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안녕하세요. 남한엔 북한에서 들어보지 못한 말들이 정말 많아요. 그중에도 중년 아줌마들은 뻑 하면 ‘나 갱년기야’ 하는데 혹시 들어보셨어요?
이해연 : 당연하죠. 선배님은 그럼 사춘기라고 들어보셨어요?
박소연 : 그럼요! 아들이 있는데… (웃음) 남한에서는 많이 들어봤고 북한에서는 소설책으로만 봤어요.
이해연 : 사춘기는 청소년들이 아동기를 벗어나면서 큰 변화를 겪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어요. 좀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신체적 변화와 뇌의 변화를 함께 겪는 시기이고 사춘기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반항은 뇌의 성장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네요.
박소연 : 사춘기 아이들의 반항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들었지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열이 납니다… (웃음)
이해연 : 북한에는 사춘기란 개념은 없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누구나 사춘기를 겪었을 거예요. 그때를 생각하시면 좀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소연 : 해연 씨는 사춘기란 말을 남한에서 처음 들어봤어요?
이해연 : 네, 북한에 있을 때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진짜 신기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북한에 사춘기가 없는 건 아니죠. 그냥 그 명칭만 없을 뿐… 그리고 북한에서는 사춘기라고 해서 대접을 받지 못하지만 남한은 사춘기 아이들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사춘기 애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학교나 사회에서 많이 노력해요.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TV 프로그램에서도 사춘기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을 소개해 주고 있어요. 남한에 온지 얼마 안 돼서 북한 출신 지인을 만나러 그 집에 간 적이 있어요. 지인에게 딸이 있는데 고등학교 학생이더라고요.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딸은 한 번도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갑자기 방에서 소리가 나서 누가 있냐고 물었더니 딸이 방에 있다고 했어요. 손님이 왔는데 왜 나오지 않느냐고 했더니 ‘사춘기니까 건들면 안 돼, 하루 종일 저러고 있다가 밥 먹을 때랑 화장실 갈 때밖에 안 나와’ 이러는 거예요.
박소연 : 그 말 듣고 놀라지 않았어요?
이해연 : 놀랐죠! 북한 같으면 딸이 손님이 왔는데도 방에서 안 나오고 틀어박혀 있으면 매 맞죠. (웃음) 한편으로 사춘기 딸을 배려해 주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박소연 : 해연 씨는 북한에서 사춘기라는 말을 아예 몰랐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생각해 보면 사춘기를 겪기는 했죠?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잖아요?
이해연 : 분명 있었어요. 반항심도 컸고 부모님 말씀은 다 안 좋게 생각했어요. 혼나고 집을 나가서 친구 집에서 자고 오기도 했어요. 엄마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왔는데 솔직히 제가 옆에서 듣고 있었거든요. 친구에게 없다고 말하라고 시켰어요. 그때는 그런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지 못했고 오히려 엄마랑 대화가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죠. (웃음) 선배님은 사춘기를 어떻게 보내셨어요?
박소연 : 저희 때는 전화기가 있는 집이 거의 없었어요. 엄마와 대화가 안 되면 ‘우리 엄마는 정말 앞뒤가 꼼꼼 막힌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북한 부모들은 자식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무작정 때렸죠.
이해연 : 저도 많이 맞았죠. (웃음)
박소연 : 그렇죠. 사춘기에는 더 많이 맞았어요. 그때는 부모님에게 대답질(대꾸)을 했어요. 부모가 말하면 들은 체라도 해야겠는데 핏줄을 세우고 대답질하는데 부모들도 참지 않더라고요. 매를 맞다가 이렇게 버티다 머리카락이 한 오리도 남지 않을 것 같아서 빛의 속도로 도망쳤어요. 그리고 집 뒤에 있는 텃밭에 옹크리고 앉아서 창문으로 집안 상황을 살폈어요. 마침 아버지가 퇴근해 오셨고 잠시 후에 골목골목 다니면서 딸을 찾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대로 숨어있었어요. 좀 더 기다려 보자… 아버지 목소리를 들으니까 괜히 서러워졌어요. 그때 엄마랑 사이가 안 좋아진 것이 나중에까지 이어졌지만, 그때는 사춘기라는 게 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성장했습니다.
이해연 : 그때는 친구들과 노는 것도 엄청 좋았습니다. 북한도 잘 놀잖아요. 학급 애들이 모여서 노는데 밤에 나가겠다고 하면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아침에 나갈 때 미리 옷이랑 다 챙겨 가지고 나가서 숨겨 놓죠. 그리고 밤에 나올 때는 집 가까운 곳에 놀러가는 것처럼 위장하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나와요. 그런 식으로 갑자기 없어진 아이가 안 들어오니 엄마는 또 찾으러 다니고… 그때는 전화를 잘 받지도 않아요. 사춘기에 저도 부모님 속을 많이 썩이게 했던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저는 사춘기 때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있었어요. 저는 연애를 하고 싶었고… (웃음) 그 아이랑 만나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항상 학교 철봉대 밑에서 만났는데 저녁이 되야 만날 수 있잖아요? 근데 엄마는 8시 이후에는 못 나가게 해요. 그럼 어떡하겠어요. 구정물이 차지도 않았는데 물도랑에 버리는 척 들고 나가요. 그러면서 옷을 돌돌 말아 갖고 나와 창고에 감추죠. 다음엔 옆집 놀러 간다고 나와서는 그 옷을 갈아입고 귀에서 바람 소리가 들릴 정도로 학교 철봉대 밑으로 뛰어갔어요. 혁명 임무를 그렇게 수행했으면 영웅이 됐을 거예요.(웃음)
이해연 : 공감합니다. 저도 똑같은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북한에서 연애하면 지정된 장소가 있잖아요. 사춘기는 신체적 변화도 있고 궁금한 게 많아지는 시기이니까 연애도 자연스러운 건데 북한 부모들은 왜 그렇게 단속했는지 모르겠어요.
박소연 : 그러게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과거를 다 잊어버리고 그때 했던 행동들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나쁜 버릇이 있더라고요. 그 사실을 아들이 남한에서 사춘기를 겪으면서 느꼈어요. 남한에는 사춘기에 ‘중2병’이라는 것도 같이 겪어요. 남한에는 남한의 중학교 2학년들이 무서워서 북한이 전쟁을 못 일으킨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사춘기는 질풍노도의 시기입니다. 북한 아이들은 사춘기에도 자기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해요. 생리적으로 오는 감정을 드러낼 때마다 부모님과 선생님들부터 제압을 당하죠. 남한에서 부모들이 사춘기 아이들을 이해하고 감정을 받아주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콧방귀를 뀌었어요.
이해연 : 사춘기 아들과 대화해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인터넷에 올리더라고요.
박소연 : 저도 인터넷에서 그 비슷한 질문 많이 봤어요. 처음에는 머저리 같다고 생각했어요. 자기가 낳은 자식과 말도 함부로 못 한다고? 많이 놀랐어요. 그런데 사춘기 아들과 부딪치면서 이해가 되더라고요. 나는 세상에서 우리 아들이 제일 착한 줄 알았어요. 결코 그렇지 않았어요. 사춘기가 오니까 얼굴에 벌겋게 여드름이 생기면서 말이 짧아져요. 엄마가 물어보면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짜증도 많아졌어요. 중요한 것은 방에 들어가면 나오지 않고 문을 열어놓으라고 하면 항거하듯 쾅 하고 닫아요. 그래, 사춘기가 왔으니까 나도 남조선 엄마들처럼 이해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한계가 있는 거예요. 드디어 아들과 붙었죠. 조국 해방 전쟁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아들은 학원에 갔다고 엄마한테 거짓말을 하고 그 시간에 게임방에 있었어요. 엄마는 힘들게 벌어서 학원비를 내고 있는데... 제가 너무 화가 나서 얘기를 하자고 했더니 북한에서는 ‘반뽀’라고 하죠? 반항을 하는 거예요. 지어 ‘날 좀 놔둬, 나도 숨이 막혀’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솔직히 공포를 느꼈어요. 압록강을 건널 때도 느끼지 못했던 공포를 아들한테서 느꼈다니까요. 나도 세상을 처음 살아보고 사춘기를 모르고 보내다 보니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어요. 북한식으로 아들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쳤어요. 그랬더니 정말 당당하게 집을 나가요. 아들이 나가자마자 현관 비밀번호를 바꿨어요. 앞이 캄캄해졌어요. 자식한테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이렇게 살고 있나 자괴감이 들면서 인터넷에 글을 올린 사람들의 마음에 완벽히 공감했습니다.
이해연 : 그래도 남한에서 사춘기를 겪는 학생들은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집집마다 애들 방이 따로 있고 식구들과 분리된 공간이 있어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북한은 방이 따로 없잖아요. 한 가족이 같은 공간에서 살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보기 싫어도 갈 데가 없어요. 밖에 나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때는 혼자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시기를 겪어봤고 선배님도 겪어보셨으니까 알잖아요? 부모들만큼은 아니지만 아드님도 생각이 있을 거예요. 잠시 가만히 두면 알아서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박소연 : 혜연 씨도 저 같은 상황이 돼보세요, 정작 본인이 그 일을 당하면 당황한다니까요. (웃음)
이해연 : 선배님도 그 나이에 부모님 속 태운 적이 있다고 방금 얘기하셨잖아요! 과거를 생각하며 이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결국엔 제가 아드님 편을 들게 되네요. (웃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속담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지나간 일은 생각하지 못하고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잘난 체한다는 뜻인데요. 제가 사춘기 때 어머니는 “나는 어릴 때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착했는데 재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꾸짖었습니다. 그런데 저 역시 아들에게 어머니가 저에게 했던 그 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여러분! 남한에서는 사춘기를 완벽히 이겨버리는 강력한 시기가 또 있습니다. 북한 어머니들도 모두 한 번쯤은 겪는 겁니다. 바로 갱년기인데요.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갈께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이현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