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개식용금지법, 북한 주민이 듣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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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지난 시간부터 남한의 개고기 식용 반대 법안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얘기를 계속해 보자면, 요즘 보면 남한에는 스트레스를 동물 영상을 보면서 푸는 사람이 많습니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하루에 10분 이상 동물에 관한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60%가 넘는다고 해요. 저도 머리가 복잡하면 유튜브에서 '재밌는 강아지 영상을 검색하는데요. 영상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좀 비워지면서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해소가 되거든요.

이해연 : 역시 반려견을 키우시는 분이라 다르네요. 저는 강아지 영상을 찾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저는 주로 예능이나 웃기는 영상을 봅니다.

박소연 :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과 안 키우는 사람의 차이가 확실히 나네요.

이해연 : 이해합니다. 지금 방송 스튜디오에 세 명이 있는데 그중에서 저만 빼고 두 분이 반려견을 키우시잖아요. (웃음) 반려견 인구가 전국에 1,500만 명 정도라는 말이 실감 납니다.

박소연 : 북한에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가족사나 사생활을 방송에 전혀 노출을 안 시키잖아요. 근데 남한에는 대통령과 부인이 사택 뜨락에서 강아지와 함께 놀고, 대통령이 출근하는데 부인이 강아지를 안고 나오는 모습들이 그대로 언론에 자주 노출이 됩니다. 이런 모습들은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비칩니다.

이해연 : 그런데 북한에서 대통령이 강아지를 안고 나오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온다면 어떨까요? '돈이 너무 많아 쓸 데가 없나, 그럴 돈이 있으면 차라리 인민들한테 쌀이나 나눠주지'라며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 같아요.

박소연 : 당연하죠. 탈북하기 전에도 북한에는 애완용 개를 키우던 집들이 있었지만 한 개 아파트에 겨우 한 집 정도로 드물었어요. 애완용 개를 키우는 집들은 아파트에서 제일 잘 사는 집이었고 누가 애완용 개를 안고 지나가면 길 가던 사람들이 전부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을 흘겼어요.

이해연 : 북한에는 지금도 애완용 개를 키우는 것에 공감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박소연 : 그런 사회에서 대통령이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걸 텔레비전으로 보게 되면 인민들은 당연히 증오하죠. 남한 사회는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거의 1,500만 명이나 되기 때문에 강아지를 키우는 대통령을 친근하게 여깁니다. 물론 일부는 국민한테 호감을 얻으려고 대통령이 강아지를 안고 나타난다고 비난하기도 하죠.

이해연 : 이번 개 식용 금지 법안이 통과된 것도 그런 영향이 크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쯤해서 궁금한 게 있어요. 선배님은 북한에서 개를 키워보셨어요?

박소연 : 당연히 키워봤죠. 개도 키우고 돼지는 물론 닭도 키워 봤어요. 그게 기억나네요… 저 어릴 때 북한에서 태어난 지 30일 된 강아지를 데려다 집에서 키웠는데 너무 곱고 귀여웠어요. 어느 날 아버지가 몸이 약해져서 어머니가 개를 잡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때 하늘이 떠나갈 만큼 울었어요. 하는 수 없이 어머님이 개장수에게 개를 팔고 바꿔서 잡았죠. 그 이후로 한동안 개를 안 키우다 국경에서 밀수하면서 중국 쪽 대방이 가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없이 개를 끌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이해연 : 북한에서는 그런 일이 많잖아요. 다들 수입 때문에 개나 가축을 키우기도 하고요. 그러면 북한 개를 판매하신 거예요?

박소연 : 그렇죠. 그때는 개를 끌고 다녀야 자식들을 먹여 살릴 수 있으니까… 북한 개들이 또 얼마나 사나워요. 양손에 두 마리씩 한 끈에 묶어서 네 마리를 동시에 끌고 왔는데, 운전기사들은 털 짐승을 차에 태우면 차가 전복된다고 안 실어줘요. 100리나 되는 산길을 걸으면서 마음속으로 '물지 마라, 물지 마라' 하면서 오는데 겁나서 죽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개 밀수를 5년 동안 하면서 죽기 전에 개를 키우면 사람이 아니라고 다짐했죠. 남한 정착 초기엔 저도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미국 놈보다 더 미운 거야. (웃음) 북한에서는 생계를 위해 할 수 없이 개를 끌고 중국에 넘겼지만 남한에서는 제가 행복하려고 개를 키우고 있네요. (웃음) 해연 씨는 어때요?

이해연 : 선배님 말대로 북한에서는 개를 돈 때문에 또는 집을 지키는 보초용으로 기르지만, 남한은 자신에게 소소한 행복을 주기 때문에 기르죠. 저도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많이 키웠어요. 어릴 때는 확실히 예쁘고 귀여운 것 같아요. 크면서 모습은 변하지만 어릴 때부터 봐서 그런지 정이 들더라고요. 부모님들이 개를 잡는다고 해서 차라리 팔라고 했죠. 그래도 가끔 잡은 적이 있는데, 그럴 때면 저도 선배님처럼 울고 그랬습니다.

박소연 : 북한에서 개는 아무리 예쁘고 귀여워도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거든요. 혹시 해연 씨, 북한에서 최초로 탈북한 개가 있다는 사실 알고 있어요? 오래전에 북한 바닷가 주변에 살던 가족 전원이 배로 탈북하는데 개가 주인을 따라와서 어쩔 수 없이 배에 함께 태워 탈북했어요. (웃음) 남한 정부에서 그 개를 보호하고 키웠는데 지금은 아마 나이가 많아 하늘나라로 갔을 겁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탈북 전 국경 근처 친척 집에서 개 밀수를 했을 때였어요. 북한에는 추운 겨울, 명절 같은 때는 특별 경비 주간이라고 해서 보름에서 한 달 정도 국경을 봉쇄해요. 그럴 경우 시골에서 사 온 개를 한 달 동안 중국에 넘기지 못하고 키워야 하는데 그동안 정이 들었어요. 국경 경비가 느슨해지면서 개를 중국 대방에 넘겼는데 그날 밤 대문을 긁는 소리가 들렸어요. 대문을 열었더니 전날 밤에 중국에 넘긴 그 개가 다시 돌아온 거예요. 중국 대방이 넘겨받은 개를 창고에 대충 매 놓았는데 언 강을 건너 다시 돌아온 거예요. 친척이 농담으로 '야, 얘는 천재다. 돈주머니가 다시 굴러들어 왔구나' 그러는 겁니다. 이미 돈을 받고 판 개가 돌아왔으니 그럴 만도 하죠. 남한에서는 개가 무슨 이유에서 집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게 되면 특별한 인연이라며 안고 울고불고 난리가 나잖아요. 근데 북한에서는 돈을 불려주는 복덩이가 왔다고 생각했었어요.

이해연 : 정말 남과 북은 개에 대한 인식과 문화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걸 다시 느낍니다. 어디가 좋고 나쁘다고 판단하기보다는 남한은 반려견을 키우시는 분들이 많고 이제는 가족같이 여기는 사람이 많아서 개 식용 금지 법안을 지지한 분들이 많은 것으로 보이고요. 북한에서 개는 그냥 동물이죠.

박소연 : 사실 개를 키우는 비율로 보면 북한이 오히려 남한보다 더 많을 수 있어요. 개는 북한에서 영양식이나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얻으려는 수단으로 키우고 있어요. 결국, 경제적인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남한은 영양식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음식들이 풍부하잖아요. 그래서 단순히 보이는 현상만 갖고 남한은 개고기를 안 먹어서 좋은 나라고, 북한은 아직도 개고기를 먹어서 나쁜 나라라고 이분법적으로 볼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사회가 다르고 분위기가 다르고 환경과 문화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이해연 : 북한에는 여름 복날에 단고기를 가장 많이 찾습니다. 남한도 예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단고기 대신 삼계탕을 먹는게 더 대중적입니다. 남북의 문화 차이가 크다는 생각이 다시 들고요…

박소연 :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이지만 분단된 지 벌써 70년이 넘으며 문화도 다를 수밖에 없어요. 남한은 먹을 게 많아서 굳이 단고기를 안 먹어도 되지만, 북한은 먹을 게 없어 단고기를 먹는다는 질시와 무시의 시선으로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북한 사람들도 남한 문화를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마지막으로 오늘 방송 마무리할까 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