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북 주민들이 대북 확성기 반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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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북한 사상교육, 청소년들에겐 안 통한다?

-머리만 길어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위반

-남한 방송 몰래 듣던 북 주민들, 대북 확성기 반겨

-‘친근한 어버이’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하루아침에 김정은 총비서가 바꾼 대남노선으로 북한의 청소년들이 혼돈에 빠졌다고 합니다. 과연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일까요? 소년단 창립기념일에 선전선동 가요를 아이들에게 달달 외우게 한 이유는 뭘까요? 자세한 소식 손혜민, 문성휘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이예진: 북한의 새세대가 김정은 우상화의 집중 공략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잘 안 되는 모양이죠? 문성휘 기자, 초급중학교에서 반동사상문화 척결을 위한 사상투쟁회의가 진행될 정도면 학생들 사이에 남한에 대한 관심이나 남북 관계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라는 겁니까?

문성휘:네. 북한에서 초급중학교는 12세부터 14세까지의 학생들, 순수 소년들로 이루어진 집단입니다. 북한에서 15세 이상의 청년기는 이미 사상, 한마디로 신념이 공고화 된 단계로 간주합니다. 15세 이상의 젊은이들은 사상이 고착화되었기 때문에 웬만한 교양과 선전으로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상이 고착화 되기 전인 학생들, 그러니까 12세 이상부터 14세 이하의 초급중학교 학생들의 사상교육에 특별히 품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 시기 학생들에게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심어 주어야 평생 변하지 않는 혁명적 신념을 간직할 수 있다는 건데요.

지금껏 북한은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남과 북은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의 겨레, 하나의 민족’이라고 꾸준히 교양해 왔습니다. 그동안 북한이 만들어낸 통일가요만 수백 가지가 넘습니다. 올해 1월 초까지 학생들은 이런 통일가요들을 마음대로 불렀습니다. 북한 당국도 그런 노래들을 많이 부르도록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분위기를 조성했고요. 그런데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0차회의에서 김정은이 뜬금없이 남과 북을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이 아닌 ‘철저한 타국’, ‘가장 적대적인 국가’라고 규정했습니다. 이때부터 북한 당국은 통일과 관련된 표현을 금지시켰습니다.

초급중학교 학생들에게도 우리 민족에 대한 표현, 조국통일과 관련된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반동사상문화배격법으로 억제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젊은이들 속에서 남한식 말투라든지, 남한식 머리모양, 남한 젊은이들의 화장법까지 널리 유행하고 있음은 최근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무사히 도착한 청소년들을 통해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남한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다 보니 남북 관계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호의적이라는 건데요.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 남과 북은 하나의 겨레, 하나의 강토, 하나의 조국이라고 배워주었는데요. 그렇게 교육한 학생들을 상대로 우리 민족, 조국 통일과 관련된 표현들을 점차적으로 줄인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칼로 절단하듯이 사용을 아예 금지시켜 버리니까 이게 잘 먹혀 들지 않고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는 거죠.

북한이 초급중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반동사상문화배격법까지 운운하면서 남북 관계에 찬물을 끼얹으려 하지만 젊은이들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사상투쟁의 방법으로는 남북 관계를 적대적 관계로 매도할 수 없습니다. 김정은의 말 한마디로 세상이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진리를 이번 사상투쟁 회의를 통해 북한의 초급중학교 학생들도 깊이 깨달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예진: 이제까지 배웠던 사상교육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니 아이들로서도 황당할 것 같은데요. 더 황당한 건 교복을 입지 않거나 머리가 긴 학생들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위반으로 비판을 받았다는 건데요. 대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의 범위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문성휘: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나오기 전까지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에 거슬리는 행위들을 비사회주의와 반사회주의로 구분했습니다. 비사회주의는 주로 물질적인 영역을 포함했고, 반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사상적인 영역을 포함하고 있었는데요.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맞지 않는 옷차림이나 머리모양, 언어표현, 도덕적인 행위들을 통틀어 북한은 비사회주의라고 규정했습니다. 반면 북한 체제를 전복하려는 기도들, 체제를 반대하는 삐라나 낙서, 국가시설물을 파괴하거나 북한 체제에 반하는 종교활동이나 미신 행위를 반사회주의라고 규정했는데요. 그러다가 2020년 12월 4일,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제정되면서 비사회주의, 반사회주의를 하나로 묶어버렸습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말고도 북한은 비슷한 내용으로 2021년 청년교양보장법, 2023년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연이어 내놓았는데요. 사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나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이 김정은 시대 북한에서 완전히 새롭게 제정된 법은 아니었습니다. 과거 여러 갈래로 존재하던 법들을 하나로 묶어 보다 강력히 처벌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는데요.

실례로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상표가 붙은 옷을 입고 거리에 나왔다가 단속될 경우 예전엔 비사회주의로 분류돼 처벌이 가벼웠습니다. 기껏해야 사상투쟁 무대에 올라서는 것이 전부였는데요. 하지만 지금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으로 노동단련대 처벌, 심하면 노동교화소(교도소) 처벌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비사회주의와 반사회주의를 모두 포괄하는 매우 광범위한 악법인데요. 북한엔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청년동맹 산하 노동자 규찰대와 사회안전성 산하 야간 순찰대, 기동타격대를 비롯해 수많은 검열, 통제 조직들이 있습니다.

다만 이런 조직들 대부분이 주민들의 불법행위를 볼모로 뇌물로 살아가는 조직들이니 새로운 악법이 나왔다고 해도 김정은 체제가 더 공고화 되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입을 그대로 빌리면 “뇌물을 받아먹을 수 있는 악법이 하나 더 생긴 셈”이라는 거죠. 그만큼 주민들의 일상생활이 더 고통스럽고,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범위를 더 늘려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예진: 북한 당국이 새세대가 혹여라도 비사회주의에 빠질까 사상교육을 이토록 강조하고 있다면, 북한이 살포한 오물 풍선에 대한 맞대응으로 시작된 남한의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해서 더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전문가들도 북한의 군인 등 젊은 세대에게 대북 확성기 방송이 주는 심리적 동요가 가장 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두 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손혜민:북한 당국이 아마도 가장 먼저 당황하지 않을까 싶네요. 대북 확성기 방송 송출 범위는 전연지대가 목표 아닙니까. 전연지대에는 사상성이 투철하고 성분이 좋은 군인들이 복무하는 곳입니다. 김정은을 목숨으로 보위하자는 철저한 세뇌교육이 어느 군부대보다 강조되는 곳인데, 이곳을 조준하여 대북확성기로 방송을 한다면 체제 안전을 우려할 수 밖에 없습니다. 3.8선을 지키는 젊은 군인들의 심리가 무너지는데, 왜 그러지 않겠나요.

단지 남조선 방송이라서 군인들의 심리에 균열이 시작되어 동요한다는 건 아니고요. 북한 체제의 문제가 무엇이고, 주민들은 왜 가난한지, 또 장마당 물가의 변동 요인과 인간의 자유로운 사랑을 표현한 가요를 남조선 방송으로 듣다 보면, 민주주의 일상을 깨닫게 됩니다. 심리적 동요가 올 수 밖에 없습니다. 폐쇄된 북한에서 남조선 방송을 한번만 들으면 어느 대학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세상을 알게 되어 3대 세습에 의문을 품습니다.

이 때문에 중년층이든 젊은층이든 남조선 방송을 계속 듣고 싶어하는데,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후 소형 라디오로 남조선 방송을 몰래 듣던 사람들이 남조선 방송을 듣지 못했는데, 남한 정부가 대북 확성기로 방송한다니 얼마나 반기겠습니까. 전파를 통해 공중에서 들리는 방송 소리까지 북한 당국이 통제할 수 없거든요. 귀로 들리는데 안 들을 수 없지 않나요. 그러지 않아도 김정은 정권에 불만이 많았던 젊은이들, 특히 지식인들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담하지 못하는 겁니다.

문성휘:일단 저는 대북 확성기 방송이 '동전의 양면'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엔 대북 확성기 방송에 호감을 가지는 주민도 있을 것이고, 불쾌감을 가지는 주민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저도 북한에서 생활할 때 남한에서 만든 대북심리전 삐라를 본 적이 있습니다. 군사복무를 마친 제 친구가 몰래 가지고 온 것인데, 그때 그 친구는 대북심리전 삐라에 매우 고무돼 있었습니다. 남한이 계속 삐라를 보내면 북한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반대였습니다. 무엇보다 삐라의 내용이 너무 유치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또 저는 북한에서 소형 라디오로 남한 방송을 많이 청취했습니다. 라디오로 남한 방송을 청취할 때에는 공감이 가는 부분이 상당했는데, 정작 대북심리전 삐라를 보고 기분이 좋지 않은데 대해서는 지금도 그 이유를 딱히 짚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마다 반응은 다 다를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열렬히 지지하고, 누군가는 동정하고, 누군가는 반발하겠죠. 그래서 저는 북한 주민들을 각성시키기 위한 선전 수단이 보다 다양화 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북 확성기 방송도 있어야 하고, 대북 심리전 삐라도 있어야 하며, 라디오 방송과 북녘 주민들에게 보내는 남한 청소년들의 손편지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보다 다양한 주민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대북 확성기 방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예진: 다음 소식입니다. 북한 당국이 이번엔 어린이들의 사상교육 강화에 나선 모양인데요.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에 해당돼 한국 유튜브에서 영상이 차단된 북한의 선전가요 ‘친근한 어버이’, 북한에서는 여전히 대대적으로 홍보 중인 것 같습니다. 동요를 불러야 할 나이의 아이들이 이 노래로 합창 경연을 벌였다고 하는데요. 손혜민 기자, 소년단 창립기념일에 그동안에는 없었던 합창 경연이 열린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죠?

손혜민:그렇습니다. 해마다 소년단 창립절 6월 6일에는 정치적 행사가 진행되지 않습니까. 아침부터 광장에 모여서 당 간부들이 어린이들에게 넥타이 메어주고, 이를 계기로 소년단원들은 집체로 충성맹세를 다지는 겁니다. 그런데 올해는 학교별 100명의 소년단원을 선발하여 합창 경연을 정치행사로 진행했다고 하는데요. 합창 가요 주제도 위에서 지정했는데, 김정은을 찬양하는 '친근한 어버이'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정치조직 생활의 첫 단계인 소년단에 강제로 입단 하는 것도 모자라 김정은 찬양가로 세뇌시키려는 의도입니다. 최소한 주민들에게 밥이라도 배불리 먹여주는 게 친근한 어버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번에 김정은을 찬양하는 합창을 부른 어린이들에게 옥수수 국수 한 그릇 점심식사가 차려졌는데요.

이에 대해 소식통은 작년만 해도 소년단 입단식은 종일 진행되었는데, 식량이 없어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학생들이 점심을 굶고 입단식 행사에 참가하다 보니 빈혈을 호소하며 쓰러지기도 하여 주민들의 비난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러자 당국은 올해 소년단 창립 78주년 기념 정치행사는 오전에만 진행하도록 하고, 합창 경연에 참가한 학생들에게만 옥수수 국수 한 그릇을 먹였다는 겁니다. 그마저도 당국이 마련한 식사가 아니라 학생 부담으로 거두어들여 준비한 거죠.

이예진: 열악한 분위기에서 행사가 치러졌겠군요. 더구나 소년단 창립기념일 행사 자체가 김정은 총비서를 향한 충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채워지는데, 아이들에게 노래까지 달달 외우게 했다는 건 노래의 세뇌 효과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 아닐까 싶은데요. 북한에서 부르는 선전가요, 인민들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십니까?

손혜민:아이들에게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소학교 학생들은 어리기 때문에 당국이 주입하는 김정은 찬양가 등 선전선동 가요를 진심으로 부르기는 합니다. 원래 선전성이 강한 북한 가요 특징은 서정적인 음감으로 구성되어 있거든요. 다만 가사마다 수령 우상화가 들어가 있어 노래 같지 않다는 게 북한 주민들의 발언입니다. 하지만 중학교만 올라와도 북한에서 창작된 선전가요는 아이들에게 외면당하죠. 따라서 '친근한 어버이' 가요 보급 사업이 공장기업소 등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어도 그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