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아’와 ‘무’는 뽑아봐야 안다?

서울-박소연 xallsl@rfa.org
2024.09.30
[우리는 10년 차이] ‘아’와 ‘무’는 뽑아봐야 안다? 북한 평양산원에서 546번째로 출생한 세쌍둥이가 지난 7월 19일 퇴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세쌍둥이 부모는 금반지 등 축하 선물을 받고 의료진의 환송을 받으며 퇴원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안녕하세요. 해연 씨, 오늘 제 얼굴이 밝아 보이지 않아요?

 

이해연 :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박소연 : 며칠 전에 아는 동생이 아기를 낳았는데, 이런 천사가 있을까 싶을 만큼 예쁜 아기를 보고 와서 정말 기분이 좋아졌어요.

 

이해연 : 선배님 얼굴이 왜 밝아졌는지 이해가 됩니다. 제 친구도 저처럼 아기를 안 낳으려고 결심했던 사람인데, 최근에 임신했다며 자랑하는 모습이 참 밝아 보였어요.

 

박소연 : 남한에는 여성이 임신하고 아이 낳는 과정이 북한하고 너무 달라요. 그래서 오늘은 남과 북의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일단 북한은 임신하면 자랑하지 않습니다. 제가 임신했을 당시에는 임신이라는 말보다 ‘아이를 설었다(아기를 가졌다는 북한 사투리)’고 했어요.

 

이해연 : 북한 임산부들은 체계적인 검사를 받지 않고 아기를 낳는 일들이 많아요. 몸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을 찾는 여성들도 있지만, 대부분 집에서 환자를 보는 의사를 찾아가 임신인지 아닌지를 진단받습니다. 특별한 기구가 없이 그냥 손으로 배를 만져보고 임신유무를 알려주기 때문에 정확한지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고요.

 

박소연 : 맞아요. 생리가 없으면 동네에 사는 ‘동의사(한의사)’를 찾아갑니다. 의사가 손맥을 짚어보고 임신 맥이 뛴다고 말해주면 임신이라는 걸 알게 되죠. 거기다 북한은 개인 비밀이 지켜지지 않는 곳입니다. 동 진료소의 산부인과를 찾아가면 문 앞에 전부 동네 아줌마들이 쭉 앉아 있어서 진료 보기도 힘들어요. 큰 산원에 가면 진료 받으러 온 여성들은 옷차림을 보고 ‘아직 시집도 안 간 처녀가 건전치 못하게 산부인과에 왔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요. 결국 임신을 해도 편하게 진료를 볼 상황이 못 돼서 고생하는 북한 여성들이 많아요. 그런데 남한은 꼭 병원에 가지 않아도 임신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해연 : 그럼요. 몸에 이상을 느끼면 굳이 병원을 가지 않아도 약국에 가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임신 테스트기 앞에 보면 종이 같은 게 있어요. 거기에 소변을 묻혀서 조금 기다리면 줄이 뜨는데, 빨간 줄이 2줄이 뜨면 임신이고, 1줄이면 임신이 아니라는 뜻이거든요.

 

박소연 : 한 번은 제가 약국에서 약을 사려고 기다리는데 멀쑥하고 건전하게 생긴 남자분이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임신 테스트기 여러 개를 사더라고요.

 

이해연 : 남한 같은 경우에는 여성들이 남편이나 남자 친구에게 임신 테스트기를 사다 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사다 줍니다. 사회적으로 이런 문화가 자연스럽다 보니까 남자들도 쉽게 가서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북한은 아니잖아요.

 

박소연 : 북한은 그래서, 오히려 불법적인 행위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남한은 당당하게 밝은 데서 모든 걸 다 보여 주잖아요. 임신 테스트기도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고, 산부인과에 처녀가 왔다고 이상한 눈으로 째려보거나 건전치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불법적인 행위를 사전에 방지하는 바탕이 되는 것 같아요.

 

이해연 : 요즘엔 약국에 가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도 사람들이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좋게 보는 것 같습니다. 워낙 출산율이 낮아서 그런가요?

 

박소연 : 임신하면 애국자라고 하잖아요. 북한에서는 나라를 지키는 게 애국자라고 그랬는데 남한은 아이 낳는 것이 애국입니다. 이러니까 약국에서 임신 테스트를 사면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죠. 참 그리고 남한에는 임신하면 병원에서 희한한 수첩이 나오더라고요.

 

이해연 : 저도 임신한 친구가 있어서 알게 됐는데요. 임신해서 병원에 가서 검사받으면 산모 수첩을 준다고 해요. 수첩의 용도는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가 임산부와 태아의 건강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겁니다.

 

박소연 : 북한 여성들은 임신을 해도 병원에 안 가고 병원에서 오라는 말도 없어요. 임신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본인만 아는 거죠. 근데 남한은 병원에서 임신을 확인 받는 순간 자동으로 등록됩니다. 그때부터 병원에서 언제 오라고 문자가 오는 거예요. 저도 지인의 산모 수첩을 본 적이 있는데 주기별 태아 초음파 사진과 산모가 배 속의 아이에게 쓴 편지도 있었어요. 남한은 배 안의 아이에게 태명을 지어주는 문화가 있어요. 예를 들면 태명이 금돌이라고 했을 때 '금돌아! 나 엄마야. 네가 나에게 찾아온 지 며칠이 됐어. 우리 이제 곧 만나자'라고 썼는데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어요.

 

이해연 : 저는 아직 산모 수첩을 받아 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듣기만 해도 좀 오글거리는데요. (웃음) 저희 친구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자연스럽게 계속 태명으로 부르더라고요. 지어 아기랑 서로 대화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남한 임산부들은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는데요. 초음파는 파동을 이용해서 태아를 사진으로 볼 수 있는 검사를 말하는 거죠?

 

박소연 : 맞아요. 초음파 검사 기계는 북한 각 도 병원이나 대학병원에도 있습니다. 제가 북한에 살 때 도 병원에 있었는데 전기가 와도 낮은 전압 때문에 거의 사용을 못 했어요. 초음파는 사람이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주파수, 음파를 이용해서 사진으로 볼 수 있어요. 그 초음파 사진만 보고도 뱃속 태아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근데 남한은 임신해서부터 낳기 전까지 초음파 검사를 하더라고요.

 

이해연 : 남한 임산부들이 정기 검사를 얼마나 자주 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요. 임신 초기에는 1주에서 2주에 1번 정도, 27주까지는 4주에 1번 정도, 28주에서 35주까지는 2주에 1번 정도, 마지막 36주부터 39주까지는 1주에 1번 정도로 계속 정기검진을 한다고 합니다. 많이도 합니다 진짜.

 

박소연 : 임신 주기를 놓고도 남과 북은 표현이 달라요. 북한은 보통 임산부를 만나면 몇 달 됐냐고 물어봐요. 남한은 임신 주기를 몇 주라고 표현합니다. 해연 씨, 지금은 어때요?

이해연 : 지금도 한 달 됐다, 두 달 됐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남한의 경우에는 주 단위로 검사하는데 아이의 상태 등을 확인해서 더 정확하게 임신 주기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남한은 출산 예정일도 거의 정확하게 맞추더라고요.

 

박소연 : 네, 맞아요. 저도 남한에선 산모들이 출산 예정일을 정확히 알고 있어서 놀랐어요. 물론 북한도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정확한 날짜까지는 못 짚어요. 1월경에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이 생리가 언제 끝났는지 물어보고 대충 한두 달 된 거 같다고 얘기해요. 산모는 의사의 말을 듣고 대충 10월 말 아니면 11월에 낳겠다고 어림짐작해요. 북한에는 '아이 하고 무는 뽑아봐야 안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 말인즉슨 뱃속에 아기는 낳아봐야 성별을 알고, 무는 뽑아봐야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남한은 초음파 검사를 통해 출산 전에 성별을 정확히 알 수 있어요.

 

이해연 : 북한은 임신해도 병원에 자주 가지 않잖아요. 초반에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한번 가서 진찰받고, 중간에 한두 번 정도 가는 게 전부예요. 어떤 분들은 초반에 한 번 정도 검사하고 애 낳으러 가기 때문에 남한처럼 몇 주에 아기 심장이 뛰는지 태아가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전혀 모른채 출산하게 되는 거죠.

 

박소연 : 검사만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남한 임산부들은 뱃속의 아기를 위해 태교에도 엄청 품을 들여요. 태아를 위해 지루한 클래식 음악도 듣고 옷도 편한 임산부 복을 입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임신했을 때 남편이 입던 큰 옷에 펑퍼짐한 고무줄 치마를 입었어요.

 

이해연 : 임신한 제 친구는 태아 교살에서 태아 교육을 받고 있더라고요.

 

박소연 : 별게 다 있네요.

 

이해연 : 본인이 다니는 병원 산부인과에서 병원에 다니는 임산부들을 모여 함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장소에 '태아 교실'을 마련해서 교육하더라고요.

 

박소연 : 며칠 전 동사무소에 갔는데 게시판에서 ‘임산부를 위한 무료 태교’ 신청 홍보물을 봤어요. 그걸 보면서 새삼 남한은 참 아이 낳기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해연 : 그런데도 안 낳는다니… 남의 얘기할 처지는 아니지만요… (웃음)

 

[클로징] 과거 북한에서는 아들을 못 낳으면 집안의 대가 끊어진다고 아들을 낳을 때까지 출산하다 보니 동네마다 딸 부잣집이 많았습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아들을 고집하던 사회적 분위기도 점차 변해갔는데요. ‘아들을 낳으면 안전부 마당에서 기다리고, 딸을 낳으면 우체국 마당에서 기다린다’는 말이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한마디로 아들은 죄를 지어 부모 속을 태우지만 딸은 집안 살림에 필요한 물건들을 소포로 보내주는 효녀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남한은 어떨까요? 그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 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한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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