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북한 가을산에 개구리가 돌아온 이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룡악산에 이채로운 가을 풍경이 펼쳐졌다"고 지난 3일 보도했다. 평양시 만경대구역에 위치한 룡악산은 산봉우리의 모습이 용처럼 하늘을 향해 나는 듯하여 그 이름이 붙었으며 '평양의 금강산'이라고도 불린다.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룡악산에 이채로운 가을 풍경이 펼쳐졌다"고 지난 3일 보도했다. 평양시 만경대구역에 위치한 룡악산은 산봉우리의 모습이 용처럼 하늘을 향해 나는 듯하여 그 이름이 붙었으며 '평양의 금강산'이라고도 불린다.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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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북한의 가을풍경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마른 풀대가 있어요. 북한에서는 '다부지'라고 불렀어요. 가을이면 동네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산등성이를 걸어 내려오는데 사람은 안 보이고 다부지만 보여요. 먼 곳에서 보면 다부지 뭉치만 솜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면 다부지를 멘 사람이 조그맣게 보이죠. (웃음) 다부지를 벨 때 나는 풀 냄새가 너무 좋아요. 생각해 보면 북한 가을이 다 나쁜 기억만 있는 건 아니네요. 해연 씨, 혹시 가을에 산에서 콩 청대 해보셨어요?

이해연 : 당연하죠. 콩 청대하고 거기에 남자들이 소변을 보기도 하죠.

박소연 : 맞아요. 콩 청대가 다 익으면 남자들이 웃옷을 벗어서 바람을 일으키잖아요. 그러면 콩깍지가 다 날아가고 밑에 불에 익은 고소한 메주콩만 남아요. 그때부터 여자고 남자고 할 것 없이 콩을 골라 먹고, 그러고 나면 입 주변이 새까맣게 화구가 되죠. (웃음) 북한 당국도 항상 산불을 조심하라고 하는데요. 산에는 물이 없으니까 콩 청대가 끝나면 남자들이 거기다 오줌을 싸서 불씨를 꺼요. 땅에는 아직 덜 찾아 먹은 콩이 남아있는데도 말이죠. 나중에 이삭 줍던 아줌마들이 그 주변을 지나다가 그렇게 남은 콩을 주워 먹기도 하죠. 이상하게 찝찔한 맛이 느껴지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면 거기 오줌을 싼 거죠. (웃음) 질겁을 하면서도 다들 한바탕 웃고 말죠. 오줌도 보약이라며 웃어넘기던… 그런 게 북한 가을의 향수이자 정취였던 것 같습니다.

이해연 : 네, 생각해보니 북한의 가을은 단풍 구경이 아닌 밭에 가서 콩 청대를 즐기는 계절이었던 것 같아요. 남한에는 산에서 콩 청대를 하시는 분들은 없고 대신 가을에 단풍 구경도 가지만 캠핑 가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박소연 : 산에 가서 천막 치고 지내는 것 말이죠?

이해연 : 네, 거기 가서 저녁에 장작불을 피우고 장작이 타는 소리도 듣고, 불꽃을 보면서 즐긴다고 하더라고요.

박소연 : 불멍이라고 하죠.

이해연 : 저는 아직 못 해봤는데 그렇다고 아직 해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웃음) 북한에서 많이 해봤는데요 뭘!

박소연 : 그런데 저는 처음에 북한 주민들은 목적이 있어서 불을 때지만 단순히 불꽃을 보며 즐기겠다고 멀쩡한 나무를 괜히 태우는 남한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됐습니다. 막 욕 했죠. 남조선 사람들 한 줄에 땡땡 묶어서 북한에 가서 한 달만 살고 오게 한다고 막 그랬죠. 그런데 5년 정도 지나서 였던가? 저도 캠핑 가서 불멍을 해보니까 왜 하는 줄 알겠더라고요. 너무 좋았습니다. (웃음)

이해연 : 북한에서 가을 콩 청대는 어쩔 수 없이 일하러 갔다가 하는 것이잖아요. 그렇지만 남한은 단풍을 즐기고 불멍을 하려고 일부러 산에 가는 거죠. 확실히 가을을 즐기는 남북 주민들의 방법이 다른 것 같아요.

박소연 :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 생활을 얘기하면 7~80대 어른들한테서 항상 듣는 얘기가 있어요. 우리도 옛날에 그랬었다고요. 그러니까 북한에서 지금 겪고 있는 삶들이 남한의 30년 전하고 똑같은 거예요.


이해연 : 사실 남한에서 가을은 감성적인 계절인데 북한은 그렇지 않잖아요? 북한에서는 감성적이라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겨울 준비로 바빠서 감성을 누릴 새가 없이 바쁜 계절이란 점에서 남북의 가을은 많이 다릅니다.

박소연 : 북한에서 가을은 궁둥이에 불이 달린 계절이죠. 미처 가을걷이를 못 하고 겨울을 맞이하면 농작물이 밭에서 다 얼어요. 그래서 가을에 감성적인 얘기를 하면 미친 사람 취급 받는 거죠. 추우면 모든 게 다 얼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가을이 사계절 중에서 가장 바쁜 계절인 거예요.


이해연 : 그래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북한에서도 가을에 대한 좋은 추억이 있네요.

박소연 : 그러게요. 향수가 있었네요. 가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고향의 추억이 생각납니다. 가을에 북한에는 계곡마다 기름 개구리가 가득해요.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개구리를 많이 사갔잖아요. 그런데 수십 년 동안 개구리를 너무 많이 잡아서 농촌에 개구리가 별로 없답니다. 개구리를 잡으러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항일 혁명 투사가 돼요. 배낭 메고 반두를 지고 산골짜기로 들어가요. 한 명이 계곡물에 들어가 위에서부터 돌을 다 들춰요. 그러면 놀란 개구리들이 아래로 내려오고 그때 밑에서 반두로 잡는 거예요. 밤에는 개구리 잡느라 불을 밝힌 사람들로 산골짜기가 인간 불바다가 돼요. 그런 풍경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이해연 : 그 계절이 아니면 개구리를 잡을 수 없으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열성을 다해 잡는 거잖아요.

박소연 : 맞아요. 그런데 어르신들은 그렇게 개구리를 다 잡으면 내년 농사 안된다고 핀잔을 주죠. 중국에서 개구리를 많이 사가면서 북한 농촌에서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기 힘들게 됐어요. 그런데 최근에 코로나 여파로 국경이 막히면서 농촌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해연 : 코로나 덕분에 북한 개구리를 중국으로 못 보내니까 다행히 자신의 몸보신을 좀 하네요. (웃음)

박소연 : 맞아요. 제가 탈북하기 전까지 농촌 장사를 했잖아요. 가을에는 정말 장사가 잘돼요. 잡화상이라고 하죠. 팬티 고무줄, 사탕, 머리핀, 참빗 등 온갖 물건들을 도매로 사서 한 배낭 짊어지고 농촌에 가서 작물과 맞바꿔요. 가을만 되면 농촌 사람들도 인심이 좋아져요. '가을이라 내가 인심 쓴다'고 무게를 뜰 때, 감자 서너 알을 더 얹어 주죠. 뒤에서 남편이 '너 그러다 봄날에 몇 끼 굶는다'고 핀잔을 줘도… 저는 이런 가을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이해연 : 저는 가을이 좋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 했어요. 항상 겨울 준비 때문에엄마를도와야했고, 학교다닐때는거의매일동원을나가는가을이싫었어요. 농촌 동원을 가서 일해도 수확한 감자가 우리 집으로 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얻는 것이 없기 때문에 가을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옛날얘기를 하면서 생각해 보니까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긴 했는데 그때는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얘기하다 보면, 오늘 중으로 북한 얘기가 끝나지 않을 것 같네요.

박소연 : 그러게요. 북한의 가을 얘기는 누군가 말려야 그만둘 것 같아요. (웃음)

이해연 : 남한 사람들이 단풍 구경도 가고 캠핑 가서 불멍한다는 얘기도 했는데, 남한 분들이라고 다 단풍놀이를 좋아하고 가을을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청소를 하시는 분들을 남한에서는 환경미화원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미화원이라고 하길래, 끝에 '원'이란 말이 붙으니까 무슨 휴식하는 좋은 곳인 줄 알았어요. 어쨌든 그분들은 단풍 들면 많은 나뭇잎들이 떨어지게 되고 그걸 청소해야 하니 가을이 별로 반갑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네, 제가 사는 아파트에도 경비원 할아버지들이 계시잖는데요. 오늘 아침에도 북한에서 전기톱에서 나는 엔진 소리 같은 거 있잖아요? 부릉부릉하는 거, 그런 기구를 들고 다니면서 바람으로 길을 청소하시는 거예요. 저는 남한에 와서 아직 싸리비를 아직 본 적이 없어요! 기껏 본 거라곤 풀 색깔 나는 플라스틱 빗자루입니다. 남한 정착 초기에 가을에 공원에 한 번 놀러 갔었는데,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빗자루로 길을 힘들게 쓰시느라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여서, 북한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저로서는 '저 할아버지 정말 힘들겠다'라고 하니까, 같이 갔던 옆의 지인이 남한 분이었는데 '저분도 그래야 직업을 잃지 않아요'라고 하는 거예요.

이해연 :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박소연 : 그분이 농담처럼 얘기했고 저는 그 말이 좀 지나치게 차갑게 들렸지만 일면 맞는 얘기입니다. 북한은 단풍이 떨어지면 전체 인민이 다 나가서 쓸어야 하잖아요.

이해연 : 남한은 무상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거죠. 뭘 하든지 로임을 받으니까…

박소연 : 그렇죠. 대가가 주어지는 일을 하고 있죠. 그래도 단풍을 감상하며 즐기는 우리보다 청소하는 분들은 '아유, 이제 그만 떨어져라. 뭐가 이렇게 단풍잎이 많냐?' 그런 마음일 것 같습니다.

이해연 : 우리가 단풍 얘기 시작해 가을 얘기를 많이 했잖아요. 저도 남한에 와서 처음에는 단풍을 찾아가서 즐길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런데 올해부터는 단풍을 직접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찾아가 본 거였습니다. 남한 사람들과 함께 단풍을 즐기며 올가을참좋은추억을하나남겼습니다.

박소연 : 남한에선 대부분 사람이 가을 단풍 보러 간다면 검색하죠. 설악산, 오대산, 북한산 등 검색한 장소를 찾아가는데 가끔은 특정한 목적지가 없이 우연히 가다가 맞닥뜨린 풍경이 더 아름답고 예쁠 때도 있습니다. 몇 시간을 걸려 단풍을 보겠다고 찾아간 설악산 앞이 너무 막혀서 돌아오면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는데요. 저는 이게 우리의 삶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목적을 정해놓고 사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흘러가는 대로 순리대로 살다가 우연히 맞닥뜨린 달콤한 행복도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마주친 즐거움과 행복이 더 크지 않을까요?

이해연 : 그것도 남한이라서 가능한 얘기죠. 그렇지만… 우리도 지금 북한 얘기를 하다 보니까 그때의 힘들었던 일들이 추억이고 나름의 향수가 있다는 것을 느끼잖아요. 언젠가는 변화가 오겠죠. 그때 가서 지금의 이 고생을 추억할 것을 희망하면서 오늘 하루 힘든 가운데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하루를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소연 :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다 그런 의미가 있다'라는 남한 노래 가사가 있습니다. 지금의 힘든 삶도 시간이 지나서 좋은 시절이 왔을 때는 추억으로 기억될 겁니다. 그 날이 멀지 않기를 바라면서 오늘 방송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함께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해연 씨도 수고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녹음총괄, 제작, 에디터 : 이현주

웹팀 :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