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세계적으로 볼 때 그 나라 경제가 어려우면 우선 노인, 여성, 아이들, 이 세 부류가 제일 고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남북 어르신들의 삶을 비교해 생각해 봤습니다. 남한 어르신들은 개인 재산을 갖고 있어서 경제적으로 탄탄한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그래서 자식들에게 큰소리치며 사시죠. 근데 북한 어르신들은 대부분 경제적인 부가 없어요.
이해연 : 남한은 젊었을 때 돈을 벌어서 노후를 미리 준비할 수 있지만 북한은 그날 벌어 그날을 살아내는 삶을 사니 노후를 준비할 여유가 없는 거죠. 그 차이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맞아요. '노후 준비'란 딱 그 말은 없어도 '내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많이들 하셨죠. 북한에서도 다 알고는 있지만 돈이 없다는 게 문제고요. 남한에서는 정년퇴직하면 어떤 기관에서 일했느냐에 따라서 연금이 죽을 때까지 나오고, 연금 수령자가 사망할 경우 배우자에게 상속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북한에도 공로 보장이나 연로 보장 연금제도는 있지만 형식상으로만 존재합니다.
이해연 : 북한에서 저희 할머니가 연로보장 연금을 받으려고 매달 동사무소로 가셨던 기억이 나요. 통장에 도장을 찍고 연금을 받아오곤 하셨는데 북한 돈으로 몇백 원 정도 받으셨던 것 같아요. 술 한 병도 살 수 없는 돈이지만 할머니는 달마다 연금을 타러 동사무소로 가셨어요.
박소연 : 경제적 능력이 없는 북한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적은 연금도 소중했을 겁니다. 남한 어르신들은 65세 이상이면 국가로부터 노인 연금을 받습니다. 이렇게 국가에서 나오는 연금도 있고, 국가기관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던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어요. 직장에서 월급을 100달러를 받았다고 하면 연금이 60~80%가 나오더라고요. 이렇게 남한 어르신들은 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식에게도 당당해요.
이해연 : 결국 죽음도 삶도 경제와 정말 밀접한 연관이 있고요. 우리가 지난 시간부터 얘기하는 안락사 같은 죽음에 대한 선택도 결국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데 남한에는 그런 여유가 있는 노인 세대가 많이 있기에 이런 논의가 사회적인 화제가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소연 : 북한에서 저는 죽음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장 내 새끼들을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면 주변에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을 것 같아요. 근데 남한에 와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추하게 죽기가 싫은 거예요. 자녀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나도 고생하지 않는 죽음을 맞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연 : 저는 이번 주제에 대해 공부하면서 제가 그동안 한반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박소연 : 해연 씨 나이에 그걸 생각해봤으면 그게 이상한 걸 수 있어요. (웃음)
이해연 : 그런데 안락사, 존엄사… 이런 것에 대해 찾아보면서 점점 무거운 주제로 느껴졌고요, 그래서 제가 선배님한테 문자도 보냈잖아요? (웃음) 그러면서 새로운 걸 하나 발견했어요. 다들 알고 계신 것일 수 있지만 저에게는 진짜 놀라운 부분이었는데요. 죽음에 관한 얘기를 주로 어르신들이 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요즘은 40~50대 분들이 죽음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두는 것 같다는…
박소연 : 그렇죠. 제가 바로 그 나이죠. 이유가 있어요, 40~50대는 부모들의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보잖아요? 그러면서 나의 미래를 고민하는 거죠. 저에 비하면 해연 씨는 많이 빠릅니다. (웃음) 그 나이 땐 죽음을 생각하면 그냥 슬펐어요. 언젠가는 죽겠지만 당장은 피하고 싶었는데 남한에 와서야 조금 달라졌습니다. 죽음에 대한 절망에서 조금 벗어났다고 할까요?
이해연 : 저도 비슷합니다. 북한에서 살 때는 죽음에 대해 막연히 무섭다고만 생각했어요. 근데 남한에 와서는 죽음도 삶의 한 조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받아들였어요.
박소연 : 해연 씨가 남한 문화에 잘 적응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남한 노래에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다'라는 가사가 있는데 처음에는 '야, 저런 게 어떻게 노래 가사가 되냐?'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알몸으로 태어나 죽을 때 정말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잖아요? 그걸 받아들이면 오히려 편해집니다.
이해연 :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청취자분들도 죽음에 대해 너무 슬프게만 생각하지 마시고 소중한 사람이 내 곁을 떠나더라도 좋은 곳으로 가셨다고 생각하면서 편하게 받아들이시면 좋겠어요.
박소연 : 그런데 북한에서 죽음을 절망적이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가 있어요. 주변의 어르신들이 돌아가실 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는 걸 자주 봐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육체적 생명보다 귀중한 게 정치적 생명이라고 강요하는 북한의 정치선전 때문이기도 하고요. 남한에는 가족 중에 누가 죽으면 '하늘에서 만나, 이제 곧 따라갈게… 기다려'라고 말해요. 처음에는 따라 죽겠다는 뜻으로 오해했어요. (웃음) 사실은 그런 뜻이 아닌데... 몇 년 전 북한에서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북한이었다면 울고불고 슬퍼서 통곡했을 겁니다. 남한에서 그 소식을 듣고 계속 하늘을 쳐다봤어요. '아버지가 하늘에 계시니까 훗날 하늘나라에 가면 아버지를 찾아야겠다'라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이해연 : 선배님이 남한에 살면서 죽음을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거죠. 북한은 평소에 하고 싶은 것들을 누리고 살다가 죽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해요. 반대로 사는 동안 정말 힘들게 고생만 하다가 죽으면 주변에서 많이 슬퍼해요. 북한 어르신들은 대부분이 힘들게 사시다 돌아가시잖아요. 하루하루 아등바등하며 겨우 살아가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현생도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간다는 생각에 죽음을 더 절망스럽고 힘들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박소연 : 북한에서는 대부분 힘들게 살다가 돌아가면 '불쌍해서 어떡해'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반대로 잘 사는 집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아이고! 그래도 살아생전에 먹을 거 다 먹고 죽었는데 무슨 아쉬움이 있을까' 그러죠. 남한은 일단 배고플 일이 거의 없잖아요. 나이가 7-80이 넘었는데도 대학에 입학하는 어르신도 계시고, 남한 어르신들은 살아서 해볼 건 다 해볼 수 있어요. 그래서 이승에 대한 미련을 남길 일이 적은 거죠. 북한에서는 사는 동안에 해보지 못한 일들이 수두룩하고 힘들게만 살아왔기 때문에 죽음이 더 절망스럽게 생각하는 거고요. 방송을 마무리하면서 한 번 우리의 생각을 솔직하게 듣고 싶어요. 해연 씨는 이 세상을 어떻게 작별하고 싶어요?
이해연 : 지금 떠오르는 생각은 그냥 아름답게 가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생각한 적이 없어서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품위 있게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합니다. 선배님은요?
박소연 : 사전준비를 잘해놓고 싶어요. 일단 유서를 잘 써놔야 내가 죽은 다음에 아들이 고향에 있는 가족을 찾아갈 수 있으니까요. 또 건강관리를 잘해서 건강하게 죽고 싶고, 70이 넘으면 반드시 책임감 있게 연명치료 거부 신청도 하면서 삶을 잘 정리하고 곱게 죽고 싶어요.
이해연 : 그렇습니다. 주변 가족들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미안한 행동을 하지 말고, 표현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북한 사람들은 잘못했으면 미안하다, 사랑하면 사랑한단 얘기를 잘 못 하잖아요. 이제는 바로바로 표현도 많이 해주고 나중에 눈 감을 때 후회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았을 때 미련이나 미안함을 남기지 말아야겠어요. 알고 보면 삶과 죽음은 결국 연결이 돼 있는 것 같아요.
박소연 : 삶과 죽음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지금을 잘 사는 게 결국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길이란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바람이 있다면 북한에도 죽음에 관해서 다양한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끝으로 청취자 여러분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도 묻고 사랑한다는 표현도 많이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해주고 싶어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