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지난 시간에 이어서 우리 남북의 연애 얘기 이어가겠습니다. 제가 정착 초기에 신문사에서 일할 때 탈북민 남성을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정착한 지 한 2~3년 됐으니까 말투가 이미 상냥하죠. 북한 말투보다는 남한 말투가 상냥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은 남한에 온 지 얼마 안 됐고 이런저런 얘기를 어느 정도 나누는 과정에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착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전화가 오는 거예요. 하루는 '우리 만날 때 안 됐습니까?' 손전화 문자 메시지로 보내는 겁니다. 하트 모양까지 붙여서… 이분을 어떻게 설득할까 고민하다가 직접 만나서 얘기했어요. '사실 제가 남자로서 대한 게 아니라 일 때문에 만난 거다' 그랬더니 '왜 그렇게 따스한 눈빛으로 자기를 봤냐'고 따져요. 제가 그냥 따뜻한 눈빛을 보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웃음)
이해연 : 그게 북한의 연애 방식이죠. 북한 분들은 말투가 부드럽지 않고 대체로 직설적이고 표현이 좀 거칠지 않습니까? 그런 게 익숙되다가 여기 와서 조곤조곤하고 상냥한 말을 들으면 착각하시는 것 같아요. (웃음)
박소연 : 그때 그분이 했던 행동이 바로 30년 전 남한 연애 문화라고 해요. 그런데 해연 씨, 지금은 어떻습니까? 북한 연애 문화도 많이 변했을 것 같은데요.
이해연 : 크게는 아니고 아주 조금 변하긴 했습니다. (웃음) 저는 이게 남한 드라마 영향이 때문인 것 같아요. 한국 드라마를 보면 남자가 로맨틱하게 무릎 꿇고 여자에게 꽃다발 주며 고백하잖아요. 북한 남자분들이 그걸 보고 따라 해요. 그렇게라도 조금씩 바뀌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지금 북한 젊은 세대들은 연인끼리 호칭을 어떻게 불러요?
이해연 : 나보다 연상이면 오빠라고 부르지만 남한처럼 '자기야'라는 말을 잘 안 해요.
박소연 : 북한에서 '평양 문화어 보호법'을 지정하면서 이제 연인들도 동지나 동무라고 불러야지 오빠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하는데요.
이해연 : 젊은 층에서 아직까지 동지나 동무라고 부르는 경우는 있어요. 대학은 제대 군인들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한테는 평소에도 동지라고 불러서 연인 사이라고 해도 동지라고 부르긴 합니다. 법을 만들고 단속한다고는 하지만 연인끼리 오빠라고 부르는 문화가 그리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둘이서 부르는데 보안원이 알게 뭡니까! (웃음) 그렇다면 북한 젊은 남녀는 요즘 어떻게 만나 연애합니까?
이해연 : 만나는 방식이 북한은 굉장히 많죠.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동창들끼리 자주 만나요. 남한 같으면 집 밖에서 장소를 정해서 만나지만 북한에는 문화 시설이 많지 않으니 집에서 모이고 요즘은 회비를 걷습니다. 그리고 선배님도 아시겠지만 북한에는 남성들이 길에서 걸치기를 많이 하잖아요. 남한에선 그걸 헌팅이라고 하던데 방식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남한은 젊은이들이 많이 가는 장소에 가면 가끔 길 가다 마음에 드는 이성을 따라가 전화번호를 물어보기도 하죠. 그렇지만 상대가 거절하면 굳이 따라오진 않아요. 하지만 북한에서는 거절을 해도 보통 10리, 20리 되는 길을 막 따라옵니다. 집 전화번호를 달라고 해서 만나기도 하죠. 북한에서는 아직도 '백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유효하고 일단 열심히 따라다니면 여자가 넘어온다고 생각합니다.
박소연 : 와… 남한에도 그런게 있긴 하군요! 저는 몰랐어요. 그런데 남성들이 여성을 길에 따라오는 건 저희 때도 그랬어요. 여성이 거절했다고 그 자리에서 포기하면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90년대 후반 때까지는 정말 남자가 여자를 쟁취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문화였어요. 과거 남한에도 북한과 마찬가지로 '백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란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면 폭력으로 경찰에 고소합니다. 여자가 싫다는데 왜 100번을 찍냐고요! 근데 북한은 아직도 그걸 문제시 안 하는 게 남북의 큰 차이인 거예요.
이해연 : 북한 여자들은 밀고 당기기를 합니다. 남한 표현으로 튕긴다 하는데요, 한 번 거절 당했다고 다른 사람을 찾으면 북한에서는 연애할 수 없습니다. 그런 문화 속에서 남성들도 100번을 찍어보는 거죠.
박소연 : 이쯤에서 요즘 남한의 젊은 세대들의 연애도 알아볼까요? 어떻게 만나요?
이해연 : 여러 가지가 있어요. 소개팅으로 만날 수도 있는데, 소개팅은 말 그대로 지인의 소개로 만나는 겁니다. 그리고 요즘은 타치폰의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데이트 앱이라고 부르는데요. 그걸 설치하고 내 정보를 입력한 뒤 문자 등을 통해 만나는 것이죠. 진지한 만남 즉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싶다면 결혼정보회사라는 것도 있습니다. 남한에 이런 문화가 생겨난 것은 현실에서는 이성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소연 : 저는 최근까지도 그런 게 존재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다 제가 아는 남한 분과 연애 얘기를 하다가 알게 됐어요. 그 분은 해연 씨가 얘기한 그런 어플을 통해 남자친구를 만났고 지금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해연 : 어플에서는 상대방의 얼굴, 나이, 키, 취미, 직업까지도 한 번에 알 수 있어서 나에게 맞는 상대를 만날 수 있고 효율적이라 선호하기도 하지만 대신에 좀 안 좋은 면도 있습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니 상대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죠.
박소연 : 혜연 씨 말을 들으면서 생각난 건데 저는 남한에 와서 '가볍게 만나, 부담 갖지 말고'라는 말을 처음 들었어요. 그런데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가볍고 무거운 게 있을까요?
이해연 : 가볍게 만난다는 말이 꼭 나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고 그야말로 가볍게, 주말에 함께 시간 보낼 친구를 찾아 만나는 것도 나쁜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러다가 또 자기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면 결혼까지도 이어질 수도 있고요.
박소연 : 이 부분도 중요할 것 같은데., 해연 씨는 상대방을 만났을 때 북한에서 왔다, 탈북민이다 밝히면 반응이 어땠나요?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여요?
이해연 : 저는 다행히 기분 나쁜 일은 없었습니다. 대부분 놀라고요, 어떻게 오게 됐냐 어떤 경로로 왔냐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생 많았다 이렇게 말하고 다들 잘 받아들였는데요, 만약에 이 사람이 제가 탈북민인 걸 밝혀서 안 좋게 받아들일 것 같다면 저는 밝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그게 12년 전, 남한에서 탈북민을 생각하는 인식의 변화가 큰 것 같습니다. 그때는 당사자끼리는 괜찮았어요. 대신 가족을 만나면 정말 달랐습니다. 저도 당시 결혼 전제로 만나던 남성의 가족을 만났는데… 저는 똑바로 보지 않더라고요. 그 상처는 아직도 남았는데요. 대신 그렇게 생각했어요. 당시 저는 정말 직업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족들이 약간 무시하는… 왜 탈북민이야?
이해연 : 아니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거기서 태어난 게 아닌데…
박소연 : 아마 다른 자리 같으면 싸웠을 겁니다. 당신들은 아마 북한에서 태어났으면 굶어 죽을 거다… 막 이러면서. 그 상처가 지금도 있어요. 그때 생각한 게 내가 일어서야겠다. 나도 내 것을 만들어야겠다, 번듯이 잘 살아야겠다…
이해연 : 그런데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랑 굳이 만날 필요는 없는 것 같고요. 만나지 말아야죠. 요즘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게 많습니다. 생활력이 더 강할 것이라고 생각해주고…
지난 12년, 무슨 일이 있었길래 탈북민을 보는 남한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었을까요? 일단 ‘사랑의 불시착’ 같은 드라마나 ‘이제 만나러 갑니다’ 같은 프로그램이 나오면서 북한 사람들의 생활을 잘 알게 되고 또 친근하게 느끼게 됐고요, 가장 중요한 건 북한 사람들이 변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변화가 남한 사람과 탈북민의 연애를 바꿨을까…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녹음총괄,제작:이현주
에디터: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