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보천보 전자악단의 짧은 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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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이해연 : 북한 분들은 살면서 누구나 고생을 많이 해요. 제가 북한에서 살 때는 어린 나이여서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보다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스트레스받는 일이 당연히 있었어요. 그러면 친구들끼리 모여서 음악을 틀어놓고 엉덩이를 흔들며 놀아요. 그때 많이 등장했던 노래가 남한 가수 박상철 님이 부르는 '무조건'이라는 노래였어요. 이 노래, 아세요?

박소연 : 알죠. 저희 때는 '자옥아'를 많이 불렀어요. (웃음) 그때는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도 이해를 못 했어요. 분명히 사람 이름인데 것 같은데 어떻게 노래 제목에 개인 이름이 들어가나? 참 이상하다… 북한에선 노래가사에 들어갈 수 있는 이름은 수령님, 장군님, 원수님만 가능하니까… (웃음)

이해연 : 가사에 일반 사람 이름을 넣는다는 건 북한 기준으로 이해가 안 되죠.

박소연 : 자옥이는 가수의 부인 이름인데요, 남한의 유명한 배우라고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서 이름을 넣어 부른 건데 왜 북한에서는 이해를 못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렇게 이해를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북한에서 남한 노래를 들으면서 거부감이 없었고 가수들이 노래를 담백하게 불러서 좋았어요. 북한 노래는 소위 '주체 창법'으로 불러요. 탈북민들은 남한에서 야유회 가면 아직도 그런 식으로 노래를 부르죠. 가끔 그런 창법으로 '돈 돌라이 돈 돌라리 돈 돌라리요'를 부르면서 춤을 추는 영상이 게시판에 올라오는데 얼굴에 모닥불을 쓴 것처럼 부끄럽습니다. (웃음)

이해연 : 저는 그 주체 창법보다 노래 가사가 싫습니다. 북한 노래는 전부 지도자를 칭송하는 가사로 개인들에게 전혀 공감이 안 되요. 특히 올해 초, 남한에서 화제가 된 북한 노래가 있습니다.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정홍란 가수가 신년 경축대공연에서 부른 노래가 남한 아이돌 그룹인 '여자친구'의 음악을 그대로 표절했다는 의혹이 나왔습니다.

박소연 : 표절이라는 게 북한 가수가 남한 노래를 그대로 따라 했다는 거죠?

이해연 : 맞습니다. 북한 가수가 공식적으로 부른 노래이니까 아마 청취자들도 대부분 아실 텐데요, 저는 보면서 북한의 20대들이 좋아하겠네… 생각했습니다.

박소연 : 인터넷에 영상이 많이 올라와서 저도 봤는데요, 솔직히 놀랍지도 않아요. 2018년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할 때 남측 예술인들과 북한 예술인들이 남북을 오가면서 합동 공연도 했잖아요. 북한 모란봉 악단 가수들이 북한 노래를 하면서 율동도 같이했는데 남한 아이돌 가수들 흉내를 내느라고 했는데 보는 내내 저는 좀 어색했습니다.

이해연 : 예전에 북한에서 왕재산 경음악단 가수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공개적으로 볼 수 있는 영상은 아니었어요. 짧은 치마나 반바지를 입고 춤을 추는데 그때는 정말 세련돼 보였어요.

박소연 : 북한 음악 얘기를 하면 안타까워요. 저는 20대를 1990년대에 보냈어요. 당시에 주민들이 몰래 보던 CD가 있었어요. 남한의 유명한 노래인 '그대 이름 바람 바람 바람' 하는 노래를 북한 가수들이 춤을 추면서 불렀어요. 정말 남한 아이돌 가수들 못지않았어요. 아쉬운 점은 이 영상들이 사회주의라는 명목하에 대중화되지 못하고 일부 특수 계층들만 볼 수 있었던 거죠. 북한도 자유롭게 음악 인재들을 양성했으면 남한보다 더 잘했을 수 있어요. 90년대는 '보천보 전자악단'이 유명했어요. 당시에 일본 공연에서 부른 곡이 유행이었는데 1절을 일본말로 부르고 2절을 한국말로 불렀어요. 그때 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가 너무 좋아서 일본 노래를 따라 불렀는데 나중에 부르지 말라고 했죠. 보천보 전자악단이 당시 입었던 의상도 파격적이었어요. 북한은 사회주의 나라여서 무대 의상도 한복만 입는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북한이 어깨를 드러낸 의상을 30년 전에 입기 시작했어요.

이해연 : 그때 사람들 속에서 어떤 얘기가 나왔냐면요, 공연할 때는 속옷이 보일 정도로 입고 나오면서 일반인들은 치마가 무릎 위에 올라가면 안 된다고 단속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의견이 많았어요. 그런데 아까 선배님이 남한에서 북한 노래를 들으면 부끄러웠다고 하셨잖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부끄러울 것까지 있을까요…

박소연 :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이 강하고요. 솔직히 남한 사람들이 북한 음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거기에도 동요하는 것 같습니다.

이해연 : 저도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부분은 동의합니다. 북한 노래는 구호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주체 창법은 그냥 여러 종류의 창법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북한 노래 가사는 정말… 상대에게 명령하는 것 같고 노래를 하며 세뇌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살 때는 이런 느낌을 몰랐어요. 우리가 당국에 속혀(속아) 산다는 것을 몰랐으니까요... 미래에는 북한에서도 노래 창법도 좀 바뀌지 않을까요? 내용도 다 바꿀 것 같아요.

박소연 : 당연하죠. 수령님, 장군님이 빠지고 본인 이름이 들어갈 수도 있겠죠. 그동안 억눌렸던 것들을 비판하는 노래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요?

이해연 : 비판하는 가사를 쓰라면 저도 진짜 멋있게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소연 : 해연 씨도 멋있게 쓸 거 같아요. (웃음) 오늘 시간에는 두서없이 남한 노래, 북한 노래 이야기를 많이 했잖아요. 이쯤에서 청취자분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남한 음악을 한 곡씩 소개하며 마무리하면 어떨까요?

이해연 : 솔직히 마음 같아선 최근 남한 신곡을 다 들려주고 싶어요. 메모리에 저장해서 보내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니까 한 곡만 추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노래 제목은 '한숨'입니다. 가수는 이하이 님이고요. 젊은 여성 가수입니다. 가사를 읽어드릴게요. 가끔은 실수해도 돼/누구든 그랬으니까/괜찮다는 말/말뿐인 위로지만/누군가의 한숨/그 무거운 숨을/내가 어떻게/헤아릴 수 있을까... 누구나 살면서 실수하잖아요. 북한에서 살 때는 실수는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남한에 와서 생각이 바뀌었는데요, 실수한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을 많이 쌓는다는 의미입니다. 실패가 잘 못 된 것이 아니니 조금 잘 못 했다고 좌절하지 마세요. 그래서 내 또래들에게 꼭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박소연 : 제가 소개하고 싶은 노래는 김진호 가수가 부르는 '가족사진'입니다. 노래에 담긴 내용을 보면 철이 없는 아들이 어른이 되어 부모님을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현실에 던져진 나는/ 철이 없는 아들이 되어서/ 이것 저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있네… 남한에 와서 '나도 부모의 삶이 처음이야'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북한에서 살 때는 부모는 무조건 막힘이 없고 무엇이든 해결해야 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식들을 굶겨 죽이지 않는 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부모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았어요. 고향에선 가족사진을 보면서도 한 번도 부모님께 고맙다는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습니다. 뭐가 뜻대로 안 되면 '엄마는 이렇게 안 해줄 거 왜 나를 낳았어' 이렇게 얘기했고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아버지 엄마도 부모로서의 삶이 처음이라 얼마나 깨지고 망가졌을까? 그래서 이 노래를 꼭 소개해 드리고 싶고 청취자 여러분들도 부모님들이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고, 당신들을 위해서 이렇게 살아오셨다는 걸 알고 감사함을 늦기 전에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할 말은 많지만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시간에 더 좋은 얘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고요. 함께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해연 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