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안락사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70%로, 나머지 30%는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어요. 그렇다면 안락사를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해연 : 세상에 태어나고 죽는 것은 인간이 결정할 부분이 아니라는 게 가장 큰 반대 이유 같습니다. 생명은 하늘이 준 선물인데 운명을 따르지 않고 인위적으로 사람이 생과 사를 정할 수는 없다는 거죠.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안락사 법제화를 반대할 가능성이 큽니다. 또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반대할 것 같고요.
박소연 :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사회적으로 안락사가 시행되면 젊은 세대들은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는 것에 대해 의무를 가질까요? 죽음의 무게가 상당히 달라지겠죠.
이해연 : 또 안락사가 본인의 선택이 아닌 자녀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불순한 의도에 이용당할 수도 있잖아요. 드라마에도 가끔 나오는…
박소연 : 맞아요. 남한 드라마를 보면 재산이 많은 아버지가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자식들이 아버지의 유언장을 위조하고 의사에게 압력을 가해 사망을 부추기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안락사가 부정적인 행위에 이용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합법화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고요. 참고로 저는 재산이 없어 자식한테 이용당할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웃음)
이해연 : 듣고 보니 참 무서운 얘기네요. 어쨌든 안락사가 나쁜 일에 악용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합법화가 어려운 것 같다는 의견에 공감해요.
박소연 : 남한에는 어떤 것들이 법제화가 될 때 항상 찬반 논란이 있어요. 근데 우리는 북한에서 100% 찬성에 익숙해진 사람들이에요. 반대라는 생각을 못 하고 살다가 남한에서 찬반 논란을 보면서 솔직히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어요.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말에 익숙한 저로서는 왜 저렇게 반대할까 의아했는데, 10년 넘게 남한에서 살면서 찬성과 반대가 있기 때문에 사회가 균형이 잡혀간다는 걸 알았어요. 서로의 의견이나 목소리를 내며 서로 싸우는 거잖아요. 그 과정에 사회도 발전하고 논쟁 덕분에 사람들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기회가 마련되는 것 같습니다.
이해연 : 정말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논의 중인 안락사도 찬반논란으로 아직 합법화가 되지 않았지만 대신 연명치료 거부는 합법화가 됐습니다.
박소연 : 연명치료 거부 신청을 남한에서는 '존엄사'라고 불러요.
이해연 : 엄숙한 말이네요. 연명치료는 치료 효과가 없이 오직 생명 연장만을 위해 치료하는 의료 행위를 의미합니다. 단순히 생명 유지만을 위해서 하는 치료라고 해서 연명치료라고 부는 것으로 이해되는데요. 이런 치료에 미리 거부 의사를 밝히는 것을 연명치료 거부 신청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등이 있는데요. 환자가 사전에 연명치료 거부를 신청하면 10년 정도의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신청 후에 갱신하거나 변경 사항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다시 작성할 수 있어요. 또 연명치료를 거부한다 해도 영양과 단순 산소 공급은 중단할 수 없으며 통증 완화 치료는 계속 진행된다고 합니다.
박소연 : 연명치료 거부는 안락사와 좀 다르군요. 중년인 저도 연명치료 거부 신청을 할 수 있는 거네요. 보도를 보면 이런 연명치료 거부는 70세 이상 되신 분들이 많이 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70세가 넘으신 어르신이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남한은 보통 사고가 나면 119 응급실에 가서 산소 호흡기를 다는 등 응급치료하거든요. 하지만 연명치료 거부 신청을 한 사람이면 멎은 심장을 다시 살리는 심폐소생술은 하지 않습니다. 다시 살아나도 의식은 멀쩡한데 거동도 못 하는 식물인간으로는 살고 싶지 않다는 이런 생각으로 신청하는 분들이 있는 거고요. 왜 북한에도 심근경색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살아나도 그냥 누워있다가 가는 경우도 있고… 갑자기 심장이 멎을 때를 대비해 가정에서 빙두(마약)를 비상약으로 갖고 있기도 하죠.
이해연 : 연명치료 거부 신청은 젊은 사람들보다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한다는 게 이해가 가네요. 누구나 신청이 가능한 건가요?
박소연 : 이것도 절차가 확실해요. 연명치료 거부 신청을 받는 병원이 따로 있고 철저한 심사를 통해 신청이 이뤄집니다. 신청한다고 무조건 승인하진 않아요.
이해연 : 만약 이런 얘기를 북한 주민들이 듣는다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봤어요. 북한에도 이런 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북한에도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 그분들을 위해 안락사나 연명치료 거부 같은 법이 없습니다. 고통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고 싶고 또 본인이나 가족들에게 자신의 삶이 고통이라도 자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어요.
박소연 : 북한 노인들은 죽고 싶은 날에 죽는 것이 오복 중에 제일 큰 복이라고 말해요.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지만 북한에서 노인의 삶은 굉장히 힘듭니다. 탈북하기 전에 제가 살던 아파트 제일 꼭대기 층에 어르신이 살았는데 승강기가 없어 1층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하루 종일 아파트 베란다에 나와 계셨어요. 동네 사람들이 그 할머니를 '인간 비둘기'라고 불렀어요. 가끔 딸이 할머니를 업고 1층에 내려왔는데 그럴 때만 되면 쥐약이라도 먹고 빨리 죽고 싶은데 자살하면 자식들의 앞길을 망치는 것 같아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다며 푸념하시던 그 할머니의 말씀이 아직도 잊혀 지지 않아요.
이해연 : 대부분의 어르신은 자식의 앞날이 걱정돼 죽음도 선택하지 못하죠. 그런 자유도 박탈된 겁니다…
박소연 : 생각해 보면 북한에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시던 분들 대부분 나이대가 보통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이었어요. 동네에서 70세 어르신이 사망하면 살 만큼 살다 갔다고 말하지만 남한에서는 그런 얘기를 하면 큰일나요. 남한에는 일단 연명치료 거부 신청을 하는 사람도 70대거든요.
이해연 : 남한에는 60대, 70대분들이 연애도 해요. 북한처럼 생각하고 그런 얘기 했다가는 큰일납니다. (웃음) 북한의 60대는 남한에서 70대와 맞먹을 정도죠. 요즘은 '오래 사는 게 진짜 축복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옛날에는 오래 살면 축복받았다고 말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고요, 몸이 편치 않으면서 오래 사는 게 맞는 것인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생의 길이보다는 삶의 질이 더 중요한 것 같고요.
박소연 : 3대 거짓말이라는 게 있잖아요. 노처녀 시집 안 간다는 것, 장사꾼이 밑진다는 것, 노인이 빨리 죽고 싶다는 거짓말이요. 북한에 살 때는 어르신들이 죽고 싶다는 말이 전부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북한은 경제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에 어르신들은 자녀에게 짐이 될 수밖에 없어요. 북한 어르신들은 오래 사는 게 자녀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라고 말해요.
이해연 : 나라마다 취약계층에 속하는 노인들이 삶을 비교하면 그 나라의 행복지수가 나온다고 해요. 취약자로는 어린이, 노인, 여성을 들 수 있는데 그분들이 느끼는 행복 지수가 높을수록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닌가 싶습니다…
[클로징] 우리는 보통 나이 많은 노인들이 죽음에 대해 가장 많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노인들이 시기적으로 죽음에 가장 가까이 있다는 고정 관념 때문인데요.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도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조사 결과를 보면 놀랍게도 남한은 40~50대가 죽음에 대해 많은 고민과 관심을 보인다고 합니다. 100세 시대인 남한에서 아직 삶을 절반 정도 산 중년층들은 왜 죽음을 고민할까요, 수수께끼 같은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 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녹음, 제작: 이현주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