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북 주민들, “우리집이 침수됐어야”

서울-손혜민, 문성휘 xallsl@rfa.org
2024.08.22
[지금 북한은] 북 주민들, “우리집이 침수됐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6일 평양 4.25여관을 찾아 수해지역 학생들을 위한 교육준비정형을 요해(파악)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7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수재민 평양 초청 선발 기준은?

-1호 본 수재민들 출세 기회 열려

-김정은의 수재민 보호 언제까지?

-북한 군인 혼밥하는 이유

 

김정은 총비서가 수재민들을 평양으로 초청해 다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과시하고 있죠. 하지만 초청 받지 못한 수재민들과 일반 주민들의 박탈감만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소식 손혜민, 문성휘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이예진: 김정은 총비서가 이번에 큰물 피해를 입은 평안북도 의주군 수재 현장을 찾은 뒤에 수재민들을 평양으로 데려와 보호하겠다는 중대발표를 했죠. 학령 전 어린이, 학생, 노인, 병약자와 영예 군인 등 총 15400여 명을 초대하겠다는 굉장히 구체적인 수치까지 밝혔는데요. 그에 못 미치지만 어쨌든 13천여 명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평양으로 초대됐습니다. 손혜민 기자, 평양 초청 선발 기준이 뭐였을까요?

 

손혜민: 통상적으로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가 평양으로 초청하는 대상 기준이 엄격합니다. 국내외적으로 특별한 공헌을 세웠거나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올리는 데 기여한 대상이 꼽히는데요. 예를 들어 김정은 정권 집권 이후를 본다면, 2013년 서해바다에서 광명성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한 과학자, 기술자, 노동자, 간부들이 평양으로 초청되어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는 등 특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815일 이런 틀을 깨고 김정은 위원장이 평북도와 자강도, 양강도 등 수해지역에서 일부 수재민을 평양으로 초청한 것은 다양한 각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선 불안감이죠. 그가 누구라도 수해로 가족을 잃었다면, 그 슬픔은 당국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죠. 이번 수해는 분명한 인재니까요. 그러니 북한 주민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평양 방문과 최고지도자를 만나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주민 불만을 잠재우려는 것입니다.

 

문제는 수재민 전부 평양에 초청하지 않고 선별한 건데요. 북한이 공식 수해 피해 통계를 발표하지 않아 수해 사망자와 피해자 숫자를 알 수 없지만, 수해로 한지에 나앉은 숫자는 수만여 명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 20% 정도가 평양에 초청된 건데, 그 기준은 역시 신분계층과 공로 등이 작용되었다고 소식통은 말합니다.

 

예를 들어 평안북도의 경우 수해 피해 지역은 대부분 농촌이거든요. 그러니 해당 지역에서 평양으로 초청된 계층을 살펴보면 농장 당 간부와 그의 가족들, 작업반장과 기술지도원 등 행정간부와 그의 가족들, 평상시 당에 충실하고 일을 잘하던 농민 가족 등으로 알려졌습니다. 단순히 평양 초청이 아니라 사전에 1호행사가 예견되어 있어 사상 동향이 양호한 사람들이 선발된 것인데, 이 부분에서도 주민들의 불만이 잠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를 한번 만나면 능력과 실무에 관계 없이 대학 진학과 입당, 출세 기회가 우선 열립니다. 그러니 가지 못한 사람들이 나는 왜 못 갔냐는 불만을 표출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예진: 앞으로의 인생이 바뀔 정도라면 같은 입장으로 1호행사에 초청 받지 못한 수재민들은 더욱 원성이 컸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TV로 수재민들이 잘 먹고, 잘 놀고, 잘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박탈감도 컸을 텐데요. 그런 수재민들에게 선물이라도 공평하게 줬어야 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고요. 이들의 대접은 얼마나 달랐던 겁니까?

 

손혜민: 우선 박탈감은 일반 주민들도 컸다고 합니다. 평안북도 용천군 주민과 어렵게 통화가 연결되어 물어봤습니다. 평양으로 초청된 수재민에 대해 소감이 어떻냐고요. “우리집도 수해로 침수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이 주민은 세 명의 자녀를 키우는 가정주부인데요. 지금까지 한번도 자녀들에게 이밥에 고깃국을 먹이지 못했다고 해요. 그런데 평양으로 올라간 수해지역 아이들이 이밥에 고깃국, 사과와 포도 등이 가득한 만찬상에 앉아 있는 모습이 텔레비죤으로 나오니 어린 자식들이 나도 한번만 이밥에 고깃국을 먹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수재민이 되어서라도 이밥에 고깃국을 자식들에게 먹이고 싶은 겁니다.

 

또 같은 수재민이라도 평양으로 초청받지 못한 수재민들과 어린이들도 숙식 조건만 제공받았을 뿐 이밥에 고깃국을 먹어보지 못해 박탈감을 느낀다는 겁니다. 평양으로 초청된 수재민 자녀들은 최고지도자가 교복과 가방 등을 선물했지만, 초청받지 못한 자녀들은 아직 선물을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9월 새 학기를 맞으며 공급하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약 지방에 있는 수해지역 학생들에게 교복과 가방을 선물한다고 할 경우에도 부작용은 클 것입니다.

 

이예진: 그 이유는 뭡니까?

 

손혜민: 국가적으로 수해지역으로 발표된 지역 외에도 큰물로 집이 잠겨 피해 본 주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들은 어떻게 할 건가요. 국가가 수해 피해 보상을 제대로 하려면 전국적으로 수해 피해 조사를 제대로 진행하여 국가적 보상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국경지역, 다시 말해 중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 알려진 지역만 수해지역으로 선포하고 여기에만 과잉되다시피 최고지도자의 인민사랑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보여주기식 행보가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는 거죠.

 

공식 수해지역으로 발표된 평북, 자강도, 양강도 수재민의 일부 자녀들은 평양에 초청되어 특혜를 누리고, 그 밖의 수재민과 자녀들은 중국에서 수입된 천막으로 임시 시설을 짓고 숙식 조건의 일부를 국가적 조치로 보장하고 있는데요. 반면 수해지역 명단에서 밀려난 지역 수재민들은 숙식 조건도 보장받지 못하여 강둑에서 살면서 자체로 살림집 복구에 나섰다고 합니다.

 

이렇게 차별 정책을 실시하면 애초에 부작용이 클 수 밖에 없죠. 특히 평양으로 초청한 수해지역 아이들이 카스텔라 하나씩 손에 들고 최고지도자에게 저마다 권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는데요. 카스텔라는 잘사는 사람들만 먹는 빵이거든요. 그러니 아이들은 평양에 초청된 아이들은 카스텔라를 먹어서 좋겠다, 우리집도 수해 나야 카스텔라 먹을 수 있냐고 말해 부모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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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북한서혼밥확산

 

이예진: 13천여 명의 수재민들, 지금은 편하게 먹고 놀고 쉴 수 있어 보이지만, 이들을 언제까지 돌보겠다는 말은 김정은 총비서가 정확히 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상식적으론 수재민들의 집이 복구가 다 될 때까지 보호를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손 기자,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손혜민: . 지난 7월 말 수해 직후 김정은 위원장은 평북 수해 현장에서 피해복구사령부를 조직했습니다. 평양 초청 수재민 환영사에서는 수해지역을 복구하는 정도가 아니라 ‘농촌의 도시화, 현대화, 문명화 실현의 본보기 실체로 만들자고 밝혔습니다. 수해지역을 지방발전 모델로 개변함으로써 국제사회에 북한의 저력을 보여주겠다는 것인데, 날라리식으로 건설한다 해도 1년은 필요합니다.  

 

결국 평양에 초청된 일부 수재민들이 그동안 평양에서 이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물놀이장에서 즐기면서 살 수 있을 지도 의문입니다. 수뇌부가 자리한 평양은 안전이 우선이므로 지방 사람 출입이 철저히 통제됩니다. 아마 수해지역 살림집이 완공되는 동안 수재민들이 평양에 체류한다 하여도 철저한 감시와 통제 속에서 갇혀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요.

 

현재 평안북도 의주군 넓은 공터에 수해지역 주민들을 집단 수용하는 텐트시설이 만들어졌는데, 의문이 드는 것은 여기서 사는 동안 수해지역 주민들은 장사를 못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됩니다. 국가에서 식량을 준다 해도 죽지 않을 만큼 주니까 말입니다. 인민을 기만하는 선전보다는 핵과 미사일을 만드는데 투자되는 외화 자원 일부를 민생에 돌려 원천적으로 수해를 방지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제언하고 싶습니다.   

 

이예진: 다음 소식입니다. 일본에선 혼자 편히 먹을 수 있게 1인용 칸막이가 있는 식당도 많고, 한국에서도 혼술, 혼밥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혼자서 먹고 마시는 문화가 진작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북한에서도 혼자 밥을 먹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하는데요. 문성휘 기자, 집단생활이 많은 북한에서의 혼밥, 한국과는 좀 다른 의미일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문성휘: 북한에서 혼밥 문화는 한국이나 일본과 완전히 다릅니다. 일본 사람들은 남에게 간섭하지 않고, 남들의 개입을 꺼려하는 문화가 결국은 식생활에도 반영돼 혼밥, 그러니까 혼자서 밥을 먹는 문화가 자리잡게 된 거고요.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에서 혼밥 문화는 코로나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요.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코로나 감염을 막기 위해 개인과 개인이 접촉하지 못하도록 칸막이를 했는데 당시의 습관이 아직까지도 남아 혼밥 문화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혼밥은 사회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돌격대나 군대, 대학 기숙사생들과 같이 집단생활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혼밥, 그러니까 혼자 밥을 먹는 문화가 엄격하게 자리잡았다는 건데요. 한마디로 친구나 동료들과 한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자기가 챙겨온 먹을거리를 자기 혼자서 먹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북한 내부 소식통들은내가 가진 것만큼 먹고, 나의 먹을거리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만 먹는다는 것이 이제는 하나의 원칙이 되어 버렸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먹을거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북한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인데요.

 

과거 북한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기름 한 방울, 술 한 병 생겨도 서로가 나누었는데요. 김정일 시대까지만 해도 군대와 돌격대 같이 집단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보태라고 가족들이 꼬박꼬박 돈을 보내는 일은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군대에 간 자식들, 돌격대에 나간 가족에게 온 집안 식구들이 돈을 모아 보내는 현상은 김정은 집권 이후에 생겼는데요. 김정은 집권 후 북한에서 집단생활이 얼마나 처참해졌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예진: 남한에선 군인 월급이 해마다 늘고 있죠. 내년엔 육군 병장 한달 월급이 1,500달러가 된다고 합니다. 18개월에서 21개월 정도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하면 월급과 국가장려금 등 최대 23천여 달러를 모을 수 있는데요. 북한에선 반대로 부모들이 다달이 밥 사먹을 돈을 보내고 있다고 하셨는데, 부모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굶을 수도 있겠네요.

 

문성휘: 북한도 형식상 병사들의 월급이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군사복무를 마친 탈북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해보면 열명 중 아홉 명은 월급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2019, 남한의 통일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 병사들의 월급은 상급병사가 한달에 북한 돈 150(0.015달러), 중사가 110, 초급병사 90, 하사가 70원입니다. 상급병사 월급 150원으로는 껌 한통도 못 사는데요. 그런데 이런 월급도 순수 형식만 남았다는 겁니다. 애초 병사들에게 월급이 나오지 않기 때문인데요.

 

거기다 군인들이 해마다 받아야 할 군복이라든지, 발싸개 같은 것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나라에서 먹여주고, 입혀준다는 병사들도 이 모양이니 돌격대나 다른 집단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형편이 더 어렵습니다. 다른 건 다 몰라도 집에서 매달 돈을 보내지 않으면 군인이든, 돌격대든 영양실조로 삶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집에서 보내는 돈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군 생활만 놓고 보더라도 잘사는 집 자식들은 돈을 펑펑 쑬 수 있습니다. 집에서 그만큼 돈을 많이 보내기 때문인데요. 반면 가정형편이 어려운 집 자식들은 집에서 보낸 돈으로 하루 한끼, 겨우 두부 반 모를 먹을 정도라고 합니다. 집안이 가난하니 돈을 많이 보내지 못하기 때문이죠. 하루에 두부 반 모는 먹어야 영양실조를 면할 수 있다는 것이 북한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겐 하나의 상식입니다. 겉모습만 보면 집안 형편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는 것이 북한 병사들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나서 북한 당국은 전염병 확산과 탈영을 막는다는 구실로 병사들에게 몰래 장마당에 나갈 틈조차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두부나 떡 장사꾼들이 오히려 부대 앞까지 찾아오게 되었다는데요. 병사들은 남들이 다 보는 부대 앞에서 장사꾼들로부터 떡이나 두부를 사야 했다는 겁니다. 그러다 나니 굳이 음식을 숨길 필요도 없었다는 거죠. 식사시간에 장사꾼들로부터 산 먹을거리를 그대로 부대 식당에 가져가 남들이 보든 말든 혼자 먹었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군대에서 시작된 기형적인 혼밥 문화가 나중에 돌격대, 대학 기숙사까지 전파되었다는 거죠. 집에서 보낸 돈으로 영양보충을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것이 북한의 집단 생활입니다.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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