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시작합니다.
박소연 : 몇 해 전 북한에서 압록강 두만강이 범람하면서 강 옆의 살림집들이 큰물에 떠내려갔어요. 당시 북한당국이 이례적으로 수해민(수재민)들에게 새 아파트를 지어 배정했어요. 그런데 새 아파트가 지어진 곳이 산밑이고 상하수도 시설도 없이 지어진 겁니다. 이렇게 되면 주민들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강에서 물을 길어다 먹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다시 물에 잠기는 한이 있더라도 살던 자리에 집을 지어줬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어요. 평양은 무너진 자리에 고급 아파트를 지어주지만 지방은 달라요. 이것만 봐도 평양과 지방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해연 : 큰물에 떠내려간 자리에 집을 지어달라고 하는 주민들의 마음도 이해가 될 것 같아요. 강 옆도 불안하지만 장마철에 산사태도 심해서 산 밑에 사는 주민들도 늘 불안한 맘으로 살잖아요. 집이 무너져도 보상은 계층에 따라 차별이 심한 것 같습니다. 평양 아파트는 간부들이 많이 살아서 바로바로 지어주지만 지방은 수해 당시 빈 몸으로 나온 사람들이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한지에 나앉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박소연 : 2017년 쯤에 북한에서 수해 때문에 탈북한 분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 분 설명으로는 북한 당국이 100명이 넘는 수해민들을 인근 지역 학교 강당에 집단으로 모아놓고 구멍 난 인민군대 담요를 한 장 주고는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열악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당국에 대한 수해민들의 불만이 점점 높아졌다고 해요. 그 중 한 주민이 '야, 이럴 바에는 우리 다 같이 남조선 가자' 그랬다고 해요. 탈북이라는 말은 가족에게도 쉽게 꺼내지 못하는 비밀인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얘기가 나왔을까요.
이해연 : 그래서 그분들은 어떻게 됐어요?
박소연 : 수해민 7명이 함께 탈북해 남한으로 왔다고 했어요. 탈북하자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던 거죠. 기록 영화를 보면 북한 노동당이 수해민에게 집을 지어주고, 당 중앙위원회 일꾼들이 그곳을 방문해 새집 받을 걸 축하하는 장면이 나와요. 알고 보면 그것도 다 형식적인 겁니다. 새집에 입사한 주민들이 벽을 막대기로 찔렀더니 금방 구멍이 났다는 얘기도 있었고요. 한마디로 대충 지어서 회칠만 해놓은 거예요. 그러면서 국가가 수해민들에게 최고의 보상을 해줬다고 선전하고 있어요.
이해연 : 국가가 인민들을 위해 헌신한다는 모습을 형식적이라도 보여주는 게 목적인 것 같습니다. 사실 북한은 낡은 아파트나 산 밑의 집들을 철거하고 새로 아파트를 지을 때 주민들이 직접 시멘트나 자갈, 벽돌을 나르고... 지어는 부족한 벽돌을 각 세대 당 몇 개씩 할당하여 직접 찍어서 내라고 하고 있어요. 아파트를 짓는 일도 정부가 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많은 노력이 들어가 완공이 되는 겁니다.
박소연 : 10년 전에도 북한 당국은 해마다 세대 당 진흙으로 만든 토피 벽돌을 얼마 씩 내라고 주민들에게 부담했어요. 토피 과제 때문에 산에서 진흙을 파다가 인명 사고도 나고, 비가 오면 진흙으로 지은 살림집 벽면이 무너지는 일도 종종 있었어요. 사실 이 방송을 시작할 때는 좀 우울했어요.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주차장이 무너지고 보상이 어쩌고… 그런데 지금은 북한의 열악한 상황이 떠오르면서 아파트에 들어가기 전에 문제가 발견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해연 : 선배님이 긍정적으로 생각하셔서 다행입니다. 이미 일어 난 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만 하면 스트레스 쌓입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남한은 사고에 대한 보상은 당연한 문제로 취급되지만 북한은 사고 보상 문제에서 개선해야 할 문제들이 많죠.
박소연 : 남한도 보상 문제에서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갈 길이 멀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북한은 재산권의 존중은 물론이고 생명 존중에 관한 보상에서 아직도 많은 차이가 납니다. 북한은 아파트 붕괴 사고로 300명이 죽었는데도 피해자 가족들에게 아파트를 다시 지어준 사실을 마치 큰 보상해준 것처럼 선전했죠. 그렇다면 사고로 사망한 300명에 대한 보상은 없었고요. 생명에 대한 보상을 가장 크게 보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북한은 생명의 가치를 너무 낮게 보고 있어요.
이해연 : 당연히 받아야 되는 보상도 못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집을 철거하고 새 아파트를 지어 배정할 때 가족 중에 중국이나 남한으로 간 가족이 있으면 아파트 배정이 취소됩니다. 남아있는 사람이 무슨 죄냐고요! 가족이 남한에 갔다고 남아있는 가족들을 처벌하면 그 사람들은 어디서 사나요?
박소연 : 10년 전에도 산 밑의 집들을 철거하고 아파트를 지었는데 행불자 가족들에게는 미리 통보하지 않았어요. 같은 인민반에 행불자 가족과 10호 가족이 있었어요. 북한에서 10호 가족은 토대가 좋은 사람들을 말해요. 10호 가족은 한 집에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사는 경우 새집을 두 채나 배정했어요. 반면 행불자 가족은 입주 두 달 전에 집 배정이 취소되었다는 사실을 통지해줘서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때 만해도 행불자 가족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안 하고, 오히려 죄를 지었으니까 국가에서 주는 아파트에서 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해연 : 정말요? 저는 선배님과 완전히 달리 생각했습니다. 국가가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잘 돌봐줘야 탈북하지 않을 거잖아요. 그렇게 하면 저 같아도 불만이 쌓여서 이 나라에서 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마약을 했거나 사람을 죽이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무조건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고 생존을 위해 밀수를 하거나 탈북하는 주민들을 이런 방법으로 차별하고 처벌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박소연 : 사람을 죽이고 마약을 하는 행위는 당연히 법적으로 처벌을 받아야 되고, 그에 관한 보상 따위를 논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정부가 주민들이 불법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지도 않고 계속 옥죄면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불법인 줄 알면서 밀수도 하고 탈북할 수밖에 없어요. 탈북자 가족들이 도움을 받으려고 몰래 남한과 전화를 하다가 들켜서 감옥에 가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 모든 것은 북한 현행법상으로는 죄지만 실제 사정을 들여다보면 죄가 아니라는 거죠.
이해연 : 저도 그게 왜 죄가 되는지 정말 이해가 안돼요. 정말 북한 주민들은 국가로부터 경제적인 보상을 받아야 되는 것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피해 본 것도 청구해서 보상받아야할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저는 몇 년 전에 북한에 계시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화로 들었는데 묘소에 갈 수가 없는 거예요. 아버님 임종도 보지 못하고 술 한 잔 부어드릴 수 없는 현실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또 손자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인데도 손자를 볼 수가 없고, 심지어 직접 안아볼 수도 없는 아픔을 경험하면서 안타깝고 원통하고 서러웠습니다. 어떤 걸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절망은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어요. 정말 앞으로 북한 정권에 받을 보상이 너무 많습니다. 통일만 되면요, 육하원칙에 맞게 서류를 만들어서 전부 보상받을 거예요!
이해연 : 저도 함께 나설 겁니다.
박소연 : 자… 우리 우울한 얘기로 방송을 끝낼 수 없으니 우리가 반대로 보상해 주고 싶은 사람을 한번 생각해 볼까요?
이해연 : 사실 국가가 해줘야 하는데… 제가 한다면 저의 부모님이 아닐까 싶어요.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어리기도 해서 잘 몰랐는데, 지금은 또 멀리 떠나왔고 나이도 차고 해서 마음도 많이 컸나 봐요.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많아졌어요. 부모님들이 고생하셨잖아요. 그것에 대한 보상, 돈으로 다 보상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지금 북한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경제적인 도움이 절실하니까요. 조금이지만 용돈이라도 드려서 편안하게 사시게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박소연 : 그 보상은 지금도 계속하고 계시잖아요.
이해연 : 이미 진행 중이긴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좀 뿌듯하네요.
박소연 : 그러시겠네요. 저는 막내 여동생에게 해주고 싶어요. 아버지, 어머니를 형제들을 대신해서 끝까지 모시고 있었거든요. 아버님 임종도 동생이 지켜줘서 너무 고마워요. 할 수만 있다면 대출받아서라도 경제적으로 좀 괜찮은 집도 하나 사주고 싶고, 그리고 두 번째로는 북한에 살고 있는 큰아들한테 중고 화물차라도 사줘서 살아갈 수 있게끔 보상을 해주고 싶은 게 지금 저의 꿈이에요. 그러기 위해서 결론은 뭐겠어요?
이해연 : 돈을 많이 벌어야겠네요. (웃음)
박소연 : 맞아요. 그래도 우리가 남한에 온 덕분에 부모 형제를 경제적으로도 보상을 해주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 다행일까요?
이해연 : 우리가 북한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한에서도 돈 벌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끔은 북한 가족들이 여기 실정을 잘 모르다 보니 그냥 돈을 찍어서 보내는 걸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박소연 : 땅바닥에 떨어진 돈을 그냥 줍는다고 생각하는 북한 분들도 계신대요. (웃음)
이해연 : 무엇보다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힘들게 번 돈이지만 보내드리는 현실을 말하고 싶어요. 북한의 가족들도 언젠가는 우리가 보내는 돈의 가치를 알아주시리라 믿어요.
박소연 : 당연히 우리의 진심을 알게 될 겁니다. 저는요, 통일이 되면 6톤급 화물차에 라면을 가득 싣고 가서 내가 살던 동네 사람들에게 그냥 나누어 드리고 싶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내가 받는 보상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뿌듯함이랄까? 이런 따뜻한 마음을 안고 오늘 방송을 마치려고 합니다. 함께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해연 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녹음, 제작, 에디터: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