중간에 졸음쉼터가 잘 마련돼 있어요. 졸음쉼터는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한 사람들이 잠시 눈 붙이고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말하는데요, 고속도를 달리다 보면 몇 km 가면 졸음쉼터가 있다는 안내 간판들을 종종 볼 수 있어요. 화장실, 지어 운동 기구까지 준비돼 있죠. 그걸 보면서 남한은 정말 사고를 줄일 수 있는 시설들이 잘 마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해연 : 고속도로에서 사고 중 많은 비율이 졸음운전이라고 해요. 그래서 중간마다 휴게소도 있지만 이런 쉼터도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박소연 : 특히 사망자가 많은 음주 운전에 대한 단속은 도로 곳곳에서 예고 없이 불시에 진행돼요. 경찰들이 음주측정기를 통해 음주 운전자를 적발하고 있는데 남한은 적발되면 사정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거든요.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법대로 처리하기 때문에 의식하고 조심하며 잘 지키는 거죠. 또 요즘 남한에서는 고령자 운전 교통사고가 큰 화두입니다. 고령자 운전에 대해 사고 예방을 위해 운전할 수 있는 나이를 국가가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과 그런 제한이 나이에 대한 차별이라 인권 침해라는 반대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죠.
이해연 : 남한에는 택시들도 많은데 대부분 고령자로 은퇴하고 택시 운전기사로 일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분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이 제한을 두면 안 된다고 하겠죠. 반면 젊은 세대들은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운전자 연령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박소연 : 그런데 해연 씨, 남한에서 고령자라면 몇 살 정도일까요?
이해연 : 70대 정도를 고령자로 부르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북한에는 환갑이면 인생을 다 산 것으로 생각하고 고령자로 구분하죠. 남한은 70대 중반? 이 정도를 고령자 운전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고령자 운전기사 교통사고 때문에 인명피해가 났다는 뉴스를 보면 솔직히 겁이 납니다. 그렇다고 제 생각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어요. 북한에 살 때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개인의 생각을 마음대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남한에서 살아보니 더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웃음) 왜냐면 상대방의 입장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해연 : 교통사고 얘기를 하면서 갑자기 남한과 북한의 사고 유형이나 원인이 많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남한 같은 경우에는 차가 많아서 추돌사고가 많은 것 같아요.
박소연 : 북한에서는 충돌이라고 하죠.
이해연 : 거의 비슷한 말이긴 한데 조금 다릅니다. 추돌은 뒤에서 받는 것이고, 충돌은 서로 맞부딪히는 거죠. 남한은 추돌사고가 주로 일어나지만, 북한 같은 경우에는 차가 많지 않고 도로 사정이 안 좋아서 일어나는 단독 사고가 잦습니다. 북한은 또 벼랑길이 되게 많아요. 그냥 벼랑으로 미끄러져 전복 사고가 많죠. 이런 면에서 북한은 사고가 나면 대형 사고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더군다나 항상 적재함에 짐도 가득 싣고, 사람을 엄청 많이 태우고 다니잖아요. 거기에 농촌 길은 눈이 내리면 길이 미끄럽고 밤길에 운전하다 피곤해서 졸기라도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게 다반사입니다.
박소연 : 해연 씨 얘기를 들으니까 10년 전하고 똑같네요. 제가 있을 때도 가을에 사고가 제일 자주 났어요. 특히 10월과 11월은 가을걷이 시기라 사람들이 농촌에 배추 실으러 많이 가요. 물론 봄이나 여름, 겨울에도 사고가 나지만 가을이 훨씬 운행이 빈번하기 때문이죠. 해연 씨 그거 아셨어요? 남한에서는 적재함에 사람이 타면 불법이라는 것? 걸리면 벌금을 내야 해요. 북한에는 자동차 적재함이 상급 침대잖아요.
이해연 : 옛날에 북한에는 ‘빈 차 감독원’이라는 게 있었어요. 물론 최근에는 없어졌지만요.
박소연 : 생각나요. 옛날에는 지역마다 ‘빈 차 감독 사업소’가 있어서 혹여 빈 차로 지나가면 단속해 자갈이나 모래를 싣고 가도록 벌칙을 줬어요. 그때는 자동차 적재함에 사람이 아니라 짐을 싣고 다니도록 통제했어요.
이해연 : 국가 휘발유를 헛되이 뿌리면서 다니지 말고 뭐라도 꼭 싣고 운행해야 한다는 거죠.
박소연 : 북한은 사고가 나도 정확한 인명피해에 대해 전혀 공개하지 않아요. 보통은 자동차 전복 사고가 가장 많습니다. 해연 씨가 말한 것처럼 농장길에 들어가면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벽이 없어요. 옛날에는 철판으로 세웠는데 고난의 행군 때 다 뜯어다 중국에다 몰래 팔아서, 나중에는 나무판자로 막았는데 그것도 뽑아서 땔감으로 써서 지금은 아예 없는 거예요. 설사 살아났다고 해도 장애인이 되는 거죠. 북한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건 너무 가혹해서, 사람들은 장애인으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까지 말할 정돕니다.
이해연 : 사고로 죽거나 폐인이 돼도 북한에서는 아무런 보상이 없잖아요. 법으로 정해진 것도 없고요. 운전기사 한 명이 죽은 사람이나 다친 사람들에게 보상해 줄 만한 돈도 없고요. 그렇다고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어요. 차에 탄 내가 잘못인 거죠. 사고가 나도 본인 탓으로 돌리고 팔자려니 하면서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죠.
박소연 : 북한에도 교통법이 있긴 있어요. 차 사고가 났을 경우, 운전기사가 과실에 대해 징역형이란 처벌 조항은 있어도 보상에 관한 조항은 없죠.
이해연 : 사고가 나도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대책이 없어서 더 안타까운 것 같아요. 차가 뒤집히고 사람들이 사망해도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고, 운전자는 겁이 나니까 달아나는 일도 있죠. 북한은 CCTV도 없어서 뺑소니 사고에도 속수무책입니다.
박소연 : 남한에선 뺑소니치면 가중처벌이 돼요. 저는 이번에 사고를 당하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추석을 앞두고 사고가 났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계시는 아버님이 벌을 내렸다는 생각이 들었고, 두 번째로는 12년 동안 남한에 살면서 은행에 저축한 것과 보험 든 돈들이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을 아들한테 알려줘야 하는데 내가 죽은 다음에 우리 아들이 못 받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해연 씨는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이해연 : 저는 뭐… 결국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그리고 운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빨리 당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박소연 : 같은 사고를 당했는데도 생각하는 건 완전 하늘과 땅이네요. 그래도 이렇게 살아서 얼굴 맞대고 방송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도 10월과 11월은 사고 방지 대책 월간이지만 간판만 걸면 뭘 해요. 그에 따른 실질적인 지원이 따라야죠. 청취자 여러분들은 국가가 내 건 구호만 믿지 말고 항상 주변을 살피면서 안전하고 건강한 가을 보내시기를 바라면서 오늘 방송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