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로 세상을 만나다] 신종대 교수-“북한, 1971년에 이미 북미 간 직접 접촉 타진”

전화로 세상을 만나다. 오늘은 북한대학원대학교 신종대 교수와 함께 합니다.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08.12.24
기자: 박사님 안녕하세요.

신 교수: 네, 안녕하세요.

기자: 김일성 북한 주석이 루마니아를 통해서 미국에 비밀 정상회동을 제안했다는 미국의 외교문서가 최근에 공개됐습니다. 박사님이 보기엔 김일성 주석이 미국의 포드 대통령에게 정상 간 비밀 회동을 제안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신 교수:제 생각으로는, 더 직접적으로는 1974년 3월25일에, 북한의 허담 부총리 겸 외교부장이 당시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5기 3차 회의로 기억이 나는데요, 거기에서 공식적으로 북미평화협정을 제안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봅니다. 이게 공식적으로 북미 평화협정을 제안했던 때고요, 그 이전에 이미 미국과 중국이 화해하는 국면에, 제 기억으론 1971년 7월 말로 기억하는데요 그 때 김일 북한 제1부수상이 북경으로 가서 미국에 이미 이런 타진을 했습니다.

주은래 중국 총리에게 미국과 중국이 협상할 때 8개 항에 달하는 북한의 주장을 대신 전달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남북대화가 사실상 중단되고 나서, 북한이 1973년 8월 중순께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을 통해 베이징에 있는 미국의 연락사무소와 접촉을 시도합니다. 당시 북한 대표가 베이징 주재 미국 연락사무소의 데이비드 브루스 소장과 만났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생산적인 논의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1974년 8월 당시 북한이 루마니아를 통해서 미국에 비밀 정상회동을 제안한 배경은 단순히 대통령 영부인이었던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이후 국제적 고립을 피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북한이 이전부터 쭉 노력해온 미국과 관계를 계선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북한은 중국과 루마니아, 그리고 이집트를 통해서도 미국과 대화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기자: 당시에 북한이 미국에 제안했던 비밀 정상회동이 성사되지 않았는데요 그 원인은 뭔가요?

신 교수:뭐 어떻게 보면 너무 뻔한 이윤데요, 제가 방금 말씀드린 대로 미국과 중국이 화해하는 국면, 그리고 남북대화라는, 미국과 중국의 정책적 의도에 부응하면서 북한은 미국에 접근하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던 것인데요, 그런데 당시 북한에 미국은 안보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나라였지만 거꾸로 북한이 미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양자적 입장에서 접근할 만한 그런 가치를 가진, 그런 이해관계를 가진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말하자면 미국은 북한과 관계를 당시 한반도 주변 강대국과 남북관계 수준에서 인식하고 접근했습니다. 반면 북한은 가장 중요한 안보적 관점에서 북한에 접근했는데요 그 양자가 갖고 있는 구조적인 차이 때문에 당시에 미국이 북한과 양자적 접근에 별로 흥미를 갖지 못했습니다.

특히 60년대 말에 일어났던 푸에블로 호 사건 때 승무원을 석방하기 위해서 미국 정부가 북한과 비밀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남측 정부가 강하게 저항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북한과 직접 접촉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한미동맹에 분열을 가져올 수도 있었고 한국 측의 강한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미국이 굳이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과 양자 접촉을 위한 테이블에 앉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단지 미국도 당시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바탕으로 미중 화해 무드가 탄력을 받도록 하겠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북한을 자극하거나 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1972년 3월 당시 로저스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길 바라는 점을 미국이 알고 있다 닉슨 행정부는 모든 나라와 관계를 개선하길 바라고 있고 북한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말했습니다.

기자: 북한은 지금도 미국과 양자 회담을 요구하고 있는데요, 그 때 당시와 현재에 달라진 점은 뭔가요?

신 교수: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당시에는 북한이 미국의 안보 이익에 영향을 끼칠 만한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았던 데 반해서 오늘날은 잘 아시는 대로 핵문제 때문에 상황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와 지금 상황을 굳이 비교한다면 미국 역시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하는,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런 구조적인 압력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겠죠.

기자:
박사님 말대로라면 한국 정부가 소위 통미봉남을 우려할 만한 근거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신 교수:네, 복잡한 문제가 연관돼 있는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북한에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양자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하냐, 이렇게 봤을 때 지속적으로 북미관계가 남북관계에 앞섰죠. 이건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고요. 다만 미국의 입장에서, 아까 제가 말씀드린 대로, 70년 대 당시에 그런 제안을 받을 때는 북한이라는 존재가 미국에 그리 큰 의미를 가질 만큼 그런 존재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거죠.

다만 잘 아시다시피 지금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것을 미국이 인정하느냐 아니면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폐기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는데 만약 미국이 내부적으로라도 어느 정도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것을 용인한다고 할 것 같으면 한미관계는 상당히 어려워지겠죠. 한미동맹이 이완되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파급 효과가 있겠죠. 이런 점에서 한국 정부가 상당히 어렵고 곤혹스런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자: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전화로 세상을 만나다, 오늘은 북한대학원대학교 신종대 교수와 북한이 루마니아를 통해 미국과 회담을 하자고 제안한 배경에 관해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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