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북한에서 죽음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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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안녕하세요. 해연 씨, 혹시 '안락사'란 말 들어본 적이 있어요? 솔직히 20대인 해연 씨한테 맞는 질문이 아니긴 하네요…

이해연 : 아닙니다. 사람은 어차피 한 번은 죽기 마련이니까요. 안락사라는 말은 남한에 와서 처음 들어봤어요. 요즘은 가끔, 뉴스에 안락사 얘기가 나와서 궁금해서 찾아보긴 했어요.

박소연 : 저도 남한 정착 초기, 주변에서 안락사에 관한 얘기를 하는 걸 봤지만 관심이 없었어요. 젊기 때문에 죽음은 먼 이야기로만 알았죠. 말끝에 '죽을 사'자가 붙으니 안락하게 죽는 방법이라고 혼자 추측만 했었죠. 오늘 안락사 얘기를 꺼낸 이유는, 얼마 전 네덜란드 전 총리가 아내와 함께 안락사를 선택했어요. 올해로 93세인 네덜란드 전 총리는 과거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요. 그래서 아내와 동의해서 안락사를 선택해 같은 날 사망했습니다. 네덜란드는 북한에서 화란이라고 했었던 기억이 있네요. 어쨌든 이 기사가 공개된 후 남한 사회에서 안락사가 사람들 속에 다시 얘기되고 있어요.

이해연 : 개인적으로 누군가 생을 다했다는 것은 슬프지만 두 분이 외롭지 않게 같이 가셔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북한에서는 부부가 한날한시에 떠나면 복이라고 말하거든요.

박소연 : 그것도 옛말이 아닐까요? 90년대 초반쯤에 어머니들이 '내가 죽으면 네 아빠 홀아비처럼 사는 꼴을 못 본다. 그냥 손목 잡고 같이 가면 좋겠다' 이런 말들을 많이 했죠. 그러다가 '고난의 행군' 이후부터 가정 내 싸움이 많아지면서는 물론 화가 나서 한 말이었겠지만 '제발 죽어서라도 저 인간을 만나지 않으면 좋겠다' 그랬죠. (웃음)

이해연 : 맞아요. 우선은 '안락사'란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정확한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안락사'는 극심한 통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거나 불치병으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에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본인이 죽음을 선택하는 의미한다고 설명돼 있어요. 방법으로는 의사가 약물을 주사하거나, 환자에게 약을 줘서 환자 스스로 먹고 싶은 시간에 복용하는 방법이 있어요. 이런 행위를 안락사 혹은 조력자살이라고 부릅니다. 즉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죽음을 선택한다는 뜻입니다.

박소연 : 안락사와 관련된 기사를 보면 항상 '평온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글로 끝납니다. 고통의 시간을 줄여주고 잠을 자는 것처럼 서서히 평온하게 죽는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이해연 : 네덜란드의 전 총리가 안락사를 선택했다고 하셨는데 세계적으로 안락사가 처음으로 합법화된 나라가 네덜란드라고 합니다. 합법화되기까지 사연이 있는데요. 1994년 6월에 네덜란드의 한 정신과 의사가 우울증이 심한 여성 환자에게 수면제를 처방하면서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가 됐다고 해요. 이후에 네덜란드 대법원은 의사의 유죄는 인정했지만 형은 선고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박소연 :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의료법을 어기면서까지 치사량에 이르는 약을 준 것은 유죄로 인정되지만 의사가 나쁜 마음을 먹고 한 행동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네요.

이해연 : 이 사례를 통해 세계 최초로 네덜란드에서 2001년 4월, 안락사가 합법화됐다고 합니다.

박소연 : 한국에서는 안락사가 합법화 되지 않았죠?

이해연 : 네, 그렇지만 설문 조사를 보면 70%의 응답자가 안락사 합법화를 요구한다고 답했어요. 그렇지만 아직 계속 논의 중으로 알려집니다.

박소연: 안락사가 아직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 즉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인민의 마음이 아직 허락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네덜란드뿐 아니라 안락사가 법제화가 된 나라가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해연 : 네덜란드, 미국의 몇 개 주, 스위스, 벨기에 등이 있습니다. 스위스는 국민들은 물론 외국 사람들도 안락사할 수 있게 허락된 나라라고 합니다. 지금은 해외에서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들이 스위스로 간다고 가끔 보도에서 볼 수 있죠. 그만큼 스위스는 안락사에 대해서 관대한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지금까지 스위스로 가서 안락사를 선택한 남한 사람은 100여 명으로, 현재 대기자만도 4배나 된다고 합니다. 안락사는 일단 의료비용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해연 : 보도를 보면 안락사를 위해 약물을 투입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무려 만 달러에서 만 오천 달러라고 합니다.

박소연 : 의료 비용도 그렇지만 스위스로 가려면 비행기도 타야 하고...하여튼 안락사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안락사에 대한 보도가 부쩍 많이 보이는데… 해연 씨, 요즘 안락사가 부쩍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가 뭘까요?

이해연 : 아마 수명이 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고민하게 되는 거죠. 북한 어르신들이 항상 하시는 얘기가 있잖아요. 죽을 때 고통 없이 잠자는 것처럼 죽었으면 정말 원이 없겠다고요... 고통이 없이 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편안하게 죽고 싶은 것이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기 때문에 안락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박소연 : 동감해요. 남한은 지금 100세 시대에 진입했어요. 북한은 사회주의 제도가 좋고 수령님 덕분에 인민들이 오래 산다고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합니다. 남한은 북한보다 평균 수명이 거의 10년에서 15년 이상 높아요.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오래 살아서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평균 수명이 긴 남한에선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고요. 수명은 늘어나지만 신체적으로는 노화가 되면서 몸이 아프고 병원비로 들어가는 돈이 늘어나고 자식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기 싫고… 실제로 사람들은 안락사에 대해서 긍정적인 것 같습니다.

이해연 : 안락사 뉴스에 달린 댓글들을 봐도 그래요. 안락사가 빨리 도입돼야 한다는 얘기가 많아요. 또 노령화 시대에 젊은이들이 줄어들면서 세금 내는 사람들은 적지만 국가의 혜택이 필요한 노인들이 많아지는 고민도 있겠죠.

박소연 : 해연 씨 상당히 요즘 세대 같은 발상인데요. (웃음) 한마디로 노동능력이 있는 젊은이들에 비해 노동 능력이 없는 노인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고민이 생겼다는 건데… 해연 씨 생각을 맞다, 틀리다 평가할 수는 없겠죠. 재작년에 큰 대학병원에 간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백발의 어르신이 휠체어에 링거를 꽂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뒤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들이 밀고 있었어요. 문득 내가 늙어서 아프면 아들이 저렇게 힘들게 간호를 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남한은 의료 기술이 발달해서 뇌사 상태에 빠져도 그대로 살 수 있습니다. 뇌만 살아 있고 모든 기능이 상실되고 아무런 감각도 없이 그냥 침상에 누워서 식물인간으로 생명 연장을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도 들고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안락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지하는 것 같아요.

이해연 : 삶의 질이 보장되면서 남한 사람들은 죽음의 질도 함께 생각하는 것 같고요…

세계보건기구는 죽음에 대해 소생할 수 없는 삶의 영원한 종말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정의도 나라마다 다르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대표적인 사례로 멕시코 사람들이 생각하는 죽음의 정의는 3단계라고 하는데요, 첫 단계는 심장이 멈추는 생물학적 죽음, 두 단계는 육신이 땅에 묻히거나 화장되는 물리적 소멸 단계, 마지막으로 남겨진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그때를 영원한 소멸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속에 기억이 남아있다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겠죠.

안락사와 죽음에 대한 얘기, 다음 시간에 이어 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이현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