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당비와 맹비의 함정

서울-박소연 xallsl@rfa.org
2022.08.31
[우리는 10년 차이] 당비와 맹비의 함정 사회주의 청년동맹 깃발.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우리가 지난 시간에 얘기한 4대 보험이나 근로소득세이런 것들은 다 월급에 근거해서 내잖아요? 남한에 와서 그게 좀 신기하긴 했어요. 북한에 있을 때는 내 월급이 얼마인지 회사 전체 종업원이 다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똑같거나 거의 비슷하니까. 그런데 남한에서는 월급이 얼마인지 물어보는 것이 실례랍니다. 완전 국가 비밀이더라고요!

 

이해연 : 맞아요!

 

박소연 : 처음에 남한 사람보고 월급 얼마 받는지 물어보니까, 저를 한심한 사람으로 보는 거예요. 나중에 가서 월급을 얼마 타는지 물어보는 것 자체가 실례가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해연 : 저도 살아보니까, 누가 나에게 월급 얼마 받는지 물어보면 말하기 싫더라고요.

 

박소연 : 해연 씨도 지금은 그러는구나어쨌든 남한 사람들은 월급에 목숨을 걸어요.

 

이해연 : 그렇죠.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거니까요.

 

남한 사람들에게 월급 액수는 국가 비밀??

20~30년 방직 공장에서 근무한 탈북민,

자기 월급 기억 못하는 사람 많아

 

박소연 : 북한에서 20~30년 동안 방직 공장에서 기계 돌리고 월급 받은 사람도, 로임이 얼마였는지 물어보면 기억 잘 못해요. 그걸 남한 사람들은 너무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이해연 : 그건 북한 사람들은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액수가 안 되기 때문이에요. 로임에 거의 신경을 안 쓰죠. 남한처럼 월급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면 진짜 눈 밝히고 할 거예요.

 

박소연 : 그렇죠. 남한은 월급, 북한은 로임같은 말이지만 의미는 많이 다르죠. 제가 몇 년 전에 금방 탈북한 분을 만났었는데 북한에서 공로보상을 탔었대요. 그런데 그 돈으로 (노동당) 당비나 (여성동맹, 사회주의 청년연맹) 맹비를 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북한에서 유일하게 국산 돈 사용이 허용되는 게 당비, 맹비라고 했어요. 시장에서는 남새(채소)를 파고 살 때도 중국 돈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이해연 : 그러고 보면 북한에서 말만 세금이 아니지 세금 비슷한 돈을 냈던 적이 많은 거 같습니다.

 

북한의 선전 가요 세금 없는 우리나라

그런데 북한에는 진정 세금이 없었나?

 

박소연 : 북한에 그런 노래가 있잖아요. ‘세금 없는 우리나라

 

이해연 : 말만 세금이 없었지 내는 돈이 너무 많았잖아요. 남한 같은 경우에는 세금을 내면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는 혜택이라도 있는데, 북한은 그냥 내기만 했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도 왜 큰소리 한 번 못 쳤을까요.

 

박소연 : 맞아요. 제가 어릴 때는 남한 국민들이 세금이라는 큰 짐때문에 허리를 못 펴고 힘들게 사는 불쌍한 나라라고 했고 제가 얼마나 남한 사람들을 불쌍하게 생각했는데요. 나는 세금 없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얼마나 행복한가 생각했습니다. (웃음) 그런데 제가 크면서 보니까, 세금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서 그렇지 한마디로 강도들이었던 거예요. 명목상으로만 세금이 아닌 거죠. 한번은 인민반 전기가 나갔어요. 그러면 인민반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공동으로 변압기를 사서 불을 켜요. 그리고 다들 모여서 이런 거는 다 나라가 해줘야 되는 거라고 누군가 불평을 하니까 세금이 없지 않니’… 세금이 없어서 못 해준다는 거죠. 다들 그러면서 약간 비꼬고 그랬습니다.

 

이해연 : 제가 북한에 있을 때도 당비나 맹비 같은 것을 왜 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당원이 되면 다 돈을 내는 것이라는데그럴 바엔 차라리 당원이 안 되는 게 낫지 않아요? (웃음) 괜히 당원이 돼서 돈을 왜 내야 하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노동당 당원이면 당비

여성동맹, 사회주의청년동맹 등에 내야 하는 맹비

당원이 돼서 돈을 내야 한다면

차라리 안 되고 안 내는 게 좋지 않아요?

 

박소연 : 우리 엄마가 21살에 현지(공장 현장) 입당했어요. 지금 말하면 석기돌이(바보). 그때는 모범 선반공으로 당원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났어요. 그래서 매주 목요일마다 입술 빨갛게 바르고 당증을 농짝 밑에서 딱 꺼내서 생활총화하러 가던 게 기억이 나요. 그러던 엄마가 50이 넘어 60이 되니까 나보고소연아, 이 당증 너 가질래?’ 물어요. (웃음) 그 정도로 가치가 없어진 거죠. 그래서 그때마다엄마, 21세 때 엉덩이 붙이고 집에서 놀 것이지 왜 입당은 했어요?” 놀리죠. 그 정도로 사람들이 이제 당 생활이나 당비를 바치는 것을 싫어하고 있어요. 그만큼 북한도 많이 변한 거죠.

 

이해연 : 저도 냈어요. 북한은 중학교 3학년이 되면 청년동맹에 가입해야 하고 그때부터 달마다 맹비를 내야 해요.

 

박소연 : 무조건 내죠.

 

이해연 : 사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돈을 왜 내는지를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걸 어디에 썼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박소연 : 그게 남한하고 차이점인 것 같아요. 고등학생이 수입이 없잖아요. 그런데 맹비를 내야 돼요. 결국 엄마한테 돈을 달라고 해서 내야 하는 거예요.

 

이해연 : 그게 너무 불공평한 것 같아요. 소득이 없는데 돈을 내라고 하니까...

 

박소연 : 그래도 그건 좀 덜 분한 거예요. 저는 월급을 타던 시대에 살았잖아요. 월말이 되면 로임이 나오는데 월급봉투 안에 돈만 있는 게 아니라, 기다란 공제 명세표가 나와요. 그것도 원주필(볼펜)으로 하나하나 쓴 명세표였는데 읽어보면정말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냥 직장 열심히 다닌 것밖에 없는데 공제 항목이 한 열 가지가 나열돼 있어요. 그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것아 산재보험, 그리고 부조금. 예를 들면 회사 기사장 자녀가 결혼하면 그 부조금을 전체 종업원들한테 월급에서 공제해요. 이런 비슷한 것들이 한 10가지 정도가 되고, 거기에다 맹비까지. 당시 월급이 85원이었는데 다 공제하고 나면 달랑 63 20전밖에 안 남았어요, 만일 남한 같았으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이걸 왜 잘랐냐고 난리 쳤겠죠.

 

이해연 : 그런데 사실 액수가 얼마 크지 않아서 눈에 쌍심지를 안 켜지 않았을까요… (웃음)

 

박소연 : 사실 90년도에는 큰 금액이었어요. 그런데 북한 사람들의 의식 속에 어차피 모든 공장기업소는 개인회사가 아닌 국가가 관리를 하니까, 이 모든 게 국가의 명령이고 지침이었어요. 국가가 이렇게 공제하는데 내가 거기에다 대고 뭐라고 할 수 있나요? 그랬다가는 직장에서 쫓겨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생각을 전혀 못 한 거죠.

 

이해연 : 매번 내가 속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표현을 못 하고 그냥 생활이려니지나치다 보니까, 오늘의 북한이 있는 게 아닐까요.

 

 

매번 내가 속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표현을 못 하고

그냥 생활이려니지나치다 보니까,

오늘의 북한이 있는 게 아닐까요.

 

박소연 : 맞아요. 북한도 지금까지 우리가 얘기한 것처럼 분명히 월급을 주던 때도 있었고, 이렇게 산재보험도 공제하고 있지만, 남과 북을 비교해 봤을 때 경력, 승진 이런 것들이 너무 차이가 많이 납니다.

 

이해연 : 맞아요. 남한 같은 경우에는 내가 경력이 있고 근무 연한이 늘어 가면 승진도 하고 월급도 올라가잖아요? 그런데 북한 같은 경우는 월급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직급이 올라가는 거죠. 권한이 많이 생긴다는 얘깁니다. 권한이 있으면 내가 다른 직장원보다 자유 시간을 좀 더 만들 수도 있는 좋은 점도 있고

 

박소연 : 해연 씨가 정확히 짚어줬는데 남한에 와서 저는 초창기에 제일 이해 못한 게 경력직이었어요. 남한에서는 월급에 대해서 서로 공개를 안 하잖아요? 남조선 깍쟁이들이라고 생각했는데어느 날 알게 됐는데 같은 회사에서 저와 똑같은 시간을 일하는 직원이 제 월급과 차이가 엄청 많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사장한테 가서 따졌죠. ‘왜 이 사람은 나보다 늦게 입사했는데 월급을 많이 주냐?’. 그랬더니그 사람은 일하는 내용 자체가 월급을 많이 받는 일이고 또 석사 학위를 받고 왔기 때문에 초봉이 당신보다 높다는 거예요. 결국, 이런 불공평한 회사에서 일을 못 하겠다며 대표한테 소리쳤더니, 잡을 줄 알았는데 본인이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고 해서 나왔잖아요.

 

이해연 : 무자비하네요!

 

박소연 : 나온 후 여기저기 울면서 전화를 돌렸어요. 어쩌면 이런 회사가 하늘 아래 있을 수 있냐 하소연을 했더니그게 맞는 거라는 거예요! (웃음) 그 사람은 석사 학위를 따기 위해서 몇 년 동안 더 공부했고, 또 그 사람이 하는 일이 더 높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일이라는 거죠. 이런 사실을 이해하고 대표에게 잘못했다고 사죄하고 다시 들어갔잖아요. 그 이후에 저는 남들이 받는 월급에 대해서 신경을 안 써요. 그에 걸맞게 받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죠.

 

이해연 : 참 그런 얘기를 듣고 나니까 저는 아직 20대잖아요. 앞으로 취업하게 될 것이고, 회사에서 그런 일들을 겪게 될 거잖아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미 알아 놓아야겠네요

 

박소연 : 그런데 저는 지금 해연 씨, 시간제 아르바이트하죠? 해연 씨는 20대이고 아직 정착 2년 차이니 꼭 직장에 입사해서 직장 생활을 경험해보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이유는

 

북한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남한 직장 문화 속에서 해연 씨의 고민은 깊어가는데요. 사실 해연 씨의 고민은 남한의 평범한 20대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머지 얘기, 다음 시간에 이어갈께요.

 

지금까지 탈북선후배가 나누는 남한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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