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질문있어요] 북한에선 소고기를 못 먹어 봤다고요?
2023.12.18
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안녕하세요. 서울에 살고 있는 40대 남자입니다. 저는 주로 육류 위주의 식사를 많이 하는 편인데요. 거의 매끼 고기를 먹는 것 같습니다. 특히 소고기를 가장 좋아하는데, 얼마 전에 제가 인터넷에서 충격적인 기사를 봤거든요. 북한에선 소를 잡으면 처형당한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인가요? 그럼 정말 북한 사람들은 소고기를 못 먹는 건가요?”
(음악 up & down)
정작 북한에 살 땐 몰랐는데, 북한을 나와 외부세계에서 바라보니 세계인들이 북한을 바라보며 느끼는 충격들이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오늘 얘기도 그 중 하나입니다.
전에 한국의 희극방송에서 인용되며 한동안 사람들한테 유행했던 말이 있는데요. “돈 벌어서 뭐 하겠노, 소고기 사묵겠지~”입니다.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다 승진하고 그렇게 돈 벌어서 결국... '소고기 사묵겠지..'로 끝났던 인생의 해학이 담겨 있었던 그 말에 많은 사람들이 웃으면서도 공감했습니다.
북한에 살 때 고기는 명절날 어쩌다 한번씩 먹는 특식이었는데, 한국에선 고기가 일상의 음식입니다. 그러다 보니 ‘너무 많이 먹어서 어떻게 하면 덜 먹고, 어떻게 하면 기름기를 빼고 먹을까’를 고민하고 있죠. 살아보니 북한과 식생활 수준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커서 허탈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꽤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통계를 보면 2021년 한국의 소고기 소비량은 전 세계 12위였습니다. 한국의 1인당 연간 소고기 소비량은 12kg 정도 되는데요. 그러니까 평균 한 사람이 매달 1킬로 정도의 소고기를 먹는다는 건데, 이건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등등 더 흔하게 먹는 육류를 제외한 순수 소고기 소비량인 겁니다.
한국인들의 한국 전통 소고기인 한우 사랑도 각별한데요. 누군가 저에게 세계적으로 맛을 인정받는 동시에 값비싼 한우를 사준다면 그 사람은 분명 저를 귀중하게 대하는 거라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여윳돈이 생기거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나, 기분이 울적해 음식으로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도 '소고기 먹자' 한마디면 모두들 다 같이 기뻐할 수 있거든요.
아마 북한 동포분들은 여기까지 들으시다가 '소고기가 그렇게 맛있다고?' 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상당하실 겁니다. 아마 평생 소고기를 한번도 맛보지 못했거나, 또 드셔봤다 하더라도 느껴본 소고기 맛은 그리 맛있는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한국에서 소는 식용으로 키워집니다. 그래서 최대한 우리 안에서 ‘먹고 자고 쉬고’를 반복하며 근육량은 줄이고 부드러운 육질 상태를 만들게 되죠. 그래서 한국에서 소고기를 맛보고 나오는 감탄사는 '입에서 녹는다' 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소는 많이 다르죠. 북한에선 우생(牛生)역시 처량합니다. 농기계가 거의 없는 북한에서 소는 농사에 필요한 거의 모든 일을 묵묵히 해내야 합니다. 어미소로 다 크기 전부터 밭을 갈고, 도랑을 만들고, 짐을 실어나르는 등 평생 일을 하게 됩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말이죠. 앙상한 뼈에 가죽만 덮인 상태로 밭 갈고 있던 북한의 소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울컥한 마음입니다.
그렇게 평생 일만 하다 죽은 소는 식용으로는 적합하지가 않은데요. 고기를 아무리 삶아도 그저 멀건 물만 우러날뿐 기름기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다, 온몸이 근육질로 되어 있어 소고기가 고무줄처럼 질겨 거의 씹을 수 없는 정도가 됩니다.
북한에서 소를 잡으면 처형되느냐고 물으셨는데요. 네. 처형될 수도 있습니다. 국가의 재산을 훼손한 것으로 치부되어 큰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그래서 맡아 키우던 소가 병에 걸려 죽었다 하더라도 사유서와 함께 죽은 소도 상부에 올려야 하는 거죠. 결국 그 소는 누군가가 먹을 겁니다. 하지만 어쩌다 잠깐이나마 소고기를 맛보는 이들이 일반 주민들은 아니라는 얘기죠.
한국에 온 탈북민들 중에는 아직도 소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옛말에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던데, 그게 꼭 북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 같단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여기서 줄일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탈북민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