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내가 남한 회사에서 매일 커피를 탄 이유

사진은 캡슐형 커피머신.
사진은 캡슐형 커피머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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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우리는 북한에서 매일 직장 사람들하고 몸을 부대끼며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직장동료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남편이 한 달에 술을 몇 번 먹는지도 다 알 정도였어요. 그런데 남한은 각자 맡은 일을 해요. 그래도 한 공간에서 같이 일하다 보면, 서로 부딪힐 때가 있고 마음에 안 들어 거슬릴 때가 있어요. 남한 정착 2년 정도 지났을 때 같이 일하는 분이 용변을 보고 물을 항상 안 내려요. 내가 이걸 말을 해줘야 하나 고민이 되면서 주저할 때가 많았어요. 북한 같으면 별걸 다 가지고 그런다고 오히려 뭐라 하죠. 어쨌든 그런 일이 자주 반복이 되니까 스트레스가 쌓이는 거예요. 더구나 그 사람은 나한테 네이버에 검색해 보라는 사람이었어요. 어느 날 회사에 그분과 단둘이 있게 된 겁니다.

이해연 : 결국엔 말씀하신 겁니까?

박소연 : 했죠. 그런데 그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 죄송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하더라고요. 그 일을 계기로 남한 사회 생활을 배웠어요. 직장 안에서 오가는 말도 어떻게 하느냐, 또 환경에 따라 상대를 자극할 수도 있고, 감동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이후로 4년 동안 직장이 없어질 때까지 그분과 함께 일했고, 지금도 종종 연락하며 살고 있어요.

이해연 : 좋은 경험 하셨네요. (웃음) 저는 직장에서 일할 때와 친구들 만날 때는 말투가 다르거든요. 저도 그걸 느끼죠. 고향 친구들에게는 편하게 말해요. 가끔 직설적으로 얘기해도 친구들은 상처를 안 받지만 직장에서 같이 일하시는 분들에게는 더 예의 있게 행동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출근 시간이 5시라고 하면 꼭 5시에 맞춰서 나가는 게 아니라, 5분 더 일찍 나갔어요. 가끔은 10분 일찍 나가서 유니폼을 입고 일하면 사장님도 엄청 좋아하고요. 내가 그렇게 잘 지키는 모습을 보이니 상대방도 다른 일에서도 도움을 더 주려고 하는 게 느껴져요. 확실히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제가 남한에서 제일 많이 들었던 게 남한 직장은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이 힘들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해요. 남한의 대부분 회사는 회의를 통해 각자의 의견들을 듣고 종합해요. 가끔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게 내 기준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계속 주장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그걸 강하게 반박했어요. '그딴소리 하지 마십시오.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되받았죠. 그런데 남한 사람들은 자기 의견을 주장하기 이전에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공감해 줘요. 북한은 공감이란 말을 안 하잖아요. 오직 내 말이 바르다고 말하죠. 그런 사회 문화 속에서 살다가 남한에 오니까 그것도 또한 자기와의 투쟁인 거예요.

이해연 : 맞아요. 남한 분들은 서로 보는 시각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인정 해주잖아요. 그게 진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꽃 한 송이를 바라볼 때도 나는 그 꽃이 예쁘고 선배님은 안 예쁠 수 있어요. 그런데 내가 예쁘다고 상대에게 똑같은 입장을 강요하면 상대방을 전혀 존중 안 해준다는 거잖아요. 서로 보는 시각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 준다면 싸울 일이 없겠다는 것을 느낀 것 같아요. 내 의견이 중요하면 상대방의 의견도 중요하다는 것을 처음엔 인정 안 하고 살았었는데 인정하는 법을 배우니, 오히려 편해졌습니다.

박소연 : 그런데 그게 꼭 정답은 아니에요. 인정해야 할 부분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죠. 학벌도 중요해요. 해연 씨와 제가 회사에 같이 입사했어요. 그런데 저는 대학원을 졸업했고, 해연 씨는 대학을 나왔어요. 이런 경우 초임이 달라요. 남한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죠. 그런데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진짜 이상한 게 남한 회사에서는 월급 얼마 받는지가 거의 일급 기밀이에요!

이해연 : 맞아요. 월급이 비밀이더라고요. (웃음)

박소연 : 월급을 얼마 타는지 묻는 것 자체가 무례하다는 거예요. 회사에서도 번역 작업을 하는 직원이 새로 들어온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노트북에 영어를 몇 글자 쓰는 것 외에 도무지 일을 안 하는 것 같아요. 회사 일은 내가 다 하는데 저분은 월급은 얼마를 받는지 궁금했어요. 나중에 어떻게 알고 보니 그분이 저보다 급여가 3분의 1이 더 많은 거예요. 그다음부터 어떡하겠어요! 백두의 혁명 정신이 뿜어져 나오는 거죠. 그래서 대표님이랑 1대1 면담을 하는 중에 그동안 품었던 불만이 밖으로 툭 나와 버린 거예요. '아니 그분은 온 지 몇 달 되지도 않고, 맨날 자기 논문만 쓰는데 월급을 그렇게 많이 주고, 저는 하루에 기사를 몇 개나 쓰는데, 급여를 달랑 이것만 주냐'며 따졌죠. 그랬더니 대표님이 제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냐 그래서 어쩌라는 것이냐 식의 태도인 거예요. 결국, '회사가 이런 식이라면 나는 이런 곳에서 일 못 합니다.'라며 딱 잘라 말하니까 대표님이 나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바로 '네, 알겠습니다.'하고 나왔는데, 막상 나오고 보니까 앞이 새까맣더라고요. 솔직히 월급을 어디서 타서 집안 살림을 유지할까… 회사에서 소지품 박스를 들고나오는 순간 후회했어요. 결론은 대표님께 사과하고 다시 들어갔죠. 그래도 마지막까지 '대표님도 그러시는 거 아니다'라고 할 소리 했죠. (웃음)

이해연 : 그래도 대단하게 할 말은 하셨네요. (웃음)

박소연 : 저는 이 경험을 아는 후배들한테 꼭 얘기해줘요. '어떤 일이 있어도 나가겠단 말을 먼저 하지 말아라. 나가도 어느 정도는 좋게 하고 나가라. 그래야 실업급여도 받는다'. 그게 사회생활인 것 같아요.

이해연 : 저도 선배님 얘기를 들으면서 회사를 나갈 때 절대로 먼저 나가겠다는 얘기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웃음) 아까 선배님이 월급 얘기도 했었잖아요. 그때 누군가와 비교하지 말고 회사와 처음 계약할 때 그냥 나랑 맞으면 일하는 것이고 아니면 내가 안 하면 되지… 대표랑 싸우지는 말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웃음)

박소연 : 맞아요. 사람은 어느 순간에 어떻게 또 만날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좋은 마무리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생활에서 무엇보다 바로바로 표현하지 말아라. 그리고 같이 일하는 동료와는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라는 것이 저의 사회생활 비결입니다.

이해연 : 네, 저는 함께 일하는 분들과 얘기는 하지만 서로 깊숙하게 사생활까지는 물어보지 않거든요. 그러다 보니 나쁜 감정도 없거니와 서로를 지켜주면 좀 더 돈독한 사회를 이뤄갈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그게 바로 직장 동료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라… 이것이죠. 그리고 사회 생활하면서 경험한 또 다른 경험이 있는데, 남한 회사에 취직했을 때 저는 어제 입은 옷을 다음 날 다시 입고 나갔어요. 왜냐하면 북한에서 매일 옷을 다르게 입고 나가면 '저 사람은 칠면조인가?'라고 하거든요. 욕먹습니다!

이해연 : 칠면조라는 게 계속 옷을 바꿔 입는 사람을 말하죠.

박소연 : 북한에서는 매일 옷을 갈아입으면 생활이 건전치 못한 사람이라고 인식해요. 처음에 남한에 와서도 같은 옷을 회사에 이틀간 입고 나갔는데 같이 일하던 분이 그렇게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니면 한국에서는 저 사람, 어제 집에 안 들어갔나… 이렇게 생각한다고 대주는 겁니다! 농담이었지만 제가 약간 충격받았어요. 다음부터는 매일 같은 옷을 안 입었어요.

이해연 : 집 안에 들어가면 남한이랑 북한의 옷걸이(옷장)가 다른 거 아시죠?

박소연 : 남한은 북한의 옷걸이보다 20배는 더 큰 것 같아요.

이해연 : 북한에 있을 때는 옷걸이라고 해봐야 입을 옷 한두 개만 걸어놓고 있는데, 남한에 오니까 그렇게 안 하더라고요. 매일 같은 옷을 입을 수가 없고 또 한 번만 입은 옷을 빨기는 아까우니까 그냥 밖에 걸어 놨다가 옷걸이에 다시 걸어 두는데 꺼림칙한 느낌은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맘에 좀 안 들었는데 이제는 적응해서 잘 입고 다닙니다.

박소연 : 그리고 또 한 가지, 회사에는 커피나 차 등이 마련돼 있어요. 그래서 출근하게 되면 직원들이 자기 취향대로 선택해서 마시는데, 저는 대표님의 커피를 꼭 타드렸어요.

이해연 : 솔직히 저는 조금 충격적입니다… 남녀가 평등하다고 해서 그런 문화가 없어진 지가 언젠데 아직도 여직원이 상사에게 커피를 타 주다니요! 남한에도 과거엔 그런 문화가 있었고 여자 직원들이 우리가 커피 타러 출근했냐고 투쟁해서 그런 문화가 사라졌다고 해요. 근데 그걸 선배님이 다시 하시면 안 되죠. (웃음)

박소연 : 늦었지만 반성합니다… 저는 사실 '커피 타는 게 힘들지도 않고, 그래도 내 월급을 주는 사람인데'라며 감사의 마음으로 탔죠.

이해연 : 월급은 제가 일한 것에 대한 대가로 받는 것이니 커피는 안 타도 되지 않을까요?

박소연 : 당시 저는 생각이 좀 달랐어요. 그때만 해도 아르바이트해도 사장이 돈을 주는 게 정말 감사했어요. '혹시 내가 탈북민이라고 어리숙하게 보고 안 주면 어떡할까'라는 생각도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정직원으로 입사를 하니까 월급을 주는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일한 만큼 주는데도 그 고마움과 감사함이 1년 이상 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한 게 아니라 도덕적으로 나의 감사함을 표시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해연 : 감사함의 표시였네요.

박소연 : 그렇다고 좋은 마음이 다 좋은 건 아니에요. 변해야 하죠. 남한 사람들하고 같이 일하면서 사회와 문화를 배울 수 있어서 저에게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이력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중앙이나 도급 기관을 비롯한 국가 주요 부서에서 일하는 간부들뿐입니다. 그래서 그냥 이력서가 아니라 간부 이력서라고 하죠. 간부 외의 대부분 주민은 노동과에서 배치하는 직장에서 일하면 되니 이력서를 볼 일도, 쓸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작은 시간제 일자리를 지원해도 이력서를 요구합니다. 그러니 탈북민들은 이력서의 빈 칸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합니다. 어떤 탈북민은 학력란에 북한에서 다녔던 학교 이름을 빼곡히 써서 제출했다는데요. 그 뒷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녹음총괄, 제작, 에디터 : 이현주

웹팀 :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